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19-30절: 마음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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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 말씀 때문에 유대 사람들 가운데 다시 분열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귀신이 들려서 미쳤는데, 어찌하여 그의 말을 듣느냐?”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말은 귀신이 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어떻게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예루살렘은 성전 봉헌절이 되었는데, 때는 겨울이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경내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그 일들이 곧 나를 증언해 준다. 그런데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도 더 크시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해설:

양과 목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19절).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귀신 들렸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눈먼 사람을 눈 뜨게 했으니 귀신 들렸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20절). 그 일은 “성전봉헌절”(22절)에 성전에서 일어났다. “수전절”이라고도 불리는 이 절기는 유대인들이 ‘하누카’라고 부른다. 주전 167년에 셀류시드 왕조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성전이 훼손되었을 때, 마카비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 성전을 되찾은 사건을 기념한다. 

이 시기가 되면,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나타나 마카비같이 로마 제국을 대항해 싸워 주기를 갈망했다. 유월절과 성전봉헌절은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갈망이 가장 뜨거워지는 시기다. 그때 예수님은 성전 경내에서 거닐고 계셨다(23절). 요한 저자는 “때는 겨울이었다”(22절)라고 언급함으로써 냉혹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솔로몬 주랑에서 예수님을 발견한 유대인들은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24절)라고 청한다. 믿고 싶어서 물은 것이 아니라, 고소할 분명한 빌미를 잡기 위해서 그렇게 요청한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25절)고 답하신다. 믿으려는 마음 자체가 그들에게 없었기에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고도 믿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신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26-27절). 양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뜻이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차린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겨 주신 양들이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시기에 예수님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아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누린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27-30절). 

묵상:

인생에 있어서 마음은 등불과 같고 항해자의 키와 같습니다. 듣는 것은 귀로 하고 보는 것은 눈으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봅니다. 마음이 정하는 대로 보고, 마음에 있는 대로 말하고, 마음이 정한 대로 걸어갑니다. 마음의 눈이 닫혀 있으면 제 아무리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어도 보지 못합니다. 마음의 귀가 닫혀 있으면 천둥과 같은 음성도 듣지 못합니다. 반면, 마음이 부드럽고 예민하고 열려 있으면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도 볼 수 있고 그 소리도 듣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무슨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어떤 표징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기로 마음의 문을 닫아 놓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유다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철저히 사로잡혀 마음이 굳어 있었고 닫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38년 된 병자와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 치유받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안식일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의심하고 거부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었고, 일어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믿음 좋은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에 마음의 눈과 귀가 열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고 그분이 하시는 일들을 보았습니다.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고,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28절). “만유보다 더 크신”(29절) 하나님의 손에 잡힌 존재를 빼앗아갈 존재는 땅에도, 하늘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8-39)라고 했습니다.  

요절: 27-28절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기도:

저희의 귀를 열어 주셔서 주님의 미세한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 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보게 하심에도 감사드립니다. 저희로 주님 안에 있게 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터에 있게 하시니,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아멘. 

4 responses

  1. gachi049 Avatar
    gachi049

    아직도 영의 눈과 귀가 막혀 주님의 말씀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나약한 존재에게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날마다 공급해주신 영의 만나를 먹고 끊임없이 미혹하는 사탄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서 주시는 영의 양식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bull9707 Avatar

    “마음이 정결한자는 하나님을 볼것이요“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설교가 기억납니다, 저희들의 마음이 온전히 청결하기를 기도합니다만 아직도 마음한 구속에서 세상의 욕심이 자주 꿈틀 거리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선한목자를 따르는 주님이 택하신 양때라고 고백합니다, 종종 딴길로 갈려고 하는 타성이 있지만 결국 지팡이와 막대기로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뒤를 따르는 양으로 인생을 마감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가장 위대한 축복은 영생으로 향하는 십자가의 길인것을 세상에 알리면서—- 아멘.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은 많이 깔렸지만 수은주가 영상으로 올라간 목요일 아침입니다. 승강장에 이는 바람도 조금 덜 차게 느껴지네요. 겨울이 점점 힘을 잃고 봄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겠지요?

    요한10:19-30. 개안 이적, 선한 목자 설교에 이어 성전봉헌절 예루살렘 상경 때 벌어진 유대인들과의 대화 이야기. 메시야이거든 대놓고 그리 밝히라는 유대인들. 이미 말했고 보여줬지만 너희가 믿지를 않는다는 책망.

