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5장: 이길 수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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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무는 동안에, 백성들이 모압 사람의 딸들과 음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모압 사람의 딸들이 자기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에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거기에 가서 먹고, 그 신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과 결합하였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잡아다가, 해가 환히 비치는 대낮에, 주 앞에서 그것들의 목을 매달아라. 그래야만 나 주의 진노가 이스라엘에서 떠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제각기 당신들의 남자들 가운데서 바알브올과 결합한 자들을 죽이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 어귀에서 통곡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한 남자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한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론의 손자이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이것을 보고 회중 가운데서 나와, 창을 들고, 그 두 남녀를 따라 장막 안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의 배를 꿰뚫으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그쳤다. 그러나 그 염병으로 이미 죽은 사람이 이만 사천 명이었다. (1-9절)

(후략)

해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압 땅에 있는 싯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싯딤은 요단강 동쪽에 근접해 있었다. 발람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성들과 음행을 하기 시작한다. 모압 여성들이 이스라엘 남성들을 그들의 신전 제사에 초청했고, 그들의 신전 제사는 혼음 파티로 이어진 것이다. 이스라엘 남성들은 고된 광야 여행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영적 긴장감을 잃었고 바알브올 신전에서 성적 쾌락에 탐닉한다. 그것은 육체적으로는 음행이고, 영적으로는 배교였다(1-3절).

31장 16절에 의하면,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발람이 발락에게 가르쳐 준 전략이었다.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 예언을 얻어내지 못한 발락은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자멸하게 만들 비법을 알려 달라고 청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 남성들은 고된 광야 유랑으로 인해 오래도록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바알브올 신전에서 벌어지는 풍요로운 제사와 제사 후에 이어지는 혼음 파티에 매료될 것이 분명했다. 광야 유랑 동안 굶주렸던 식욕과 성욕이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었다. 그 전략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결합하였다”(3절)는 말(“멍에를 졌다”는 의미)에서, 이것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공식적인 계약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바알브올 제의에 매료된 이스라엘 남성들이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설득하여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참여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일은 싯딤에서 한동안 지속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로 크게 진노하셔서 극단의 대책을 모세에게 지시하신다(4-5절).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처형하라고 명한 것은 그들이 미디안 지도자들과 정식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만들기 위한 지난 수백 년의 계획이 어그러질 위기에 봉착했다고 판단하셨기에 전염병으로 그들을 징계하신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회막 어귀에서 통곡하고 있을 때,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인 살루의 아들 시므리(14절)가 모세와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미디안 여성 고스비를 데리고 음행을 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간다(6절). 모세를 통해 행해진 처형과 염병의 징계를 우습게 여긴 행동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비느하스(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가 창을 들고 그 집으로 들어가 동침하고 있던 남녀를 찔러 죽인다(7-8절). 그 순간 염병이 그쳤는데, 이미 이만 사천 명이 희생을 당한 후였다(9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비느하스가 “나 밖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해 주었기 때문”(13절)에 그의 가문으로부터 제사장이 영원히 이어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또한 미디안 사람들을 원수로 여겨 멸망시키라고 하신다(16-18절). 모세는 개인적으로 미디안 백성에게 신세를 진 셈인데, 이제는 원수로 여겨야 할 상황이 되었다.

묵상:

25장의 이야기는 구약에 기록된 이야기들 중 독자들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격노와 그에 따른 잔인한 명령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두고 보면,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다르다.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출애굽과 광야 유랑 그리고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과거로부터 철저히 단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들 내면과 외면에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면으로는, 마음과 몸에 배인 구습을 털어버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야 했던 이유였습니다. 외면으로는, 다른 민족의 전통과 종교에 흡수되거나 동화되지 않아야 했습니다. 정착 과정에서 “진멸”(헤렘)하라는 명령이 자주 나오는 이유입니다.    

25장의 이야기만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로 앞에 나오는 발람의 이야기(22-24장)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저자가 발람의 이야기를 이상하게도 자세하고 길게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모압 왕 발락의 요청을 받고 네 번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쏟아놓습니다(23장 7-10절, 18-24절, 24장 3-9절, 15-24절). 어떤 민족도 이스라엘을 당할 수 없으며, 그 민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번영할 것이고, 장차 나타날 한 임금을 통해 주변 나라들을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알려줍니다. 

하지만 정작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상반된 행동을 합니다. 이스라엘 남성들이 행한 음행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모압인들과 정식 언약을 맺고 한동안 지속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매우 심각했고, 따라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이 사건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올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사를 드렸던 시내산 사건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25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주목하고 충격받을 일은 하나님의 격노와 살해 명령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참담한 죄악입니다. 발람을 통해 주어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도 놀랍기에 그들의 악행이 너무도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환히 드러납니다.

