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0장: 지켜주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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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략)

제 이년 둘째 달, 그 달 이십일에 증거궤가 보관된 그 성막에서 비로소 구름이 걷혔다. 이스라엘 자손은, 시내 광야를 떠나서 구름이 바란 광야에 머물 때까지, 여러 곳을 거쳐 행군을 계속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지시하신 명령을 따라서 한 첫 번째 행군이었다. (11-13절)

(중략)

그들은 주님의 산을 떠나 사흘 길을 갔다. 주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사흘 길을 가면서, 쉴 곳을 찾았다. 낮이 되어 그들이 진을 떠날 때면, 주님의 구름이 그들 위를 덮어 주었다. 궤가 떠날 때에 모세가 외쳤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주님의 원수들을 흩으십시오.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주님 앞에서 쫓으십시오.” 궤가 쉴 때에도 모세가 외쳤다. “주님, 수천만 이스라엘 사람에게로 돌아오십시오.”(33-36절)

해설:

본격적인 행군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은나팔 두 개를 만들어 이스라엘 회중을 인도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하신다(1-10절). 신속하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당시로서는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나팔은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만이 불 수 있었고, 상황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야 했다. 이스라엘 회중은 나팔 소리가 날 때 그 소리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어야 했다.   

광야에서 두 번째 유월절을 지낸 후, 약 한 달 정도 지나자 구름이 성막에서 떠올랐다. 이스라엘 백성은 진을 거두어 시내 광야를 떠나 행군을 시작한다. 그들이 바란 광야에 이르렀을 때 구름이 머물렀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 진을 친다(11-12절). 행진하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러준 대로 유다 지파부터 지파별로 대오를 형성하여 진행되었다(13-27절).  

시내 산을 떠날 때, 모세는 호밥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을 인도해 달라고 청한다(29절). 호밥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르우엘로 불리기도 했다)의 아들로서, 모세의 처남이다(“그는 모세의 장인이었다”의 ‘그’는 호밥이 아니라 르우엘을 가리킨다). 호밥이 모세의 청을 거절하자, 모세는 거듭 간청한다(30-32절). 호밥의 답은 기록되지 않았는데, 사사기(1:16; 4:11)에 보면 미디안 출신들이 가나안 정착민들 중에 있었다. 호밥이 모세의 청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일 수 있다. 

백성이 행군하는 동안 낮에 구름이 그들을 덮어 주어 따가운 햇볕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33절). 장막을 걷어 떠날 때면, 모세는 언약궤 앞에서, 주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원수들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했고, 장막을 칠 때면 언약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돌아와 달라고 기도했다(34-36절).

묵상:

모세는 호밥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29절)고 말합니다. 모세는 길을 떠날 때마다 안약궤 앞에서 “주님, 일어나십시오. 주님의 원수들을 흩으십시오. 주님의 미워하는 자들을 주님 앞에서 쫓으십시오”(35절) 라고 기도했고, 행군을 멈출 때면 언약궤 앞에서 “주님, 수천만 이스라엘 사람에게로 돌아오십시오”(36절) 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잘 해주신다”는 말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자가 다음 장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반역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의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잘 해주신다고 해서 만사형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대신 싸워주신다”는 말은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생길을 걸을 때 누구나 당해야 하는 역경과 장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과 역경에 처하도록 인도하기도 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위해 고난을 짊어져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잘 해주신다는 말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그 고난과 역경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겪는 것은 누구도 바랄 일이 아니지만, 그런 것이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좋은 것들은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난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롬 5:3-4)입니다. 

요절: 35-36절

궤가 떠날 때에 모세가 외쳤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주님의 원수들을 흩으십시오.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주님 앞에서 쫓으십시오.” 궤가 쉴 때에도 모세가 외쳤다. “주님, 수천만 이스라엘 사람에게로 돌아오십시오.”

기도:

고난 중에 주님께서 같이 하심을 체험하고, 고난 중에 믿음이 자라는 것을 경험했음에도, 고난 앞에 설 때면 또다시 움츠러드는 것이 저희의 영적 수준입니다. 인생 여정에서 누구나 당하는 것이 상실이요, 고난이요, 장애인데, 저희만은 피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고난당할 때, 정금같이 연단되기를 기대하며 기뻐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gachi049 Avatar
    gachi049

    광야 길 같은 이민 생활 중에도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사탄의 유혹에 미혹되지 않도록 지금까지 지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남은 여정도 성령의 검인 말씀과 은혜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늘 동행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Bill Kim Avatar
    Bill Kim

