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 22-25절: 사랑이 자라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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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입니다.

해설:

사도는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설명한 다음, 그 근거에서 권면의 말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리에 순종함으로” 그들의 영혼이 “정결하게”(22절) 되었다는 것이다. 영혼의 정결함은 “서로 사랑하기”로 표현된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사랑할 만한 사람들로 변화되었다. 그 변화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함으로 인해 구체화된다. 그래서 사도는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라고 권면한다. 

사도는, 믿는 이들이 거듭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다시 태어났습니다”(23절)는 완료 수동태로 되어 있다. 태어나는 것은 철저히 수동적인 사건으로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신다. 

여기서 사도는 이사야 40장 6-8절을 인용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24절)는 말은 23절에서 말한 “썩을 씨”에 대한 것이고,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25절)는 말은 “썩지 않을 씨”에 대한 것이다. 영원한 씨앗(“말씀” 혹은 “복음”)을 통해 거듭났으니, 거듭난 사람도 영원하다. 이것이 “복음을 통해 전해진 말씀”이다.

25절의 “말씀”은 헬라어 ‘레마’의 번역이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레마’는 한 개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개인에게 임한 ‘로고스’가 ‘레마’인 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혹은 읽을 때), 자신의 마음에 울림이 임할 때 ‘레마’가 된다.     

묵상:

22절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 본문을 보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에서 사도는 ‘필라델피아’(인간적인 사랑)를 사용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에서는 ‘아가파오’(신적인 사랑)를 사용합니다. ‘필리아’는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아가페’는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아가페’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한 히브리어 ‘헤세드’의 헬라어 대응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에서는 명사 ‘필리아’를, 뒤에서는 동사 ‘아가파오’를 사용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나는 것은 사랑의 능력에 있어서 변화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의 정결함을 얻는 것이고, 영혼의 정결함은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죄는 사랑의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변화받지 않고는 ‘필리아’의 사랑조차 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거듭난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불완전한 사랑이나마 행할 능력을 얻습니다. 사도는 그 사랑의 능력을 “뜨겁게” 실천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사도는 헬라어 동사 ‘아가파오’를 사용합니다.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인 사랑(‘필리아’)은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묵상은 부활하신 후에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를 생각나게 합니다(요 21:15-17). 이 대화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아가파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물으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필레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은 “저는 주님이 저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지 못합니다. 저의 사랑은 깨어지기 쉬운 ‘필리아’의 사랑일 뿐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두 번이나 같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은 후, 예수님은 “네가 나를 ‘필리아’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대화를 통해 예수님이 전하고자 한 의미를 알아차렸던 것 같습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닙니다. 사랑은 실천을 통해 자라고 변화됩니다. 우리가 거듭났다고 해도 여전히 연약한 죄인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을 따라 불완전한 사랑이나마 실천하면, 사랑의 능력이 자라고 사랑의 성격도 변합니다. 씨앗은 땅에 심어야만 그 안에 있는 생명력이 발아되는 것처럼, 사랑은 실천을 통해서만 자라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체험을 통해 깨달은 사랑의 비밀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절: 22절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기도:

저희의 사랑이 저희 마음에만 머물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사랑이 입술에만 있지 않게 해주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사랑하게 하시어, 사랑에 있어서 자라가게 하시고, 저희도 때로 주님의 그 사랑을 행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자는 하나님에게서 낳고 하나님을 알지만 사랑하지 않는자는 하나님을 모른다“라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저희들을 이토록 사랑하여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독생자 까지 포기하시는 그토록 소중한 사랑에 빛진자 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머리에서 계산기를 돌리면서 사랑하는 흉내만 내고있는 위선자 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것을 알면서도 주저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를 포기않는 사랑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조금씩이나마 주님 닮아가고 사랑으로 순종하는 소망을 원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주님앞에 설때까지—-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