요절: 3절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과 결합하였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기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업신여기고 자신들의 욕망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저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죄성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백성을 향해 선한 계획을 이어가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저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주님의 은혜를 확인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 저희에게 있으니,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자격 없이 받은 그 사랑에 걸맞게 살도록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세상이 갈수록 더 어지러워 지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최근에는 Jeffry Epstein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신자들의 육신과 가정과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인것을 항상 기억하고 성결하게 지키기를 원 합니다. 도와 주십시오. 악에게 너머지지않고 성결함과 신실함으로 악을 이기는 사귐의 소리 믿음의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2. gachi049 Avatar
    gachi049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때로는 회초리로, 때로는 은혜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 악의 유혹과 욕망의 사슬에 매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저희의 원죄를 고백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에도,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채 주님을 떠나가는 가나안 성도들이 늘어가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주님, 간절히 구하오니 사귐의 교회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방황하는 영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시고, 이 교회를 통해 다시금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승강장에는 쌀쌀한 바람이 제법 세게 일렁이지만 햇살이 따뜻하고 강한 아침, 수요일입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은 민수기 25장. 22-24장에 이어진 이방예언자 발람 이야기에 이어지는 그 다음 이야기. 요단강 동쪽 모압 (발락왕의 지경)에 머물렀던 이스라엘의 타락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과 바알 종교와의 혼합)과 정화 (역병을 통한 징벌+비느하스의 열심 (zeal)) 스토리로 “영적 위기는 외부의 저주가 아닌 내부의 불순종 때문에 온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 하네요.

    모압과의 전쟁은 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타락은 모압 때문인데 왜 갑자기 미디안을 비난하는지, 아론계 제사장인 비느하스를 영웅시 하는 것은 민수기 편수당시의 필요를 반영한 것 아닌지. 질문들이 꼬리를 물지만 불순종과 징벌, 혼합주의와의 단절, 지도자의 열심을 통한 죄의 대속이라는 메시지에 마음을 모아봅니다.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내일은 오랜만에 아프리카로 출장을 떠나게 되요. 오늘도 생명의 숨을 연장해 주시고 해야할 일과 감당할 힘을 주신 이.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를 입히시는 분을 종일 찬양하고 묵상하는 오늘이 되기를.

    이 쓸데없는 죄인을 보혈의 능력으로 대속하시고 영적 이스라엘로 새로 지으신 이. 부족한 것의 마음에 새겨주신 새언약의 돌판을 붙잡고 마음 속의 바알 신당을 부시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내는 끊임없는 정화와 개혁이 내 인생의 이야기와 간증이 되었으면.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평소에 많이 쓰고 듣는 말 가운데 ‘의리’가 있습니다. 누구를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상당히 높은 평가입니다. 한결 같다는 뜻도 되고, 정의감이 있다는 말도 됩니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대화 중에도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이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성서를 읽다가도 하나님께 의리를 지키는지 아닌지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의리를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시간을 기억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이에 의리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어렵고 힘든 시기를 기억하는지 하지 않는지에서 판별됩니다. 자기가 잘 나서 일이 해결되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의리가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어떻게 풀려 났는지 기억한다면 광야에서 겪는 온갖 고민과 고생을 길고 넓은 시각에서 볼 줄 알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먹는 것 가지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압 여인들과 성적으로 결합하는 죄까지 저지릅니다. 순간적인 성충동으로 보기 어려운, 지파의 대장들이 알고 허용한 가운데 이루어진 집단 행동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행동입니다. 모세는 지파의 지도자들을 일제히 처형하고, 하나님은 백성에게 역병을 보내시어 다스리십니다. 전염병이 진영을 휩쓰는 중에도 성적 욕구를 이기지 못한 이스라엘 남자와 모압 여인을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죽입니다. 역병은 이 순간부터 사그러듭니다. 25장의 중심을 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볼 것인지, 하나님을 떠난 댓가로 볼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에게 여러번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음행이 곧 배교인 것을 알고는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을 찾아갈 때 이스라엘 여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또 모압의 남자들은 뭘하고 있었을까요. ‘국가 위기 타개를 위한 섹스 파티’에 적극 협조하는 뜻에서 조용히 있었을까요. 한마디로 다 의리 없는 인간들입니다. 영적으로 무너지기 전에 기본적인 예부터 무너집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예절 (매너나 규범 같은 것)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을 합니다. 대개 사람 사이에 실망스러운 일이 쌓이다 영적으로도 흔들립니다. 어느 정도는 예고 싸인이 있다는 뜻이지요. 다시 말하면, 일상에서 작게 보이는 일들에도 성실한 것이 영적인 시험을 잘 넘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비느하스의 ‘의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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