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5장 1-7절: 교회라는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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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장로로 있는 이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복종하십시오. 모두가 서로서로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해설:

사도는 공동체 내의 삶의 문제로 눈길을 돌려 먼저 “장로로 있는 이들”(1절)에게 권면한다. “장로”는 한 지역 교회의 지도자를 가리킨다. 유대적 문화권에서는 “장로”로,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는 “감독”으로 불렀다. 당시는 교권 제도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의 개념으로 그들의 위치나 역할을 추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지역 교회에서 영적 지도력을 인정받아 세움받거나, 사도들에 의해서 임명되었다. 

장로들에게 지침을 주면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에 대해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한다. 하나는 “같은 장로로서” 라는 말이다. 이 표현으로써 베드로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내려놓고 그들과 동일화한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 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이라는 말은 “목격자” 라는 의미와 “증언자” 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그것은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다는 암시도 포함한다. 

4장 13절에서 사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재림 시에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베드로 사도는 지금껏 그분의 고난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 이라는 표현으로써 사도는, 장로들도 자신과 함께 그 영광에 참여할 것이라는 소망을 피력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라는 은근한 도전이다. “나와 같이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그리스도로 인해 당하는 고난을 즐거워하십시오” 라는 의미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2절) 라는 명령은 요한복음 21장 15-17절의 대화를 생각나게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받은 명령을 장로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장로는 목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지만, 그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은 “목자장”(4절)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양떼” 라고 표현했다. 장로들은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신도들을 돌보아야 한다. 그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면, 장로들은 1)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하여” 할 것이고, 2)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할 것이며, 3) “지배하려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3절)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4절) 것이다. 

1절과 연결해 보면, “젊은이들”(5절)은 신도들을 가리킨다.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복종하십시오” 라는 명령은 장로들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요청이다. 장로들의 의무가 순전한 마음으로 신도들을 돌보는 것이라면, 신도들의 의무는 장로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서로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라는 명령은 “복종하십시오”라는 명령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서 사도는 잠언 3장 3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겸손한 사람의 복을 강조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3:8-9), 겸손은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 주실 것을 믿고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6절과 7절은 겸손에 대한 가장 완벽한 정의라 할 수 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의 지역 교회로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알맞는 은사를 주십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력 넘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의 생명력을 위한 또 다른 조건은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질서는 일렬로 줄을 세워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맨 윗 자리에 앉고 싶어합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서로 상대방을 높이고 섬기는 것입니다. 모두가 종이 됨으로 모두가 주인이 되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서 그 나라를 실현하고 경험합니다. 그럴 때 각자에게 주어진 다양한 은사가 합하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룹니다. 

“스스로 알아서 서로를 섬기는” 믿음의 공동체에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제도자는 군림하는 사람이지만, 교회의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가장 높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낮은 사람입니다. 섬기는 일에 있어서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신 주님을 닮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낮아짐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 라는 말이 교회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군림하고 지시하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섬김이” 라는 타이틀이 더 좋아 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종”입니다. 과거에 부흥사들이 “목사를 ‘종’이라고 부르지 말라. 하나님의 종이지 당신들의 종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자’ 라고 불러라”고 호통치곤 했습니다. 낮아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사자”는 동물의 왕을 상상하게 하지만, 실은 “사환” 이라는 의미입니다. 어감은 좋을지 몰라도 의미는 동일합니다.

“리더십”(leadership) 이라는 말도 믿음의 공동체에는 맞지 않습니다. 종의 과업은 “이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팔로워십”(followership)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주님을 신실하게 따를 때, 영적 권위가 형성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모두가 지도자가 되는 곳입니다. 서로의 종이 되어 서로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절: 6절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기도:

저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저희에게 은사를 주셨음을 의심하지 말게 해주십시오. 믿음의 공동체로 연합하여 서로를 섬김으로 저희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십시오. 서로 낮아져 서로를 섬김으로 교회의 신비를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gachi049 Avatar
    gachi049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어찌 감히 하나님을 종처럼 여기며 내 뜻대로 구하며 살아왔는지요. 우리의 삶에 가득했던 교만과 물욕을 이 시간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주님, 저희의 삶을 온전히 창조주 하나님께 맡기오니 주님의 거룩한 통치 아래 저희를 붙잡아 주옵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날마다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신실한 자녀가 되게 하소서. 우리 교회와 가정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의 공동체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처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 한점 없이 개인 하늘이 반갑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벌써 부터 바깥 공기가 뜨듯하게 느껴지네요. 삼주만에 집에 돌아와 첫번째 맞는 아침, 금요일입니다.

    오늘의 본문 (벧전 5:1-7)을 읽습니다. 교회의 장로(elder)들에게 주는 권면.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 모두 자기를 낮추고 겸손히 서로를 섬기라는 말씀이네요. 지배하려하지 말고, 모범이 되라.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라.

