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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가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해설:
앞에서 사도는 신도들에게 의를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은 복된 일이라고 말한 다음, “그리스도께서도” 고난 당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처럼 의로운 분도 고난 당하셨다면, 그분을 믿는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다”는 말은 구약 시대의 제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짐승으로 드리는 속죄 제사는 반복해야 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제사를 드리셨고, 그 제사는 영원한 효력을 가진다.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는 말씀은 이사야 53장 11절을 소환한다. “고난의 종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림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는 표현은 부활 사건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고, 죽음과 부활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다. 교회 전통에서는 죽음과 부활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해 왔다.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뉘어 있는 동안, 그분의 영은 잠시 분리되어 따로 활동했다는 뜻이다.
“옥에 있는 영들”(19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천주교회 전통에서는 “연옥에 처한 영혼들”로 해석하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진 영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도신경의 “음부에 내려가시어”(descended into hell) 라는 고백은 이러한 해석에서 나왔다. 개신교회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이 고백이 삭제되어 있다. 구원받는 데 필수적인 신앙고백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노아 시대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20절)을 “옥에 있는 영들”에 대한 예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죽음의 세계에 가셔서 복음을 전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노아의 물과 세례의 물을 연결시켜 설명한다. 이러한 해석을 “예표론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노아와 그 가족이 물에서 구원받은 것은 믿는 이들이 세례를 통해 받는 구원을 “예표” 즉 “미리 보여준다”는 뜻이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육체의 때를 씻기 위함이 아니라, 온 존재가 새로 지음받는 사건이다. 세례 받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21절) 거듭나고, 그 결과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가지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베드로 사도는 남편들에게,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라고 했다(7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셔서 모든 존재를 다스리고 계시다(22절).
묵상:
예수께서 지상에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는 다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부활과 승천, 성령을 통한 다스림과 재림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이해력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의 한계 안에 갇혀 있고, 우리의 언어는 물리적 세계 안에서 일어난 일들만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가 쓴 말을 완전히 해명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부활하시기까지 그분이 어떤 상황에 계셨는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제대로 알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금 상태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벧전 3:22) 라고 했는데, 이것도 사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분이 영으로 옥에 갇힌 영들에게 가서 선포하셨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해명하려는 노력은 교만의 소치일 수도 있고, 어리석음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영적 세계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말 해서도 안되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청동 거울로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더듬어 알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아는 것을 근거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이고, 그분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선한 양심으로 거듭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분은 지금도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을 다스리시고, 때가 찼을 때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알고 믿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꺼이 고난을 감당합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는 더 더욱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절: 18절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기도:
눈을 감고 하나님 나라를 상상합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저희에게 확신하게 하신 그 영원한 나라를 상상합니다. 그 상상이 현실로 드러날 날을 기다립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주님의 뒤를 따라 가기를 다짐합니다. 저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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