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본문:
이 말씀 때문에 유대 사람들 가운데 다시 분열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귀신이 들려서 미쳤는데, 어찌하여 그의 말을 듣느냐?”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말은 귀신이 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어떻게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예루살렘은 성전 봉헌절이 되었는데, 때는 겨울이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경내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그 일들이 곧 나를 증언해 준다. 그런데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도 더 크시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해설:
양과 목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19절).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귀신 들렸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눈먼 사람을 눈 뜨게 했으니 귀신 들렸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20절). 그 일은 “성전봉헌절”(22절)에 성전에서 일어났다. “수전절”이라고도 불리는 이 절기는 유대인들이 ‘하누카’라고 부른다. 주전 167년에 셀류시드 왕조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성전이 훼손되었을 때, 마카비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 성전을 되찾은 사건을 기념한다.
이 시기가 되면,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나타나 마카비같이 로마 제국을 대항해 싸워 주기를 갈망했다. 유월절과 성전봉헌절은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갈망이 가장 뜨거워지는 시기다. 그때 예수님은 성전 경내에서 거닐고 계셨다(23절). 요한 저자는 “때는 겨울이었다”(22절)라고 언급함으로써 냉혹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솔로몬 주랑에서 예수님을 발견한 유대인들은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24절)라고 청한다. 믿고 싶어서 물은 것이 아니라, 고소할 분명한 빌미를 잡기 위해서 그렇게 요청한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25절)고 답하신다. 믿으려는 마음 자체가 그들에게 없었기에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고도 믿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신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26-27절). 양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뜻이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차린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겨 주신 양들이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시기에 예수님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아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누린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27-30절).
묵상:
인생에 있어서 마음은 등불과 같고 항해자의 키와 같습니다. 듣는 것은 귀로 하고 보는 것은 눈으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봅니다. 마음이 정하는 대로 보고, 마음에 있는 대로 말하고, 마음이 정한 대로 걸어갑니다. 마음의 눈이 닫혀 있으면 제 아무리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어도 보지 못합니다. 마음의 귀가 닫혀 있으면 천둥과 같은 음성도 듣지 못합니다. 반면, 마음이 부드럽고 예민하고 열려 있으면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도 볼 수 있고 그 소리도 듣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무슨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어떤 표징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기로 마음의 문을 닫아 놓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유다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철저히 사로잡혀 마음이 굳어 있었고 닫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38년 된 병자와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 치유받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안식일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의심하고 거부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었고, 일어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믿음 좋은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에 마음의 눈과 귀가 열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고 그분이 하시는 일들을 보았습니다.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고,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28절). “만유보다 더 크신”(29절) 하나님의 손에 잡힌 존재를 빼앗아갈 존재는 땅에도, 하늘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8-39)라고 했습니다.
요절: 27-28절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기도:
저희의 귀를 열어 주셔서 주님의 미세한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 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보게 하심에도 감사드립니다. 저희로 주님 안에 있게 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터에 있게 하시니,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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