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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해설:
유다가 밖으로 나가자 예수님은,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31절)고 말씀하신다. “영광을 받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또한 모든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들의 영광이요, 아버지의 영광이다. 가룟 유다가 영원한 밤을 선택하여 떠나간 이상,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이미 결정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영광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 자녀들아”(33절)고 하신다. 영적으로 볼 때 그들은 아직 어린이의 상태에 있었다. 그분은 이제 곧 떠나 가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34절)고 부탁하신다. “사랑하다”는 헬라어로 ‘아가파오’다. 이것은 히브리어 ‘헤세드’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은 이것을 “새 계명”이라고 부르신다. 사랑의 계명은 율법에도 있었다(레 19:18). 그럼에도 “새 계명”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조건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 그분의 사랑은 전에 없던, 완전한 사랑이다. 예수님은 우리도 그분처럼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35절)이라고 하신다. 제자됨의 가장 중요한 표식은 사랑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생각하시면서,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33절)고 하시자, 베드로가 어디로 가시는지 다시 여쭌다. 예수님은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36절)라고 답하신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 즉 자기희생의 길이었다.
제자들은 아직 그 길을 걸을 수 없다. 하지만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의 선물을 받고 나서 그들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랐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베드로는,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37절)라고 답한다. 이 말에 예수님은, 그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당신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신다(38절).
묵상: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진작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랑’ 그리고 ‘삶’이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는 말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인생의 중심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또한 현대 심리학이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인간됨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절대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진정한 사랑, 순수한 사랑, 다함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갈구합니다. 그런 사랑을 히브리인들은 ‘헤세드’로, 헬라인들은 ‘아가페’로 표현했습니다.
그런 사랑이 없이는 우리의 존재는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모릅니다. 사랑에 무능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병든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으로는 우리의 내적 갈망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고 낮아져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퍼 주는 ‘아가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비로소 내적 허기와 갈증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짝퉁 사랑을 버리고 진품 사랑을 행하게 만듭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은 새롭습니다. 겉모습은 동일하지만 내용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낮아지는 길, 섬기는 길, 자기희생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말은 그분이 앞서 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처음에는 그 길을 알지도 못했고 걷지도 못한 것처럼, 우리도 그 길을 알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합니다. 참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구합니다. 끝까지, 조건 없이, 변함없이 지속할 수 있는 사랑을 구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주님의 걸으신 길에 서게 하고 걷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절: 34-35절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기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저희의 병들고 깨진 사랑을 내려놓습니다. 저희는 도무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존재들임을 인정합니다. 하오니 주님의 보혈을 저희 안에 흘러보내 주시어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도 주님처럼 사랑에 능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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