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5장 13-20절: 치유와 회복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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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을 때에, 누구든지 그를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줄 것입니다.

해설:

마지막으로 사도는 공동체 내에서의 삶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인다. “고난을 받는 사람”(13절)은 어려움 가운데 처한 사람들 전체를 염두에 둔 말이다. 고난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좋은 기회다. 더욱 절실히 기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즐거운 사람”은 형통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찬송해야 한다. 형통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는 고난 받는 사람들 중에 “병든 사람”(14절)을 특정하여 말한다. “교회의 장로”는 당시 교회에서 영적인 지도력을 인정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는 “감독”이라고 불렀다. 오늘로 치면 목사나 전도사를 의미한다. 병든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마법적인 효과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라고 덧붙인다. 병든 사람을 치유받는 것은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 때문이다(15절). 

병에 걸렸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죄를 지은 것이 없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는 것이다. 모든 질병이 죄에 대한 징벌로 오는 것은 아니지만, 죄로 인해 질병이 생길 수도 있다. 병든 사람이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도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사도는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라”(16절) 라고 조언한다. 그럴 때 “서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의가 임한다. 사도는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라고 말하면서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든다(17-18절).

육신적인 질병에 대해 언급한 다음, 사도는 영적인 질병에 대한 가르침으로 넘어온다. “여러분 가운데서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19절)이라는 번역은 원문에 숨겨진 의미를 담아내지 못했다. “진리를 떠나”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수동태로 되어 있다. “능동적으로” 진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진리로부터 떠남을 “당했다”는 의미다. 반면, “그릇된 길을 가다”는 능동태로 되어 있다. 

여기서 사도는 신앙을 떠나는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먼저 미혹하는 자의 속임과 유혹이 온다. 그것에 넘어가면 스스로의 의지로 불신앙의 길을 간다. 그런 사람을 돌아서도록 돕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이 된다(20절).   

묵상: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그것을 기도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각자 자신의 문제를 두고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각자 다른 사람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모여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육신적인 질병이나 마음의 질병이 생겼을 때, 영적 분별력을 가진 사람의 지도 하에 기도회를 가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한 지체의 아픔은 다른 지체도 나누어 지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질병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예수님은 이 생각을 부정하십니다. 

죄 된 삶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도 있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오는 질병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관계를 따질 수 없는 질병도 많습니다. 크게 보면, 그것도 죄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첫 사람의 죄로 인해 세상이 깨어지기 전까지 질병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로 함께 모여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거룩한 습관이며, 그럴 때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육신적인 질병이나 마음의 질병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적 질병입니다. 신실하게 믿다가 미끄러져 불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미혹하는 자(사탄)는 믿는 이들의 마음에 여러가지 의심과 회의를 심어주며 그 믿음을 흔듭니다. 그 유혹에 마음을 넘겨주면, 그 다음에는 스스로 불신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랑합니다.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질병은 잠시 동안의 고통을 주시지만, 영적 질병은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질병에 걸린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치유와 회복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교회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요절: 13절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기도:

