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장 14-17절: 체휼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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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해설:

야고보 사도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가르침으로 돌아간다. 유대교적 배경에서 “믿음이 있다”(14절)는 말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유대교인들은 그 믿음이 이방인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분 짓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행함”은 “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행동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 여기서 사도는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행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은, 헬라어 구문상, “아니오”라는 답을 전제한다. 

사도는 다시 가정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헬라어 구문상, “헐벗고, 그날 먹을 것조차 없는”(15절) 상태는 극빈 상태 속에 살아가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날 먹을 것”은 “매일의 끼니”를 의미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을 상정한 것이다.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염려한다면,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16절)라고 말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것은 위선이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공급해 주어야 한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분의 뜻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17절). 가난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 사람을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존중해 주는 것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오래도록 가난의 늪에 빠져 있다 보면,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포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묵상: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고 마음에 아픔을 느끼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현상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같이 아파할 때, 인간은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됩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한 반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동정”으로서, 그 사람 곁에 서서 지켜보며 아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공감”으로서, 그 사람의 상황 안으로 들어가 고통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동정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비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반면, 공감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제공해 줍니다. 누군가 자신을 진실로 아낀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견딜 힘을 얻습니다. 또한 누군가의 아픔에 진실로 참여할 때, 우리의 존재가 유익하게 쓰임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동정과 공감의 또 다른 차이는 행동으로 이어지는가의 문제에 있습니다. 동정심에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만한 힘이 없습니다. 마음의 한 조각을 떼어 주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반면, 공감은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기꺼이 나누게 합니다. 그 사람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 “체휼하셨다”고 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애간장이 뒤틀린다”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낀다는 뜻입니다.

매일의 끼니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동정심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 사람의 상황을 돌아볼 생각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 사람의 상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불행을 아파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떼어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그것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레 19:18)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요절: 17절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기도:

저희의 굳어진 마음을 녹여주십시오. 자신의 관심사에만 매몰되어 있는 저희의 마음을 해방시켜 주십시오. 움켜쥐기만 하려는 저희의 손을 펴 주십시오. 다른 이들의 아픔을 체휼하게 해 주시고, 저희의 보물함을 깨뜨리게 해 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청량한 바람과 푸른 하늘이 기분 좋은 아침, 목요일입니다. 햇살의 세기가 여름의 시작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네요.

    오늘의 본문 (약2:14-17)을 읽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선언. 야고보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자 핵심 주제 아닐지요. 그리고 본문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입으로만 하는 봉사” (lip service)와 동일시합니다.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굶주린 형제와 자매에게 실제 쓸 것은 주지 않는 사람. 혹시 나도 모르게 그런 위선 속에 들어와 앉아있는 것은 아닐지.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자주 깨긴했지만 이제는 시차적응이 얼추 된 것 같아요. 편안하게 잠 자고, 아침에는 일어나 여느 때처럼 호흡합니다. 번영의 땅 미국, 공기처럼 거저 누리는 안전, 평화, 자유를 감사. 일상이 별일 없이 이어짐을 감사.

    하나님이 계심을, 예수의 이름—그 이름의 축복, 구원, 능력을 정말로 믿는 믿음 주시기를. 그 믿음이 나의 삶의 능력이 되고 주님의 부름에 대한 나의 응답이 되었으면. 믿음으로 소자 하나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강도 당한 자를 힘껏 돌보는 행동의 기록, 그것이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2. Bill Kim Avatar
    Bill Kim

    십자가의 수모와 격심한 고통을 당하며 생명까지도 내어주신것을 알기에 모든 생각과 언행과 재물과 시간으로 주님을 순종해야 하는것을 알면서도 한구석 에서 계산기를 돌리고있는 실정입니다.
    생각과 마음과 입으로만 믿지않고 손과 발이 같이하는 전 인격적인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오직 살아있는 믿음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세상에 알리며 주님앞에 설때까지—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며칠 전에 다른 주로 이사를 간 교우와 통화를 했습니다. 원래 동부에서 살다 엘에이로 와서 우리 교회를 다녔는데 남편이 오하이오에 있는 병원 연구소로 직장을 옮기면서 아들들은 엘에이에 남고 부부는 이사를 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 카운슬링 공부를 시작해 팬데믹과 이사를 겪으면서 다 마치고 지금은 한인 대상 자원봉사 카운슬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날도 상담을 마친 뒤여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서 잠깐 통화를 했습니다. 아무리 가까와도 나는 그에게 상담에 관해 묻지 않고 그도 내게 말하지 않지만 그날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상담하는 사람들이 ‘기가 빨린다’고들 하는데, 내담자의 처지에 공감하다 과잉 몰입하게 되어 자기도 피곤해지고 힘들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는데 본인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친구가 답하길 자기는 공감능력이 별로 없어서인지 딱하다, 안됐다 하는 마음은 들지만 자기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그냥 ‘이런 상황에선 이런 것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타고난 상담가야? 상담 교과서?”라고 응수해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말은 그렇게 해도 -공감능력이 없다고- 속마음이 꼭 그렇지는 않은 타입이라, 말하는대로 듣지 말고 맥락과 정황을 연결해서 들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경청 listening 할 때 deep listening 을 하지 않으면 ‘반대로’ 듣고 오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을 과연 믿음이라 할 수 있는가 라고 묻습니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카운슬링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친구의 경우를 먼저 짚어보자면, 교회 생활을 같이 하면서 내가 관찰하고 이해한 그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본인 말처럼 시간도 되고 물질도 되는 사람이라서 교회에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자기 진단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 친구한테 내 말을 잔뜩 하고 나서, ‘알아듣긴 했나?’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나처럼 흥분할 리도 없고, 나만큼 답답해 할 리도 없다면서 나 스스로 사그러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게 포인트라는 생각도 했을 정도입니다. 너무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 같지만, 말보다 참여, 참여보다 돈이 더 확실한 도움이라고 믿는 사람이라서 ‘시간과 물질을 떼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카운슬링을 공부하지 않았고 정식으로 상담을 받아 본 적도 없지만 상담은 공감능력 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특히 리더쉽 위치에 있는 이들이- 너무 쉽게 상담자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 흘리고 마음 아파하는 일은 실로 귀한 일입니다. 공감하는 마음은 너무나 필요하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공감을 한 뒤에 자기 나름대로 내리는 ‘처방’이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전문 상담가들은 인간의 심리와 인지, 결정, 행동 등 일련의 과정과 정신활동을 공부해서 서로의 연결점을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조언은 상대방에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믿음에 행실이 따라야 한다는 말은 명백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을 말했을 것입니다. 불이 난 집은 불을 꺼주어야 하고, 다친 사람은 의사에게 데리고 가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겐 밥을 먹여야 하고, 계속 배고프지 않도록 일자리도 찾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내 귀에 복음이면 이웃에게도 복음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행동으로 구체화해야 합니다. 여선교회 총회에서 매일 메시지를 전한 여성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팬이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Jesus never said, be my admirers, but be my followers.’ 행동을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와서 보라 come and see’고 하셨으니 움직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존재 만으로 충분하지만 사회의 가치는 행동하는 존재들이 만듭니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human being 이지 human doing 이 아니라는 드라마의 대사는 반은 맞고 반은 부족합니다. 존재는 행함으로 스스로를 증명합니다. 증명을 하려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니까 증명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요.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4. gachi049 Avatar
    gachi049

    가진 것은 많이 없지만 주님께서 주신 사랑을 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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