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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략)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기 아바림 산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아라. 그 땅을 본 다음에는, 너의 형 아론이 간 것같이, 너 또한 너의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너희 둘이 신 광야에서 나의 명을 어겼기 때문에, 그 땅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온 회중이 므리바에서 나를 거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너희들은 물을 터뜨려 회중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한 권능을 보였어야만 하였는데,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신 광야에 있는 가데스의 므리바에서 물이 터질 때의 일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모세가 주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모든 사람에게 영을 주시는 주 하나님, 이 회중 위에 한 사람을 임명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백성 앞에서 나가기도 하고, 백성 앞에서 들어오기도 할 것입니다. 백성을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데리고 들어오기도 할 것입니다. 주님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 떼처럼 되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데리고 오너라. 그는 영감을 받은 사람이다. 너는 그에게 손을 얹어라. 너는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후계자로 임명하여라. 너는 그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물려주어서,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여라. 그는, 상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가서 설 것이며, 여호수아를 대신하여, 엘르아살이 우림의 판결을 사용하여 나 주에게 여쭐 것이다. 그러면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있는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총회는 그의 말에 따라서 나가기도 하고, 그의 말에 따라서 들어오기도 할 것이다.”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의 손을 여호수아에게 얹어서, 그를 후계자로 임명하였다. (12-23절)
해설:
두 번째 인구조사가 끝나자 슬로보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나온다. 슬로보핫은 므낫세 지파의 자손으로서 딸만 다섯을 낳고 세상을 떠났다. 그 딸들은 당시까지 모든 것이 남성 중심이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토지를 분배할 때 자신들은 제외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차렸다. 그들은 모세와 엘르아살 제사장을 찾아가,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분배될 땅을 자신들이 받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1-4절). 광야 유랑 기간 동안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을 만난 것이다.
모세는 주님 앞에 나아가 이 문제를 두고 문의한다. 주님은, 딸들도 아들과 동일하게 유산을 물려 받게 하라고 지시하신다. 유산 문제에 있어서 여성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규정하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녀를 두지 못했다고 해서 유산을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지침을 주신다. 자녀 없이 죽은 사람의 유산은 가장 먼저 형제에게 권리가 있고, 형제가 없으면 아버지의 형제에게 권리가 있으며, 그마저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권리가 있다(5-11절). 이 규정은 룻기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바림산에 오르라고 하신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 정착할 가나안 땅을 보게 하신 다음, 그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 주신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신 광야에서 행한 잘못 때문이다(12-14절). 모세는 담담히 하나님의 처분을 받아들이고, 그 대신 후계자를 지명해 주시기를 청한다. 하나님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지명하셨고, 모세는 엘르아살과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후계자로 삼는다(15-23절).
묵상:
인간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그 모진 고역을 다 감당한 모세에게, 신 광야에서의 잘못을 이유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은 지나친 처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담담하게 하나님의 처분을 받아들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겪어 알았기에 그분의 처분에 이유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처분은 항상 옳고,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은 그분의 처분을 따르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개역개정에서는 ‘분복’이라고 불렀고, 새번역에서는 ‘몫’이라고 불렀습니다(전 2:10; 3:22; 5:18-19).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몫이 있습니다.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팔자나 숙명은 꼼짝할 수 없이 사람을 가두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복은 울타리 같은 것입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순명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모세는 운명과 싸운 선구자적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한계를 알고 받아들일 줄 아는 순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운명과 싸우는 그의 모습도 아름답고 하나님의 몫에 순명하는 그의 뒷모습도 감동입니다. 그래서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12:3)라고 하셨습니다.
요절: 13절
그 땅을 본 다음에는, 너의 형 아론이 간 것같이, 너 또한 너의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기도:
저희의 한계를 저희의 분복으로 오인하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욕망을 주님의 뜻으로 착각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분투하게 하시고, 주님의 뜻에는 자신을 꺾어 순명하게 해주십시오. 그 차이를 알도록 분별의 영을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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