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 8-12절: 진정한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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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로우며, 겸손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혀를 다스려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입술을 닫아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며, 그것을 좇아라.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서는 얼굴을 돌리신다.”

해설:

“마지막으로 말합니다”(8절)는 2장 13절부터 시작된 가족 관계에 대한 가르침의 결론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여러분”은 믿음을 사는 가족들을 가리킨다. ‘믿음의 가정’과 ‘확대된 가정으로서의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가정과 교회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운명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의 지침을 준다. 

첫째, “모두 한 마음을 품으라.” 가스라이팅으로 만들어지는 전체주의적 공동체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저절로 형성되는 하나됨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둘째는 “서로 동정하라.” 여기 사용된 헬라어 ‘쉼파테스’는 영어의 sympathize의 뿌리다. “곁에서 함께 아파하다”는 의미다.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다른 지체도 같이 아파하는 것이 당연하다. 

셋째,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앞(1:22)에서 사용된 ‘필라델포이’의 번역이다.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인 사랑을 실천할 때 ‘아가페’의 사랑으로 자랄 수 있다. 

넷째, “자비로우라.” 헬라어 ‘유스프랑크노스’는 애간장이 뒤틀릴 정도로 같이 아파하는 것을 가리킨다. 진정한 자비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체감할 때 일어난다. 

다섯째, “겸손하라.” 헬라어 ‘타페이노프론’은 “마음을 낮추다”는 의미다. “악으로 악을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9절) 라는 말은 ‘타페이노프론’의 의미를 풀어 쓴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고 오해와 모욕과 고난을 견디는 태도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공연히 손해 보고 고난 당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이렇게 명령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 나라에 보관되어 있는 영원한 보상을 의미한다. 

10절부터 12절은 헬라어 번역 구약성경의 시편 34편 12-16절을 인용한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10절)은 영원한 유산을 소망하며 유혹과 시련을 견디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은 무엇보다 말로 짓는 죄(“악한 말”과 “거짓 말”)를 조심해야 한다. 혀의 죄도 문제이지만, 손과 발로 짓는 죄도 문제다. 그래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여라“(11절)고 권한다. 주님께서는 의인의 행동을 살펴보시고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지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서는 눈을 돌리신다(12절).

묵상:

“겸손” 혹은 “온유”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우리 말에서 “겸손”과 “온유”는 다른 의미이지만,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는 같습니다. 그것을 우리 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겸손”으로, 때로는 “온유”로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 말에서 “겸손”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가리키고, “온유”는 한자어 그대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 혹은 온유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외적인 행동에 관한 것이기 이전에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기에 자신의 힘으로 대응하거나 응징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겸손 혹은 온유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을 때,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복을 빌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민 12:3) 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일컬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 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예수님은 겸손(온유)에 있어서 최고의 모델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도,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고 온갖 모욕과 수치와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여기서 준 다섯 가지의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라는 권고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그는 하인들에게 권면하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2:18-25). 믿는 이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생각하며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공연한 고생이나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바로잡고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절: 9절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기도:

겸손한 몸짓을 짓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진실로 겸손하게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고 보응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 겸손의 왕이시여, 저희에게 참된 믿음을 주셔서 주님을 본받아 행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는 교우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미리 약속이 되어 있던 것은 아니고 갑자기 잡힌 일정이었습니다. 세 가정이 모였는데 두 집은 은퇴를 했고, 한 집은 며칠 정도 자기 사업체에 나갑니다. 교회의 재정 악화나 교인 감소 등의 어려움을 다 잘 아는 가정들이어서 교회를 이야기할 땐 같은 열정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성격이나 신앙관 (신학과 교회관 등)은 많이 다릅니다. 어제 모인 6명 중엔 목소리 엄청 크고 다혈질인 장로가 있고, 어느 집 부인은 목소리가 작고 말도 아주 천천히 합니다. 교회 전반적으로 모든 면에 관심이 많은 권사와, 자기가 속한 부서의 일은 백퍼센트 꼼꼼히 챙기는 완벽주의 권사도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을 중하게 여겨서 매사에 말을 아끼는 아주 신중한 이도 있고, 신뢰가 가는 사람한텐 자기 아는 것을 감추지 않고 잘 말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6명이 모여도 이렇게 다른데 60명, 160명, 320명…모이는 교회라면 어떻겠습니까. 베드로 사도는8절에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로우며, 겸손하십시오’라고 당부합니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 보는 태도입니다.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 안에서 생기는 감정의 교류입니다. 현대인에게 교회가 이렇게까지 가깝고 정겨운 관계망인지 생각해 봅니다.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는 편하고 쉬운 곳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보는 눈이 많고, 말이 많으며 저마다 속으로 저울질을 하는 곳이 교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에서 다닌 교회는 기존의 교회와는 다른 모습이었으면 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가족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 주의, 개인주의를 우선적으로 고쳐 나가자고 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생활에서 실천하고 사회를 바꾸는 데까지 가자는 희망을 갖고 결단을 했습니다. 그런 교회지만 역시 재정적인 짐을 감당하지 못해 목사님은 ‘교회 밖의 일’을 찾아야 했고, ‘교회 밖의 일’은 교회를 흡수해 자기 몸을 키우는데까지 갔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한국에서 만난 교우들은 그 때의 일들을 겪은 이들이고, ‘모이는’ 교회는 없어졌어도 ‘모였던’ 교회는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하듯 몇 번씩, 몇 시간씩 만나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고 함께 울었습니다. 우리는 그 때 한마음으로 서로를 동정하고 사랑하고 자비롭게 대하며 겸손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옛 교회 식구들은 정말 그렇게 서로를 챙기며, 오늘 본문처럼 살았더랬습니다. 그때는 됐는데 지금은 왜 안될까? 이 질문도 나왔습니다. 그때는 ‘젊었으니까, 뭘 몰랐으니까, 가진게 없었으니까’ 되었지만 지금은 철이 나서, 세상 무서운 걸 아니까 안 되는거라고 조금은 허탈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악해져서라는 말도 나온 것 같습니다. 정말 이제는 안되는걸까요. 그때 그 교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재정 뿐 아니라 관계적인 어려움도 너무 많았습니다. 교우 전원이 다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6명 모여도 다 다른데 그 교회는 예술가, 교수, 직장인, 대학생, 장애인, 사업가, 사회사업가, 정치지망생 등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졌으니 한마음이 되기란 참 어려운 집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고, 나눔이 풍성했으며 서로에 대한 지식도 늘어났습니다. 어쩌면 서로의 개성과 독특성을 이해하는 능력이 많았구나 싶습니다. 서로가 자기와 다른 점에 끌리고, 그 점을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싶습니다. 그 교회에서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만, 신학적으로는 자기부정과 예언자적 상상력과 고백에 대해 배웠고, 교회 생활면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고 나누는데서 오는 위험을 감수하며 극복하는 일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이상적인 교회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문제와 제약을 가졌지만 방향 면에서 만큼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상적인 부부라고 할 순 없지만 주님을 향한 방향이 옳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듯이,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것은 결국 방향 뿐인지 모릅니다. 어제 점심 때 대화에서도 감리교단의 문제점이 나왔습니다. 목회자들에 대한 실망이 교단의 무능으로 이어졌습니다. 남편과 나는 교단의 문제와 개개인 목회자 (교인)의 문제를 하나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만, 자기를 들여다 보는 것 보다 다른 것에서 답을 찾으려는게 일반적인 반응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며, 그것을 좇아’ 사는겁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부족한 우리가 모여서 부족한 교회를 이룹니다. 부족해도 당신을 향해 걷기만 한다면, 주님의 마음을 품기만 한다면…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2. Bill Kim Avatar
    Bill Kim

    모든것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말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는“을 기억하면서도 공평하시고 의로우시고 사랑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 못하는 죄인입니다. 저희들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인격과 인품으로 되살아나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과 함께 멍에를 지고 동행하는 삶이 더없이 귀한 축복인것을 세상에 알리면서 본향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사는 가정과 교회와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3. gachi049 Avatar
    gachi049

    주님, 제가 아직도 믿음이 부족하여 모욕하는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분을 내곤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셨던 말할 수 없는 모욕과 죄 없이 당하신 잔혹한 십자가 형벌, 억울함, 침 뱉음의 고난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겸손한 자세로 오히려 복을 비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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