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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러므로 여러분이 열심으로 선한 일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해설:
13절은 수사적 질문이다. 기대하는 답은 당연히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해칠 사람은 없다”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14절) 이라고 말을 잇는다. “정의”로 번역된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는 “의로움” 혹은 “올바름”으로 번역할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앞에서 하인들이 아무 잘못 없이 불의한 주인에게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했다(2:18). 그럴 때 억울함을 견디고 고난을 짊어지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가르쳤다.
믿는 사람이며 누구나 그런 현실을 당할 수 있다. “고난을 받으면” 이라는 말에는 참고 견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는 예수님의 팔복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마 5:10). 그들에게서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면 믿음을 떠날 수 있다. 그래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라고 덧붙인다.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은 아내들에게 준 가르침에서도 나왔다(6절).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섬겨야 한다(15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고 있다면, 악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억울한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로운 길을 계속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당신은 무엇을 바라기에 그렇게 행동합니까?”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럴 때면 자신이 믿는 바를 설명해 줄 수 있도록 준비해 두어야 한다(16절).
답변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답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온유함”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전도가 감화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구원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로운 삶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아내들에게 준 가르침에서도 말한 것처럼,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일은 현세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현세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의는 결국 승리한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고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17절) 라는 말에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감수하고 선을 행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만사형통의 삶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따라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므로 자주 고난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는다.
묵상: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요 16:33) 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당할 수도 있다”가 아니라 “당연히 당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팔복을 말씀하신 후에도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마 5:11)고 하셨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가능성”도 아니고 “옵션”도 아니라, “필수” 라는 뜻입니다.
제자로 따라다니던 시기에 베드로는 그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 당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자, 베드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면서 예수님을 꾸짖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상 왕국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했고, 그분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예수님이 고난 당하는 자리에까지 따라갔다가 참담하게 실패합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 참담한 실패에서 회복되었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예수님이 왜 고난 당하고 죽으셨어야 했는지를 알았고, 자신에게 맡겨진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뒤를 따랐고, 순교로써 인생길을 마쳤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선하고 의로운 삶에는 항상 고난(손해, 혐오, 배척, 박해, 순교)이 따른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원하는 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자녀 모두가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는 이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된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한 복을 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요절: 17절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기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희 마음은 십자가가 아니라 면류관을 더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감당하기보다는 주님의 능력으로 고난을 피하기 원합니다. 저희의 이 병든 마음을 고쳐 주십시오. 주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감당할 믿음의 실력을 기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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