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장 17-27절: 십자가의 대관식

2–4 minutes

To read

음성듣기

본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데로 가셨다. 그 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다라고 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아서, 예수를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세웠다. 빌라도는 또한 명패도 써서, 십자가에 붙였다. 그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 라고 썼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은 도성에서 가까우므로, 많은 유대 사람이 이 명패를 읽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과 로마 말과 그리스 말로 적혀 있었다. 유대 사람들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십시오” 하였으나, 빌라도는 “나는 쓸 것을 썼다” 하고 대답하였다. 병정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뒤에, 그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서, 한 사람이 한 몫씩 차지하였다. 그리고 속옷은 이음새 없이 위에서 아래까지 통째로 짠 것이므로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것은 찢지 말고, 누가 차지할지 제비를 뽑자” 하였다. 이는 ‘그들이 나의 겉옷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다’ 하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병정들이 이런 일을 하였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해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예루살렘 성 바깥에 있던 골고다(‘해골’이라는 뜻으로서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들의 뼈들이 흩어져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로 끌려 가신다(17절). 그곳에서 그분은 다른 두 죄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신다(18절). 누가는 예수님과 두 죄수 사이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눅 23:39-43).

십자가 위에는 처형당한 사람의 죄패를 걸어 두곤 했는데,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19절)라고 써 붙이라고 명한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도록 히브리 어(유대인들의 일상언어인 아람어), 로마 어(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언어) 그리고 그리스 어(로마 제국에서 일상어로 사용되던 언어)로 써 놓게 했다(20절).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조롱이었다. 

그것을 보고 유대 지도자들이 빌라도를 찾아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문구를 고쳐 달라고 요청하지만(21절), 빌라도는 거절한다(22절). 형식적으로 보자면, “나는 쓸 것을 썼다”는 빌라도의 말이 맞다. 그것은 빌라도의 교활함이 만들어 낸 선택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자 모든 인류의 왕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난 후, 병사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그분의 겉옷과 속옷을 나누어 가진다(23절). 이로써 시편 22편 18절의 말씀이 이루어진다(24절). 십자가 아래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있었고 “사랑하는 제자”(저자 요한)가 지켜보고 있었다(25절).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제자에게는, “자,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신다(26-27절).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에 대한 돌봄을 맡기신 것이다. 그때 이후로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셨다.  

묵상: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영광 받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당신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유대인의 영원한 왕으로서의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메시아’(히브리어) 혹은 ‘그리스도’(헬라어)라는 말은, 우리 말로 하자면, ‘왕’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유대인의 왕이 되신 그분은 또한 모든 인류의 왕이십니다. 그분의 죄패가 당시에 통용되던 모든 언어로 쓰인 것은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왕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했을 때 빌라도가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오?”(19:15)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로써 대제사장들은 스스로를 정죄한 셈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는 하나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라고 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왕권을 부인하고 황제 앞에 충성을 서약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의 왕으로 보냄 받은 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분은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 모두의 왕이 되셨습니다. 이제 보니,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영원한 왕이신 그분의 대관식이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3:14-15)라는 말씀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고백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밖에는 다른 왕이 없습니다!”라고.

요절: 19-20절

빌라도는 또한 명패도 써서, 십자가에 붙였다. 그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 라고 썼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은 도성에서 가까우므로, 많은 유대 사람이 이 명패를 읽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과 로마 말과 그리스 말로 적혀 있었다.

기도:

십자가에 오르신 것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침묵으로 그 많은 모욕과 고난을 겪으신 것은 인류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보니, 십자가는 영원한 왕좌입니다. 주님은 영원한 왕으로서 자신의 왕좌에 오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구원이요 희망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7 responses

  1. 조용석 Avatar

    모성애를 통해 보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리아를 보시며 요한을 아들이라 하시고, 요한에게는 마리아를 어머니라 하신 장면에 깊이 마음이 머뭅니다. 가시관을 쓰신 머리와 로마 병사의 채찍에 찢기신 몸, 손과 발에 박힌 못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극심한 고통 가운데 계셨던 상황이었습니다. 탈수와 고통으로 신음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그 순간에, 주님께서 육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향해 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시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사실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이는 인간의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믿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께서 동정녀를 통해 나셨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오래전에 소천하신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사업의 어려움과 여러가지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깊은 곤경 가운데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제게 오셔서 매일 열 시간씩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로 인해 제 환경이 즉시 변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저는 한 개인으로서의 어머니가 아닌 자식을 사랑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변하며 어머니들의 모습이 달라 보일 수는 있지만,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그 마음은, 세상에서 아버지들에게서도 신앙의 지도자들에게도 찾을 수없는 어머니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믿어지지 않는 분들에게 나는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요한에게 말씀하신 장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사람들의 말처럼 사생아였다면, 자신의 아들이 처참하게 고통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서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또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아들이 요한을 향해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고, 마리아에게 “보라 네 아들이라”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상황을 받아 들이는 강심장 여인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불륜녀라고 그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여인은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마리아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모든 제자들이 성령을 통해 확신하게 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녀 또한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 아침, 저 역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저의 주님으로 고백드립니다. 저를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을 마음에 모시며,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다짐합니다. 또한 어제 묵상했던 말씀과 같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의 삶을 살아가며, 나의 남은 여정이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운무가 짙게 깔려 마치 설악산이나 내장산의 그것처럼 신비한 감정을 주는 아침, 금요일입니다. 한국에서 돌아온 후 처음으로 두 단락으로 끊어지지 않는 긴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공기를 호흡하며 향기로운 커피와 빵도 먹었습니다.

