음성듣기
본문: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녀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너희에게 하나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말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음행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신 아버지만 한 분 계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에게서 와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그것은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 너희 가운데서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고 단정하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않느냐?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듣지 않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38절)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39절)라고 답한다. 예수님은 영적인 아비를 말한 것인데, 그들은 육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조차 부인하신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녀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 15:6)는 말씀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혈통으로 따지면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본받지 못했다. 만일 그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반대하고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40절).
예수님이, 그들이 그들의 아비가 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시자, 자신들은 “음행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하나님만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다고 답한다(41절). “음행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은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소문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분의 출생에 대해 여러가지 소문이 만들어졌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하시고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보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42절). 만일 “우리에게는 하나님이신 아버지 한 분만 계십니다”(41절)라는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들은 그분의 말을 알아듣고 믿어야 했다. 그들이 그분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이려 한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뜻이다(43절).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그들의 아비는 악마이며, 그 아비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직격하신다(44절). “악마”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볼로스’는 악한 세력의 통치자인 사탄을 가리킨다. 악마 즉 사탄은 하나님을 떠나 그분의 진리를 거스르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방해한다. 예수님은, 사탄이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라고 이름 짓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믿지 않으니, 그분 앞에 있던 유대인들은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거짓의 아비를 섬기고 있다는 뜻이다(45-47절).
해설:
성경에서 ‘악마’ 혹은 ‘마귀’라는 단어를 만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부터 책에서 읽거나 들어 온 동화와 전설 혹은 신화에 나오는 영적 존재를 생각합니다. 뿔 달리고 눈에서 불꽃이 나오는, 험상궂게 생긴 도깨비와 같은 존재를 생각하거나, 혼자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나 놀래키고 사라진다는 혼령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과 영적 세계를 오해하게 만듭니다.
성경에서 ‘악마’와 ‘마귀’는 동의어로 사용되는데, 악한 영적 세계를 통치하는 우두머리(사탄)을 가리킵니다. ‘귀신’과 ‘악령’도 동의어로서, 사탄의 통치 하에서 활동하는 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말쟁이”라는 말과 “거짓의 아비”라는 말로 부르심으로써 그의 본질을 폭로하십니다. 사탄과 그의 수하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은 눈에 보이거나 오감으로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영적 존재로서 우리를 속여 진리를 떠나 거짓을 믿게 만듭니다. 진리를 떠나 거짓을 믿으면 결국 영원한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을 “살인자”라고도 부르십니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무속과 주술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집니다. 무속인이나 점술가로 산다는 것이 과거에는 부끄러운 일이었으나, 지금은 자랑스럽게 드러냅니다. 방송에서도 용한 무속인이나 점술가를 출연시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들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해 보면, 이성과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활동하는 신들은 종잡을 수 없고, 강압적이며, 매우 감정적입니다.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찾아가 위로와 길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악한 영에 자신을 내어 주는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악한 영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 다닙니다”(벧전 5:8). 자칫 방비를 풀고 있다 보면,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러면 사탄의 종이 되고 죄에 속박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사탄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악한 영의 수하에서 벗어나 거룩한 영(“성령)의 인도 아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여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며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낯설고 무서운 하나님에게 “아빠”라고 부르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술이나 무속에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에게는 하나님에게 속하든가, 사탄에게 속하든가,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손길 안에서 살기를 택하지 않는다면, 악한 영의 구속하는 힘에 눌려 살게 됩니다. 진리 안에서 거룩함을 향해 자라기를 택하지 않으면, 거짓을 진실로 알고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앞당겨 누리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을 앞당겨 맛보게 됩니다.
요절: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기도:
주님, 성령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악한 영은 여전히 우리를 속이고 유혹하여 성령의 다스림을 벗어나 자신의 수하에 들어오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오늘도 깨어 기도합니다.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오늘 하루의 시간을 성령의 손길에 맡깁니다. 아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