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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으며,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단련하셔서,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목표 곧 여러분의 영혼의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해설:
본론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도는 성부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다(3절).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여 사도는 자신을 수신자들과 같은 위치에 세운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새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산 소망”이 주어진다. “산 소망”은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얻는 “헛된 소망”과 대비된다.
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부활은 영원한 차원에 대한 증거이며, 따라서 거듭난 사람들에게 주어진 소망은 영원하다. 거듭난 사람들이 영원한 차원에서 얻게 될 것들에 대해 사도는 세 가지의 형용사(“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를 사용하여 세상에서 얻는 것들과 대비시킨다(4절).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위해 영원한 유산을 “하늘에” 간직하고 계시다. 여기서 “하늘”은 영원한 차원에 대한 비유말이다. 사도는 그것을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5절)이라고 표현한다. 문제는 마지막 날까지 믿음을 지키는 일이다. 사도는, 수신자들이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그들을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어서 사도는 수신자들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언급한다. 그들은 지금 “여러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고”(6절) 있다. 그 시련은 “잠시동안” 당하는 것이다. 하늘에 보관되어 있는 영원한 유업과 비교할 때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은 순간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기뻐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고난은 믿음을 단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7절) 해준다. 시련을 당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열매가 있다는 의미다. 그 열매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견고한 믿음과 뜨거운 사랑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본 일도 없으면서 사랑하고 믿으며 “영광스러운 기쁨으로”(8절) 그분을 기뻐한다.
사도는 “믿음의 목표”가 “영혼의 구원”에 있다고 분명히 한다(9절). 죽은 후에 영혼이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은 구원의 한 단계일 뿐이다. 구원의 완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약속된 구원은 “영혼 불멸”이 아니라 전인적인 변화다. 여기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미래형)가 아니라 “받고 있는 것입니다”(현재형) 라고 표현되어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구원을 지금 누리고 있다는 의미다.
묵상:
이 편지를 쓸 때, 소아시아의 다섯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던 신도들은 심한 박해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남겨진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심한 박해는 주후 64년의 로마 대화제 사건 이후 네로 황제에 의해 일어났고, 주후 81-94년까지 통치했던 도미시안 황제에 의해서도 일어났습니다. 다른 황제들이 다스리던 때에도 크고 작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신도들은 “자기 땅에서 이방인으로” 취급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런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던 신도들에게 격려의 말을 씁니다. 우선,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어진 존재들임을 강조합니다. 거듭남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은 하늘 아버지에 대해 상속권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믿는 이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을 상속의 대상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을 강조한 이유는 박해로 인해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지금 당하는 고난은 “잠시동안”의 일이고, 하나님에게서 받을 유산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믿는 이들을 그분의 능력으로 보호하고 계시며, 고난을 통해 그들의 믿음은 정금같이 연단될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그 사실을 알면 이를 악물고 고난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시련 중에도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길에서 완주할 때, 우리는 결국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요절: 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으며…
기도:
주님, “잠깐 동안”의 이 삶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백년을 산다 해도 돌아보면 “잠깐”입니다. 저희가 이 땅에서 누리는 것들도 “잠깐”이고, 당하는 고난도 “잠깐”입니다. 이 “잠깐 동안의 생”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 살게 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 저희에게 약속된 “산 소망”을 늘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백년의 인생에 비하면 태중에서의 아홉 달이 잠깐인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에 비하면 이 땅에서의 백년은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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