    그리고 주님은 사람들은 그분의 양떼와 그렇지 않은 이들로 나누세요. 안과 밖. 속한 자와 속하지 않은 자. 양과 염소. 중간이나 중립지대가 없어요.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지도, 주중에는세상을 사랑하다 주말에는 교회와 연애하는 양다리도…없어요.

    오늘도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별일이 없어서, 잠자고 먹고 일하러 갈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

    선한 목자 되신 주님. 나를 부르시는 그 온유한 음성을 마음으로 듣고, 인도하시는 곳으로 따라가는 오늘이 되기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지친 내 영혼을 안위해 소생시키시고 주님의 성찬을 먹고 마시며 가지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머무는 삶이 되었으면. 날마다, 숨쉬는 순간 미다.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지난 몇 주간은 여선교회의 일로 긴장을 좀 했습니다. 해마다 2월에 하는 사회정의 관련 프로그램도 있었고, 여선교회 선교헌금 펀드레이징팀 회의도 세 번 모였고, 지난 주일에는 여선교회주일을 기념하는 교회에 가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연회 행사는 담당 임원이었을 때 여러 번 치뤄봐서 뒤에 들어가는 수고가 어떤건지 잘 압니다. 혼자 준비해서 올릴 수 있는게 아닌만큼 다른 임원들과 의논하고 협력해야 하는 일이면서도 담당자로서 모든 걸 알아야 하고 ‘꿰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행사와 프로그램은 사회에서 쓰는 잣대로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지 않지만, 여선교회원의 헌금과 수고로 빚어내는 프로그램인 만큼 무형의 가치를 잘 살려야 하는 책임감이 따릅니다. 그런걸 알기 때문에 내 임기는 끝났지만 행사 담당 임원을 돕고 참가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일을 같이 하면 서로를 잘 알게 됩니다. 회의할 때에도 알게 되고,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알게 됩니다. 회의 때 본 것과 일할 때가 다른 사람이 다를 때도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경우입니다. 약간 실망하기도 하지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회의 때 적극적이지 않았어도 맡은 일은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연회 임원이면 거의 다 자기 교회와 지방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한 사람들입니다. 여선교회 행사를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팀웍은 또 다릅니다. 새로운 임원단이 꾸려지면 회장의 리더십에 따라 임원간의 조화가 잘 이뤄져 팀웍이 잘 될 때가 있고 삐걱거리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한 가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합적이고 상대적인 문제입니다. 목자가 자기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신도 사이에도 -여선교회 일처럼 함께 일할 때- 그렇습니다. 서로를 알고 듣고 따른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를 이뤄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엔 문자적인 의미 외에 십자가에 달릴 그리스도의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사순절 기간동안 깊이 묵상해 볼 구절들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일상의 차원에서 보면 어떤 그림일까요. 요즘에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타인과는 잘 지내는데 가족과는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관계의 경중이 나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런 것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합니다. 의도와 인식의 차이라고 할까요. 나의 ‘의도’와 상대방의 ‘인식’이 맞지 않을 때 일어나는 오해 같은거라고 할까요. ‘남한테는 잘하면서 자기 식구한테는 왜 저런지 몰라’ 이런 말을 합니다. 가족 중에서도 남편과는 같이 있는 시간이나 대화의 양이 적지 않은 편이라 서로 속에 있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만 성인이 된 아이들과는 이런 시간이 부족합니다. 시간 뿐 아니라 대화의 기술 같은 것도 턱없이 모자랍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만 안 통하는 것 같이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쌓이기도 합니다. 엄마로서 ‘의도’한 것은 그게 아닌데 전달된 것은 다를 때, 아이 때 받은 인상들이 모여서 성인이 된 지금 짐과 상처, 아픔이 되었구나 싶을 때…요즘엔 이런 것들로 마음이 괴롭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많은 목회자들을 보았습니다. 목사님들 뿐 아니라 사모님들도 많이 봅니다. 친한 친구도 사모요, 전도사입니다. 그분들도 교인들에겐 잘하고 식구들에겐 없는 존재가 될 때도 있겠지요. 서로를 안다는 것은 어떤걸까요.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실은 잘 몰랐던 제자들이나, 보아도 들어도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의 마음엔 슬픔이었겠지요.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주님은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너와 나는 하나다…아버지와 너는 하나다…닿을 수 없이 먼 곳에 계신 분. 그러나 내 속에 계신 분. 슬퍼하는 내 마음을 아시는 분. 슬픔을 지혜로 바꿔주실 분. 주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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