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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입니다.
해설:
사도는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설명한 다음, 그 근거에서 권면의 말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리에 순종함으로” 그들의 영혼이 “정결하게”(22절) 되었다는 것이다. 영혼의 정결함은 “서로 사랑하기”로 표현된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사랑할 만한 사람들로 변화되었다. 그 변화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함으로 인해 구체화된다. 그래서 사도는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라고 권면한다.
사도는, 믿는 이들이 거듭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다시 태어났습니다”(23절)는 완료 수동태로 되어 있다. 태어나는 것은 철저히 수동적인 사건으로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신다.
여기서 사도는 이사야 40장 6-8절을 인용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24절)는 말은 23절에서 말한 “썩을 씨”에 대한 것이고,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25절)는 말은 “썩지 않을 씨”에 대한 것이다. 영원한 씨앗(“말씀” 혹은 “복음”)을 통해 거듭났으니, 거듭난 사람도 영원하다. 이것이 “복음을 통해 전해진 말씀”이다.
25절의 “말씀”은 헬라어 ‘레마’의 번역이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레마’는 한 개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개인에게 임한 ‘로고스’가 ‘레마’인 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혹은 읽을 때), 자신의 마음에 울림이 임할 때 ‘레마’가 된다.
묵상:
22절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 본문을 보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에서 사도는 ‘필라델피아’(인간적인 사랑)를 사용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에서는 ‘아가파오’(신적인 사랑)를 사용합니다. ‘필리아’는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아가페’는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아가페’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한 히브리어 ‘헤세드’의 헬라어 대응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에서는 명사 ‘필리아’를, 뒤에서는 동사 ‘아가파오’를 사용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나는 것은 사랑의 능력에 있어서 변화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의 정결함을 얻는 것이고, 영혼의 정결함은 “사랑할 만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죄는 사랑의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변화받지 않고는 ‘필리아’의 사랑조차 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거듭난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불완전한 사랑이나마 행할 능력을 얻습니다. 사도는 그 사랑의 능력을 “뜨겁게” 실천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사도는 헬라어 동사 ‘아가파오’를 사용합니다.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인 사랑(‘필리아’)은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묵상은 부활하신 후에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를 생각나게 합니다(요 21:15-17). 이 대화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아가파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물으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필레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은 “저는 주님이 저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지 못합니다. 저의 사랑은 깨어지기 쉬운 ‘필리아’의 사랑일 뿐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두 번이나 같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은 후, 예수님은 “네가 나를 ‘필리아’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대화를 통해 예수님이 전하고자 한 의미를 알아차렸던 것 같습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닙니다. 사랑은 실천을 통해 자라고 변화됩니다. 우리가 거듭났다고 해도 여전히 연약한 죄인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을 따라 불완전한 사랑이나마 실천하면, 사랑의 능력이 자라고 사랑의 성격도 변합니다. 씨앗은 땅에 심어야만 그 안에 있는 생명력이 발아되는 것처럼, 사랑은 실천을 통해서만 자라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체험을 통해 깨달은 사랑의 비밀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절: 22절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기도:
저희의 사랑이 저희 마음에만 머물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사랑이 입술에만 있지 않게 해주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사랑하게 하시어, 사랑에 있어서 자라가게 하시고, 저희도 때로 주님의 그 사랑을 행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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