    교회가 기득권 클럽이자 일종의 꼰대 집단으로 점점 추락하는 듯한 시대. 이 시대의 교회들, 우리 자신의 교회, 그리고 바로 나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엄중한 경고와 진단은 아닐까. 잠시 돌아보게 되는 말씀이에요.

    마음에 답답함이 유독 많은 요즘이라 그럴까요? “너희 걱정을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라는 7절 말씀이 유달이 마음에 들어오네요.

    이제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약의 힘을 빌기는 했지만 꿀처럼 단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버지니아의 집입니다. 늘 해오던 것처럼 먼저 향기좋은 커피와 빵을 먹었습니다. 창밖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새소리가 은은히 들립니다. 이 생명. 이 날. 오늘이라는 이름의 이 선물을 감사. 함께 이 광야를 걸으며 서로 섬기고 서로 돌볼 가족으로 인해 감사.

    마음에 불안과 염려가 많은 요즘. 너희 걱정을 다 주께 맡기라는 말씀을 붙들고 소망의 등불을 다시 밝히는 오늘이 되었으면.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 하신 주. 세상을 이기신 주. 독수리 날개 펴듯, 주와 함께 날아오르며 주와 함께 승리하는 나날.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증거되는 삶, 그것이 나의 노래, 나의 간증이 되기를.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번에 읽는 베드로전서는 마치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처럼 가깝게 들립니다. 우리 교회가 이 시점에 필요한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습니다. 본문에 대한 목사님의 해설도 지금 우리 교회가 들으면 도움이 될 말씀입니다. 편지에서 장로라고 한 위치가 현대 교회의 장로와 같지는 않지만 회중 (=양떼)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인트는 군림인가 섬김인가에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리드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 과연 어떤 방식으로 리드하는가가 세상의 리더와 다른 지점입니다. 한 14-15년 쯤 전의 일인데 우리 연회에 새로 감독이 오셨습니다. 한인교회와 아시안 문화권 중심의 교회의 목회자와 신도 몇 사람을 초대해 간담회 비슷한 것을 했습니다. 감독은 한국교회의 직분제도에 대해 질문하고 참가자들의 의견을 돌아가며 들었습니다. 감독으로서 연회를 파악하는 데 있어 필요하니까, 특히 한인교회는 비주류지만 연회내 위치 (분담금, 교인수, 목회자수)를 고려할 때 선이해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판단해 만든 자리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신도들은 전부 남성이고 장로들이었습니다. 장로는 책임 accountability 이 따르는 자리라고 자신의 직분을 설명한 이가 있었습니다. 직분이 없어도 성실하게 믿을 사람이지만 직분을 받으면 더욱 열심히 책임적으로 일하라는 뜻이니 한국 교회에선 직분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루 저녁 이야기 듣는 것으로 충분할 리는 없지만 감독은 그런 자리를 또 만들지 않았고, 당시에 급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회정의 이슈에 노력을 기울이다 몇 년 뒤 다른 연회로 옮겨 갔습니다. 그 모임에서 책임을 이야기 했던 장로는 교단 분리에 적극적이 되어 일선에서 ‘진두지휘’를 하며 자기 교회는 물론 다른 한인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 가정과 오랫동안 아주 가깝게 지내던 관계였지만 차차 소원해지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감독 앞에서 그가 말했던 장로의 위치와 역할은 일반 교인들의 이해와 일치할 것입니다. 직분 없이 교회에 다니는 것과 직분을 갖고 다니는 것은 다르다는거지요. 그렇지만 ‘직분 때문에’ 일이 망가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관계가 어긋나고 교회가 시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오늘 해설에서 지적하듯 리더쉽 대신에 팔로워쉽이라고 해야 할 지 모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성실함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의 종’ ‘목자’ ‘영적 지도자’ ‘제사장’ ‘성전’ 등의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권위의 상징인 단어들이고, 수직적인 이미지를 담은 표현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일들은 권위의 해체와 수평적인 소통이 키워드이고, ‘장로들’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권위가 아니라 돌봄이고, 지도력이 아니라 공감력이라는 깨달음이 장로그룹 안에 바람처럼 불고 있습니다. 남편과 나는 장로가 아니라서 보이는 일들에 대해 대화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문을 열어주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믿음의 공동체로 연합하여 서로를 섬김으로 저희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십시오. 서로 낮아져 서로를 섬김으로 교회의 신비를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bull9707 Avatar

    나이가 차서 그런지 요즈음에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사회의 모임에서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이 들때 기도중에 내가 너와 같이하고 너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지금부터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끼지 못할때에도 그토록 귀한 말씀을 꼭 붙잡고 가정과 교화와 나라를 위해 주님 앞에 설때까지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도움없이는 불가능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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