  2. gachi049 Avatar
    gachi049

    아가페의 사랑줄로 묶어 주신 믿음의 공동체가, 입술로만 사랑을 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품격 있는 참 크리스천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의 사랑의 눈을 뜨게 하사, 온전한 사랑을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밤에는 전체회의 plenary 가 9시 반되서야 끝났습니다. 2028년 4년차 쥬리스딕션과 총회에 참석할 연회대표단 (평신도+목회자)의 선출과, 2026년 연회법안 (권고,건의, 규칙안건)의 토론과 결정 투표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온종일 회의장에서 회의하고, 몇 걸음 걸어가면 있는 연회장에서 식사를 하니 화씨 100도가 넘는 더운 날씨도 잘 모르고 하루가 갔습니다. 아직은 100도 정도지만 7월은 화씨 120도를 웃도는 날이 많답니다. 연회준비팀은 엘에이의 고물가 때문에 교통이 편한 도심주변의 대학교 캠퍼스나 호텔을 연회 장소로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보니 연회의 최북단과 최남단에서 오려면 200마일 넘게 운전해야 하는 이곳 리조트로 결정할 수 없었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하와이와 퍼시픽 아일랜드 지방 참가자들은 항공편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저렴한 티켓을 찾아 구매하는 수고를 기울입니다. 이번 연회에는 현장 참석자가 1,200명 정도라고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참석하는 이들도 200여명 이상 될 듯 싶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개체교회가 연회참가 경비를 개감당하지만 평신도 참가자들은 자비로 참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연회에서 보는 평신도는 적은 수에 늘 보는 얼굴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연회의 꽃’이라는 안수식이 있습니다. 연회 안수식은 늘 감동적입니다. 22절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를 예식으로 표현한 것이 안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목회자는 진리에 순종하여 사랑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입니다. 안수식은 목회자가 꾸밈 없는 사랑과 순결한 마음을 ‘맹세’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안수를 받는 목회자는 물론이요 그를 위해 기도해온 가족과 친구들, 지금 함께 하는 교우들(과 앞으로 만나게 될 교우들)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사랑의 약속을 하는겁니다. 사랑의 능력은 사랑할 때 자라납니다. 우리 몸의 근육처럼 사용하면 늘어나고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지고 줄어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로고스에서 레마로 바뀌는 것을 경험합니다. 주일예배 때 듣는 설교가 내게 하는 말씀으로 들릴 때 로고스는 레마가 됩니다. 아침에 읽는 성경 구절이 마음에 파고들 때 로고스의 문자는 레마가 되어 가슴에 새겨집니다. 이기심과 동정과 희생이 대강 섞인 듯한 불완전한 사랑으로 이웃을 대할 때에도 사랑의 능력은 성장합니다. 운동선수가 되려고 운동하는 것 아니고, 바디빌딩 대회에 참가하려고 운동하는 것 아니어도 우리 몸은 움직이는 만큼 운동합니다. 로고스가 레마가 되듯, 인간의 사랑 필라델피아, 필리아가 아가페가 되는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완전함에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길을 갑니다. 주의 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오시고 사랑을 주시고 사랑을 완성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개이고 푸른 하늘이 구름사이에 얼굴을 비춥니다. 일요일 아침.

    주어진 본문을 읽습니다 (벧전 1:22-25). “사랑이 자라는 법”이라는 목사님의 묵상 타이틀이 인상적입니다. 진리에 복종함으로 거듭나 “형제의 사랑 (펠레오)”이 우리 내면의 성품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씨를 심어 더 큰 열매 즉 “완전한 사랑” (아가페)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죠? 목사님의 말씀풀이가 오늘따라 더 심오하게 느껴지네요. 육체는 풀, 모든 영광은 풀의 꽃.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피조물의 허무. 그러나 우리 안으로 들어와 내 삶의 일부가 된 말씀 (레마), 그것은 영원한 것 맞겠지요?

    한국은 주일 아침, 미국은 아직 토요일 저녁입니다. 어제는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의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어요. 비오는 토요일 오후라 길이 많이 막혔지만 큰 문제없이 잘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 새로 맞는 조카 며느리가 믿는 사람이라서, 불교에 심취했던 조카 결혼식이 기독교 분위기로 치뤄져서 더 좋았네요.

    구주의 보혈로 거듭난 사람. 거듭남에 걸맞은 사랑의 성품이 내 안에 정말 있는지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기를. 내 안에 들어와 내 가치관과 인격의 일부가 된 진리 곧 레마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 되어 어둠 가운데 헤매지 않고 주의 길을 따르는 하루 하루,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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