    지금까지 지내온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앞으로 사는것도 선한목자의 지팡이로 주님이 가신길로 인도하실줄 믿습니다. 비록 십자가의 길이 험하고 힘든길 같이 보이지만 축복의 길이고 안전한 길인것을 고백하면서도 자주 딴길을 였보는 실정입니다. 죽음의 길로 가기전에 지팡이와 막대기로 때려서라도 거룩한길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는 불가능 입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감사히 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례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십자가의 은혜를 세상에 알리면서—- 아멘.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 본문에서 은나팔 두 개를 만들어 불라고 하시면서 한 번 불 때, 두 번 불 때가 다르고 부는 세기에 따라 진행하는 진영의 순서가 따로 있는 등 절도와 규칙을 명하십니다. 아무나 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백만명의 백성이 통일성있게 움직이려면 이런 소통 시스템이 필요할 것입니다. 백성은 귀를 기울여 잘 들어야 합니다. ‘단체 행동’을 잘하는 것은 개인의 안전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안녕과 질서에 필요한 일입니다. 잘 듣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해 봅니다. 어려서부터 들었고 또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 가운데 ‘엄마 말씀 잘 들어라’가 있습니다. 이 때 듣는다는 뜻은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도 똑같습니다. listen to your mother 라고 하면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르라는 뜻입니다. listen to music 과 다릅니다. 음악도 엄마 말도 똑같이 귀로 듣지만 듣는 일 이후의 행동은 같지 않습니다. 은나팔 트럼펫이 울리면 백성은 소리를 듣지만 그 소리는 행동을 취하라는 명령입니다. 트럼펫 소리에 따라 행동을 합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는 저녁 6시가 되면 ‘국기하강식’을 한다고 길 가다가도 애국가가 나오면 멈춰 서서 가슴에 손을 대고 국기에 대한 예를 표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의미없는 일이었지만 다 하는 일이니 따라서 같이 다 했습니다.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는 것과 애국 정신이 정말 관계가 있는지, 그래서 나라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듣는 일에 관해 생각해 보니 그 때 생각이 납니다. 그 때 귀에 들리던 애국가는 멈춰 서서 국기에 대한 예를 갖추라는 명령의 소리였습니다. 광야 백성이 나팔 소리에 따라 질서 있게 행진하는 것과 모세가 언약궤 앞에서 행진 전과 행진 후에 각각 올리던 기도문 사이에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모세가 올리는 기도를 백성이 ‘듣는다’는 점에서 이 또한 공동체 의식 (consciousness)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궤가 떠나기 전에는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궤가 쉴 때에는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소서’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백성에 앞서서 길 떠나는 -독수리처럼 높이 나는- 하나님의 ‘혼’을 상상하게 됩니다. 백성이 쉴 때 하나님의 혼은 그들 곁으로 돌아옵니다. 결국, 하나님과 백성은 한 몸으로 일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제는 구름이 걷혀 올라 가는 것 (길을 떠남)과 구름이 머무는 것 (진을 침)을 읽었습니다. 구름에 하나님의 혼이 담긴 것처럼,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늘은 트럼펫에 하나님의 명령이 담긴 것을 봅니다. 하나님과 백성이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클레임하는 구절들 같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콜합니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신으로 콜합니다. 이집트를 떠날 때는 해방이라는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은 행운의 주인공들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 하나님의 드라마의 파트너가 되어갑니다. 매일 다듬어지고 길들여지고 빚어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낮게 깔려 침침하고 공기가 차게 느껴지는 아침, 토요일입니다. 출장준비를 시작하며 좀 바빴던 한 주가 마무리되었네요.

    오늘 본문은 민수기 10장입니다. 10장 11절에 나오는 “제이년 둘째달 이십일”이라는 표현에 생각의 발걸음이 머뭅니다.

    바로의 추격을 피해 홍해를 건넌 뒤 시내산에 도착한 백성들 (출애굽 1년차 3월). 그들이 일년 가까이 그곳에 머물면서 스스로를 언약공동체 (=일종의 제사장 나라?)로 조직 정비하는 것을 ”시내산 서사“ 라고 한다네요.

    마침내 구름기둥이 그 때를 인도하고, 약속의 땅을 향한 백성의 장정이 시작된 날 (출애굽 2년차 2월 20일). 그날은 모세오경(Torah)의 줄거리가 “광야 서사”로 바뀌는 서사의 큰 전환점이라고 하네요 (Copilot).

    이제 하루를 시작합니다. 별다른 일정 없이 집에서 쉴 생각이에요. 이 보잘 것 없는 죄인의 삶가운데도 임재하시고, 인도하시며 사명과 목적을 주시는 이. 선하신 목자, 사랑의 왕, 생명이요 부활이신 분을 찬양.

    광야와 같은 인생. 슬픔과 괴로움이 많은 이 순례의 길. 자주 넘어지고 자주 쓰러지지만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이. 그 분의 선하심과 온전하신 계획을 신뢰하며 다시 일어나고 다시 길을 찾는 하루 하루, 그런 인생이 되기를. 저 가나안성 귀한 곳에 들어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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