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11-18절: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

3–4 minutes

To read

음성듣기

본문: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해설:

두 제자는 떠나고 막달라 마리아는 그 자리에 머문다. 요한 저자는 계속하여 막달라 마리아만을 주인공으로 묘사한다. 그는 무덤 밖에서 울다가 다시 무덤 안을 들여다 본다(11절). 그 때 전에 없던 광경이 보인다. 흰 옷 입은 천사 둘이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과 발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12절). 마리아는 두 사람을 번갈이 쳐다 보며 놀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천사 중 하나가 왜 우느냐고 물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시신을 도난 당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13절).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리자, 뒤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14절). 이번에는 그 사람이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고 묻는다. 마리아는 그가 그 동산을 지키는 사람인 줄 알고, 그가 예수님의 시신을 옮겨 놓았으면 어디에 있는지 알려 달라고 청한다(15절). 그러자 예수님이 “마리아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신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음성에 마리아는 그분이 주님인 것을 알아 차리고 돌아서서 “라부니!”(‘선생님’이라는 의미) 하고 응답한다(16절). 

그때 마리아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분의 발을 만지려 한다. 예수님은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17절)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께 올라간다고 전하라고 하신다. “올라간다”는 말은 육신을 입고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던 그분이 다시 하나님의 차원으로 옮겨 가신다는 뜻이다. 그것을 우리는 ‘승천’이라고 부른다. 그 순간, 마리아의 마음에서 모든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가득 들어찬다. 그는 곧바로 제자들에게 찾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그분의 말씀을 전한다(18절).

묵상: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셨을 때 남성 제자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가야바의 관저까지 은밀히 숨어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오직 요한만이 십자가 처형의 자리에까지 따라갑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요한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의문을 풀 방법을 찾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여러 차례 만나고 나서야 그들은 예수께서 진실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반면,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드러나지 않는 일로 섬겼습니다. 그들의 존재감은 십자가 처형장에 이르기 전까지는 베일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남성 제자들이 모두 사라지자 그들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곳에 함께했습니다. 안식일이 끝나자 가장 먼저 그분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저자 요한은 무덤에 함께 갔던 여인들의 대표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전까지 그곳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처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영예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은 그[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10:3)고 하셨습니다. 무덤 밖에서 만난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 마리아는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그제서야 마리아는 그분의 정체를 알아봅니다. 감격에 겨워 그가 그분에게 다가가려 하자 예수님은 그의 행동을 제지합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는 없는” 차원으로 옮겨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알아들은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이 주님을 “보았다”고 전합니다. 이로써 그는 온전한 믿음을 가졌던 최초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절: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기도:

주님을 뵙고 싶어 무덤에 머물렀던 마리아에게 다가오신 주님, 그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애통의 눈물을 환희의 눈물로 바꾸신 주님, 저희에게 다가오셔서 저희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 하나만 알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6 responses

  1. gachi049 Avatar
    gachi049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을 찾아 헤메는 제자들과 마리아를 불러주심으로 어두었던 영의 눈을 뜨게하시고 만나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만약 부활의 기적이 없었다면 인류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는 없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점점 악해 저가는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신약에 마리아가 많이 나옵니다. 대략 7명 정도로 정리하는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다음으로 ‘유명한’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 -음식 준비로 바쁜 마르다와 예수님 발밑에 앉은 마리아-의 마리아도 인상적인 마리아이고, 나사로의 여동생들로 알려진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자매가 아니라 마리아 한 명인데 마르다와 마리아 두 사람으로 만들었다 (파피루스 번역 과정의 실수 플러스 의도적 역할 축소)는 강력한 주장이 요한복음서 11장을 중심으로 등장했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마리아라는 주장입니다. 막달라는 지방 이름이 아니라 망대, 망루, 타워, 탑, 파수대라는 뜻의 별명을 마리아에게 붙인 것이며 그 별명은 베드로가 반석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 만큼 초대교회에서 마리아가 갖는 위치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리아 한 사람을 마르다와 마리아로 나뉘었다는 주장 자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도 마리아가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본 사람이 마리아였으며, 당신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가서 알리라고 명하셨다는 점이 마리아의 명성을 수직상승 시킵니다. 한편으론 마리아가 하도 많아 어느 마리아가 어느 마리아인지 모를 정도로 흔한 이름이었다는 사실이 특별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덤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야! 부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마리아 특정인을 부르신거지만, 세상의 모든 마리아를 부르신 것일 수도 있지요. 세상의 모든 여성을, 모든 사람을 부르신 것으로 들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 특정인에게 고난을 받으신 것이자, 자기가 보는대로 판단하고 진리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해도 정작 따르지는 않는 사람들로 인해 고난을 받으셨다고 (그래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고백하며 기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싶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시는 예수님과 그 이름을 듣고 응답하는 마리아 이 장면은 창세기의 아담을 연상 시키기도 합니다. 아담은 동산의 생명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피조물이라는 인정이고, 하나님의 질서에 참여하는 존재들이라는 선언입니다. 이름은 곧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름을 알고, 부르고 기억하는 것은 그 존재를 있게 하는 일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신앙의 ‘높은 탑’을 세운 제자입니다. ‘사도들의 사도 Apostle to the Apostles 사도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도’ 라는 명예를 얻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얼른 알아 듣기를 원합니다. 마리아처럼 몸을 돌려 선생님! 주님! 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 우리에게 오신 주님, 감사합니다.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여!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기온이 어제보다 더 낮지만 햇살이 찬란한 아침, 수요일입니다. 어제는 교회 회의가 길어져서 꽤 늦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래도 단잠을 잘 자고 아침에는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커피와 빵도 잘 먹었네요.

    부활의 감동이 아직도 마음에 감도는 아침, 말씀을 읽습니다 (요한 20:10-18).

    – 막달라 마리아. 주의 시신이 없어진 충격적 상황 앞에 울고 있는 한 여인. 복음서는 부활의 무대 정중앙에 그녀를 올려놓고 온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줍니다.

    – 오해와 계시. 빈무덤, 천사,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을 보고도 그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때 들리는 음성, “마리아야”. 나의 이름을 아시고 그 이름을 불러주시는 온유한 그 목소리.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 동산 (garden). 마리아가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부활을 깨닫는 순간 무덤은 에덴으로 바뀝니다. 부활하신 주를 알아본 이들은 그 에덴에서 새아담이신 주의 형제와 자매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납니다.

    (이상은 오늘 아침 copilot과의 대화문 요약).

    하루를 시작합니다. 생명을 주신 주, 부활과 생명이신 주를 찬양.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받은 자.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주님의 가족이 되는 오늘이 되기를. 포도나무이신 주안에 머물며 주의 사랑이 나의 삶의 능력이 되어, 죽음과 절망과 악함을 이기고 승리하는 하루 하루,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4. Bill Kim Avatar
    Bill Kim

    나팔소리 부를때 이름들을 부를때 사귐의 소리 식구의 각자 이름이 불려질줄 믿습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어떤 능력도 우리를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다는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고. 빈무덤을 생각하며 손의 못자국을 마음으로 보고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약속을 붙잡고 주님 부활 증인으로 합당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

Discover more from 사귐의 소리 2026

Subscribe now to keep reading and get access to the full archive.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