믿음의 공동체로 저희를 불러 주셨으니, 지체들의 아픔과 고통을 돌아보게 하시고, 서로를 보듬고 기도하여 치유와 회복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속한 교회가 진정한 치유와 회복의 공동체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 일을 위해 저희 각자가 할 일을 찾고 행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는 경고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기도가 답 입니다, 개인의 기도, 공동의 기도, 특히 중보기도는 믿음과 치유의 기본인것을 고백 합니다, 기도에 게으른 죄를 짖지않게 도와 주십시오. 불치의 병에서 치유받은 교우 그리고 치유 받고 있는 교우들을 보게하는 교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육신의 치유도 중요하지만 우선 죄사함 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함을 허락하시는 미쁘심과 의로우신 주님께 찬양을 드리는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야고보는 기도하고 찬송하라는 당부로 편지를 마칩니다. 고난 당하는 사람 가운데 특히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동체가 기도로 그를 도와주라고 당부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도에 대한 야고보의 신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기도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쉬운성경)’ 혹은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라고 말합니다. 중보기도는 기도자의 능력을 드러내는 자리가 되기도 하지만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를 찬양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각자가 올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은 공동체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소리에 응답하신다고 믿습니다. 5월 말경에 교황 레오 14세의 회칙 “고귀한 인류”가 발표되었습니다. 교황의 첫번째 회칙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성 수호와 인간 중심적 가치 회복’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교황의 회칙은 내용 면에서 방대합니다. 전체를 다 읽지는 않고 하일라이트로 뽑은 단락들을 읽었습니다. 종교인이나 교수들이 해설한 글도 읽었습니다. 언론 기사의 대부분은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미래를 두고 우리가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간의 의지와 방향이라는 교황의 강조점을 꼽습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목적이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여 완벽하게 만드는 데 머물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사회적으로 도덕적인 진보를 할 수 있는 운명공동체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교황은 이 중대한 결정과 선택을 새로운 ‘바벨탑’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인류가 함께 머무는 도시 ‘예루살렘’을 건설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의인의 기도가 큰 역사를 이룬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교황의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평신도 한 사람의 신앙이 크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주일에 정성껏 공동예배를 올리고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고 좋습니다. 그게 안되면 시무룩해지고 맥이 빠집니다. 세계 평화나 인류의 진보 등은 생각할 능력이나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모여 내 인생이 되듯, 나의 작은 신앙의 진보는 ‘고귀한 인류’의 진보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뭐든 다 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인공지능을 닮아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도 (이 비슷한 말) 교황의 회칙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인공지능을 닮는다는 것은 사람의 고유한 가치와 한계를 수치화해서 능력과 무능으로 표준화 하는 인공지능적인 계산법을 뜻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일에 쓸모가 있는지를 보는 시선입니다. 이런 시선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약자와 피해자, 병든 자와 억압받는 자들, 우리 시대의 ‘고아와 과부’ 이웃을 볼 때 이런 시선으로 본다면 그건 우리가 인공지능을 닮았다는 것이 됩니다. 야고보는 누군가가 진리에서 떠나 헤맬 때 그를 잘못된 길에서 다시 오게 하라고 요청합니다. ‘잘못된 길’이라고 하며 자동적으로 ‘죄의 길’이라고 판단합니다만, 어려움과 슬픔을 겪는 이를 도와주라는 당부로 읽으면 그건 누구나이고 모두 – anyone and everyone – 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의 가정, 교회, 사회를 가슴에 품고 간절한 기도를 이어나가게 하소서. 바벨탑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세우게 하소서.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간 밤에는 수면유도제의 힘을 빌러 조금은 더 잘 수 있었습니다. 화요일. 창밖에는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새벽 공기가 선선하네요.

    본문을 읽습니다 (약5:13-20). 야고보서의 마지막 구절들. 결론은 기도의 권면. 기쁠 때와 슬플 때, 고난 받을 때와 아플 때. 기름을 바르며, 서로 죄를 고백하며. 함께.

    기도의 능력에 대해 잠시 생각의 발길이 머뭅니다. 오랫동안 매일 간구해왔단 기도의 제목들. 응답은 때로 너무 느린 듯 느껴지고 소망과 확신의 감정을 매일 붙잡고 기도를 되풀이라는 것이 때로는 너무도 버거운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함께”라는 키워드가 더 소중한 것 아닐지요.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같이 아파해줄 사람들. 아플 때 내게 기름을 주어주고 낙심하고 실족할 때 나를 다시 일이켜 세워줄 사람들. 우리 교회가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기를. 내가 공동체의 자체들에게 그런 형제가 될 수 있다면.

    오늘은 아침 일찍 건강검진이 잡혀있어 물까지 포함 절대금식을 하고 있어요. 밤에 그나마 잠을 잘 수 있어서, 또 아침에 일어나 신선한 아침공기를 숨쉬고 있어서, 오늘도 삶이라는 사랑의 명령을 주심에 감사. 내가 주안에, 주께서 내 안에 계셔 무엇이든지 바라는 대로 구하면 그대로 이루는 삶. 기도의 역사하는 힘을 하루하루 체험하는 인생, 그런 오늘이 되기를.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뜻이 제 모든 기도의 제목 가운데 가장 완전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지시길. 그 때를 기다려. 기다려.

  4. gachi049 Avatar
    gachi049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신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합심하여 구할 때 하늘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사귐의 교회 공동체에게 주신 사명을 신실하고 의롭게 감당하게 하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도록 성령님을 통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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