    고난주간 다섯째 날, 성금요일. 주신 말씀을 읽습니다 (요한19:17-27).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유월절 어린양을 도축하는 준비일에 벌어진 사건.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팻말이 붙습니다. 주님의 속옷 (tunics)를 갖기 위한 병사들의 제비뽑기,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의뢰하심. 친히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유월절 문설주에 바를 대속의 피를 흘리신 이. 유대인의 왕, 만왕의 왕, 나의 왕 나의 주님.

    이제 하루를 시작해야 하겠지요. 갈보리 언덕, 주의 십자가가 내 마음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아침, 주홍 같은 내 죄, 죽을 수 밖에 없던 자, 이 쓸데없는 죄인을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히신, 하늘로 들리신 이, I AM.

    그 놀라운 사랑, 그 신비한 보혈의 능력을 기억하는 오늘, 그 기억이 삶의 능력이 되어 천성을 향해 매일 나아가며 낙심하지 않는 삶, 위풍당당한 인생이 되었으면.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의 마지막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간단한 편입니다. 십자가를 직접 지고 골고다로 가십니다. 예수님을 중앙으로 하고 양 옆에 죄수 둘이 달립니다. 대제사장들은 명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소란을 부리지만 빌라도는 무시합니다.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것은 이 모든 소란이 너희가 일으킨 누워서 침 뱉기 사건이라는걸 만천하에 알리는 -다중언어로- 빌라도의 의도로 보입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집니다. 겉옷은 굳이 네 조각을 내서 나누고 속옷은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가져갑니다.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는데 군인들 살림살이가 이리도 옹색했던걸까요. 죄수의 옷가지까지 챙기고…요한은 어머니 마리아와 자기의 관계가 모자 관계로 정해지는 순간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당부로 모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이 합쳐지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어머니 마리아가 사랑을 부어줄 새 아들이 생기는 순간이고요. 골고다의 사형현장은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 지르던 군중도, 예수님이 시저를 모독하는 정치범이라고 모함하던 종교지도자들도 자리를 뜹니다. 원대로 십자가에 매달았으니, 없앴으니, 볼거리가 없어졌습니다. 만족했을까요. 후련했을까요. 할 일을 다 해서 개운했을까요…예수님은 이제 시작인데. 해설에서 보듯 예수님은 이제 비로소 왕좌에 오른건데.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은 왕관이 맞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머리에 이고 살듯 우리의 왕도 아픔을 왕관으로 쓰셨습니다. 우리의 왕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귀하게 여기며 머리에 쓰고 계십니다. 아플 때 왕을 올려다 보며 ‘내 아픔을 아시는 분, 당신께서 이겨내셨듯 나도 이기게 하소서’ 기도합니다. 우리의 왕은 벗은 몸입니다. 허위와 특권의식의 외투 대신에 우리와 같은 맨몸으로 세상과 맞서는 왕입니다. 외롭고 추울 때 왕을 올려다 보며 ‘당신이 나를 아시니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왕이 되셨습니다. 골고다의 관중은 예수님의 명패가 그 때 뿐인 줄 알았을 겁니다. 놀리고 욕하느라고 써 붙인 팻말인데 시간과 공간에 좌우되지 않는 영원한 싸인 sign 이 되었습니다. 저자 요한은 십자가 장면을 드라이하게 묘사합니다.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다는 듯,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문학에서는 안티클라이맥스 anticlimax 라고 하지요. 대단할 줄로 기대했는데 아닌 것.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든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다든가, 벼락이 떨어져 군인과 관중을 불태운다든가…이런 일은 없습니다. 세상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황제의 것입니다. 기다립니다 우리는.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다립니다.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마라나타 주님!

  4. bull9707 Avatar

    인간의 이성과 생각으로는 믿을수 없는 성탄과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과 새나라와 새땅을 믿게하신 강권적의 은총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음바되시고 영광중에 들려 올려지신 메시아 에게 찬양과 존귀와 명예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내는 하루하루 일상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새나라와 새땅이 임할때까지—- 아멘.

  5.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할렐루야 우리 왕!

Leave a Reply to tenderlya0860fa447Cancel reply

Discover more from 사귐의 소리 2026

Subscribe now to keep reading and get access to the full archive.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