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 1-11절: 종으로 낮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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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 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해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3장부터 ‘영광의 책’이 시작된다. 13장부터 17장까지는 마지막 식사를 나누시는 동안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데, 이것을 ‘고별 설교’라고 부른다. 공관복음서는 식사 장면을 기록하는 반면, 저자 요한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는 장면을 기록한다. 그것을 ‘세족 이야기’라고 부른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당신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신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나누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요한은 유월절 식사를 나누기 하루 전날에 이 식사를 하신 것으로 기록한다.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1절)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셨다는 뜻이다. 저자 요한은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1절)는 말로 세족 이야기를 시작한다. “끝까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는 뜻일 수도 있고, “남김없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두 가지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은 것은 자신의 사랑을 남김없이 쏟아 부은 행동이라는 뜻이다. 

저자 요한은, 식사를 하는 중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2절)고 적는다. 가룟 유다는 이미 예수를 팔아넘겨 반란을 일으키도록 몰아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식사 중에 그 생각을 실행할 결심을 했다는 뜻이다. 그 결심에는 유다의 의지적인 선택도 있었지만, 악한 영의 충동질도 있었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를 감지하신 예수님은 죽음의 때가 임박했음을 아시고(3절), 식사를 나누시던 중에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4절). 이것은 종이 손님의 발을 씻기 위해 취하던 행동이다. 겉옷을 벗는 행위는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는다는 뜻이고, 수건을 허리에 두른 것은 종의 자리로 자신을 낮춘다는 뜻이다. 그런 다음, 그분은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5절). 

당시 유다 법에 의하면, 종이 손님 발씻기를 거부하면 주인은 강요할 수 없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일은 천하게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행위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 높은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예수님은 이 행위로써 당시의 관례를 뒤집어엎으신다.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당혹감에 짓눌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 차례가 오자 강하게 거부한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7절)라고 타이르신다. 베드로가 다시 거부하자,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8절)고 하신다. 십자가에서 드려질 희생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9절)라고 청한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몸 씻는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10절)고 하신다. “이미 목욕한 사람”이란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여 죄 씻음 받고 나면, 더 이상 그것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세례는 한 번 받는 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온몸을 씻은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되는 것처럼, 보혈로 죄 씻음 받은 사람은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여 씻어내면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깨끗하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이신다. 자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11절). 

묵상:

예수님은 자신이 이루실 구원의 사역을 한 편의 모노 드라마를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성육신 사건을 상징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품 속에 계셨던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겉옷을 벋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행동은 또한 십자가에서 완성하실 구원 역사를 상징합니다. 만왕의 왕께서 죄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시로 적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진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십자가에서의 희생이 끝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난 후에야 그들은 십자가 희생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예수님은 스스로 종의 자리로 내려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예수님의 섬김을 받으면서 속으로 ‘이게 무엇일까?’ 하고 놀랐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8절)라고 반응한 심정이 이해가 가고 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복음을 들을 때, 우리의 반응도 베드로의 그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셨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자신의 발을 씻으시려는 예수님께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한 베드로처럼, 우리도 “왜 이러십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십자가 앞에 머리 숙여 두렵고 떨림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일 때, 그분의 생명은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놀라운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요절: 8절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기도:

주님께서 저희에게 오셔서 저희를 주님 곁으로 이끄셨습니다. 주님께서 저희처럼 낮아지셔서 저희를 주님처럼 높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죄를 짊어지셔서 저희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저희에게는 그런 은혜를 입을 자격이 없는데, 온전히 주님의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에 엎드립니다. 주님, 찬미 받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1. bull9707 Avatar

    세상의 어떠한 피조물 권세로서도 끊을수 없는 그토록 엄청난 사랑으로 저희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샘물과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로 죄를 씼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를 찬양하는 아침입니다.인자가 섬기고 대속물로 영혼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시려고 오신 사랑의 하나님께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경배와 예배를 드리는 아침입니다. 아멘.

  2. gachi049 Avatar
    gachi049

    인류 구원의 역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으로서는 품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가장 낮은 자세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주신 사역을 감당위해 마지막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께서 행하셨던 지극하신 사랑을 실천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손톱 만큼이라도 행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며칠 전에 섬김을 부활의 한 모습으로 묵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본문은 부활의 역설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보는 것과 다른 ‘새 현실’입니다. 평상시의 상식과 기대대로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제자들은 당황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다니면서 여러 집을 방문했겠지만 누가 예수님의 발을 씻었는지 기록된 것은 없습니다. 종이 씻거나, 예수님 당신이 씻었을 것 같습니다. 제자 중의 누가 씻겨 드렸을 수도 있지만 알 수 없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마리아가 비싼 나드 향유로 발을 씻은 일이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마른 수건으로 닦아 주십니다. 길에서 집에 들어갈 때 발을 닦는 것과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남의 발을 닦으려면 자기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혀야 발을 닦을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낮아진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황공한 대접을 받으며 어쩔 줄 몰라 했겠지만 마음으로는 겸손과 섬김의 상징을 보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라는 메시지로 알아 들었을 것 같습니다. 낮아짐은 자의든 타의든 아픔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죽음의 아픔을 통과한 뒤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부활을 닮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과 다른 차원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찬양이나 가장 귀한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섬기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채워지니 신비이고 역설입니다. 한가지, 깊은 묵상을 요구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If I don’t wash you, you can’t be part of what I’m doing-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친밀하고 은밀하면서 약간 강제성도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주님의 의지가 우선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내리사랑, 찾아 오는 은혜, 거절할 수 없는 선물의 이미지입니다. 자격이나 조건이나 판단의 여지가 없습니다. 주시는 분이 주시겠다는데 받는 내가 아니요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또다른 차원의 겸손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주님은 나를 더 잘, 더 많이 아십니다. 정확하게 아십니다. 어쩌면 나 자신을 포함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죽음’을 거쳐야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해변의 발자욱 footprints 을 이미 이해한다는 뜻이라고 할까요. 지나온 길을 보기 전에 지금 이미 내게 임한 주의 은혜를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는…내가 이미 목욕을 해서 깨끗하다는 진실을 내가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정죄하고, 나는 이렇게 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는 자괴감 속에 빠집니다. 스스로 죄의 종의 자리로 내려갑니다. 이 상태에 빠질 때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오늘의 예수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부활을 약속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아픔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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