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본문: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한 내 말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어떻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분부하신 그대로 내가 행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일어나거라. 여기에서 떠나자.”
해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보혜사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령께서 오시면 그분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26절)이라고 하신다. 그것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27절) 말아야 한다. 오히려 세상 그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든든한 평안을 경험해야 옳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27절)고 하신다. “세상이 주는 평화”라는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은 당시 로마 제국이 선전하던 “팍스 로마나”(로마가 군사력으로 이룬 평화)를 마음에 두고 계셨을 것이다.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샬롬’은 단순히 ‘불화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이 온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성을 해결하지 않고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유익한 일이라고 하신다(28절). 성령의 시대가 열려서 모든 믿는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그분과 함께 동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자신의 죽음에 준비시키기 위함이다. 29절의 “그 일”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일을 가리킨다. 그분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가까이 오고 있다”(30절)고 하신다. “이 세상의 통치자”는 사탄을 의미하기도 하고, 세상의 권력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탄이 세상의 권력자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그는 나를 어떻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30절)고 하신다. 그분의 참 생명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당신을 잡으러 오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신다(31절).
묵상: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방언이나 예언 같은 은사를 통해 성령의 내주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런 외적인 표시가 없어도 믿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고백은 성령께서 이미 그 사람 안에 내주하고 계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영적인 사건은 어떤 느낌이나 증상을 근거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믿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다면, 지금 내가 성령의 손에 잡혀 있고, 내 안에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일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며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그 일을 위해 성령께서는 때로는 변호사로, 때로는 위로자로, 때로는 교사로, 때로는 고발자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믿음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손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며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그분의 손에 잡혀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안식과 만족을 얻고 든든한 반석 위에 섭니다.
믿음 안에서 얻는 이 평화는 이 세상 그 무엇도 흔들 수 없습니다. 걱정과 근심은 믿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입니다. 큰 일을 당하여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믿음의 사람은 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잠시 흔들리지만 곧 평정심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의 통치자는 우리에게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마 10:28) 존재입니다. 우리는 몸과 영혼을 모두 살리시는 분의 손에 잡혀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의 능력입니다.
요절: 27절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기도:
저희 안에 성령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늘 깨어 살게 해주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하고 의지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고, 그 평안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 to young mae kim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