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본문:
(전략)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만나의 모양은 깟 씨와 같고, 그 빛깔은 브돌라와 같았다. 백성이 두루 다니면서 그것을 거두어다가,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고, 냄비에 구워 과자를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에 반죽하여 만든 과자 맛과 같았다. 밤이 되어 진에 이슬이 내릴 때면, 만나도 그 위에 내리곤 하였다. 모세는, 백성이 각 가족별로, 제각기 자기 장막 어귀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이 일로 대단히 노하셨고, 모세는 그 앞에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4-10절)
(중략)
주님께서 바람을 일으키셨다. 주님께서 바다 쪽에서 메추라기를 몰아, 진을 빙 둘러 이쪽으로 하룻길 될 만한 지역에 떨어뜨리시어, 땅 위로 두 자쯤 쌓이게 하셨다. 백성들이 일어나 바로 그 날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그리고 그 이튿날도 온종일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은 모았다. 그들은 그것들을 진 주변에 널어 놓았다.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 사이에서 씹히기도 전에, 주님께서 백성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백성을 극심한 재앙으로 치셨다. 바로 그 곳을, 사람들은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다.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을 거기에 묻었기 때문이다. 백성은 기브롯 핫다아와를 떠나, 하세롯으로 행군하였다. 그들은 하세롯에서 멈추었다. (31-35절)
해설:
1절부터 3절까지의 기록은 너무 간략하여 앞뒤 사정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주님께서 들으시는 앞에서”(1절)는 “성막에 모였을 때”를 가리킬 수도 있고, “대놓고”라는 뜻으로 풀 수도 있다. “심하게 불평을 하였다”는 말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그들은 광야 유랑을 하면서 온갖 불편과 결핍과 피로로 인해 불평과 불만을 쌓아 갔고,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서 대놓고 불평 불만을 쏟아 놓았다. 하나님은 불로 경고를 보내셨고, 모세의 중재로 인해 그 심판은 멎었다.
하지만 그 경고는 금세 잊혔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4절)은 이집트를 탈출할 때 동조해 나온 이방인들을 말한다. 그들이 음식 문제로 인해 불평불만을 쏟아냈고, 그 불평불만의 바이러스는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그들은 그동안 만나만 먹고 지냈다. 처음에는 매일 아침에 내리는 만나로 인해 너무도 감사했지만, 만나만 먹다 보니 지겨워졌고,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와 야채와 과일이 그리워졌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불평불만에 그치지 않고 그 일로 인해 울기까지 했다(10절).
사정이 여기에 이르자 모세는 하나님께 하소연을 한다. 음식 문제로 인한 백성들의 원성을 자기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여쭙는다(11-15절). 이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두 가지의 답을 주신다.
첫째,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짐을 나누어 지도록 일흔 명의 장로들을 불러 모으라고 하신다(16-17절). 모세가 그들을 불러 모으니, “모세에게 내린 영”(25절)을 장로들에게도 내려 주신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두 장로에게도 주님의 영이 임하자, 여호수아가 이를 제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주님의 영을 받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여호수아를 타이른다(26-30절).
둘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질리도록 고기를 먹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다(18-20절). 모세는 장정만도 육십만 명인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한다(21-22절). 하나님은 당신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곧 보게 될 것이라고 답하신다(23절).
얼마 후, 바다 쪽에서(지중해) 바람이 불더니, 메추라기 떼가 몰려와 땅 위에 쌓인다(31절). 이스라엘 백성은 바깥으로 나가 정신없이 메추라기를 걷어들인다.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은 모았다”(32절)고 했는데, ‘호멜’은 ‘당나귀’라는 의미로, 한 호멜은 당나귀가 질 수 있는 정도의 짐을 의미한다.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을 모았다는 말은 그들이 얼마나 고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고기를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다. “극심한 재앙”(33절)으로 그들을 치셨기 때문이다. 이 재앙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재앙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34절)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지나친 탐욕이 만들어낸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곳을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불렀다.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묵상:
‘탐욕’은 더 가지려는 욕심입니다. 이 욕심은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를 가졌든지 항상 ‘조금 더’ 가지기를, ‘조금 더’ 즐기기를, ‘조금 더’ 행복하기를 추구합니다. 그로 인해 어떤 상태에서 만족을 느낀다 해도, 금세 무뎌지고 또 다른 것을 찾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에 눈 어두워지고, 지금 없는 것에 마음을 씁니다. 그것이 없으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 욕망을 만족시킬 방도를 찾습니다. 그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기도 하고, 좌절감에 통곡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욕망을 만족시킬 기회가 오면 아귀처럼 한도 끝도 없이 긁어 모으고 걸신 들린 사람처럼 먹어치웁니다. 그 탐욕은 마침내 그 사람 자신을 먹어치웁니다. 메추라기가 몰려들었던 첫날에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는데, 그것은 무절제한 탐식으로 인한 사고였을 것입니다. 걸신 들린 사람들처럼 마구 먹다가 그로 인해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먹여 삼킨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의 우리 상황을 읽습니다. 몇 년 전, 지구촌을 꽁꽁 묶어 놓았던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의 한도 끝도 없는 탐욕으로 인해 생겨난 재앙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탐욕의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지금 벌이지고 있는 중동 전쟁도 일부 권력자들의 탐욕으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탐욕으로 인해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지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 저자는 탐욕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건을 두고 “하나님이 치셨다”(33절)고 표현합니다. 지금 우리는 집단적인 탐욕으로 인해 징계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이 우리 자신을 먹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우리 자신의 탐욕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합니다.
요절: 33-34절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 사이에서 씹히기도 전에, 주님께서 백성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백성을 극심한 재앙으로 치셨다. 바로 그 곳을, 사람들은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다.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을 거기에 묻었기 때문이다.
기도:
저희에게 자족의 비결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탐욕의 마수로부터 저희 자신을 보호하는 길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주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참된 만족을 얻게 하셔서, “조금 더”가 아니라 “조금 덜” 누리며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