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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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베드로가 쓴 또 다른 편지입니다. 어휘와 문체와 신학에 있어서 베드로전서와 다른 점들이 많아서, 이 편지가 베드로에 의해 직접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자주 제기되었습니다. 고대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어 글을 쓰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특히, 스승의 이름으로 제자가 글을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를 존경하고 따랐던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이 편지를 썼다는 가설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휘와 문체와 신학의 차이가 생긴 이유가 다른 데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가, 베드로가 필사자를 고용하여 쓴 여러 편지들 중 하나라고 간주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이 편지에 성령의 영감이 담겨 있다고 믿어졌기에 신약성경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매우 짧은 편지이지만,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메시지들이 담겨 있으니, 신실하게 읽고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2절: 보배로운 믿음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인 시므온 베드로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의 믿음과 같은 귀한 믿음을 받은 이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해설:

당시의 편지 형식을 따라 저자는 먼저 자신을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야곱의 둘째 아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시므온”(1절)이다. “시몬” 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베드로”는 헬라어 이름으로서 “바위”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시므온에게 붙여준 아람어 별명 “게바”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예수님은 시므온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게바”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마 16:18).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 라고 소개한다. 그는 지금 “사도”(보냄받은 사람)로서 이 글을 쓰는 것이며, 그가 사도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수신자들이 어떤 지역에 살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귀한 믿음을 받은 이들”이라고만 썼으므로, 베드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읽도록 의도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 믿음은 “귀한” 혹은 “보배로운” 것인데, 그들이 그 값진 선물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한 것이다. 여기서의 “의”는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태도를 의미한다. 예언자들을 통해서 메시아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때가 되어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셨고,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구원을 이루셨다. 사도는 자신의 믿음과 수신자들의 믿음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발신자와 수신자를 소개한 후, 사도는 편지 형식에 따라 수신자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전한다(2절). 헬라식의 인사(“은혜”)와 유대식 인사(“평화”)를 결합시켜 인사말을 쓰는 것은 바울이 자주 사용한 인사법이다. 진정한 은혜와 평화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가능하다. 히브리 개념에서 “앎”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관계적인 앎”이다.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만나고 사귀어 아는 지식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은혜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로써 사도는 그들이 이미 은혜와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묵상:

베드로 사도가 믿음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비록 매우 단편적이지만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귀한 것”입니다. 개역개정은 “보배로운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소중한 것” 혹은 “값진 것”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바쳐 이루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셔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 이룬 구원이기에 보배롭고 귀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 믿음으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왜 그렇게 값진 것이라고 표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영예를 얻고, 죽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리스-로마인들은 인사를 나눌 때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라고 했고, 유대인들은 “샬롬” 즉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 라고 했습니다. “은혜”란 값없이 받는 선물을 가리킵니다. 인생이 “심은대로만 거두는” 것이라면, 공평해 보이기는 하겠지만 숨이 막힐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은혜 때문입니다. 태어나는 것 자체가 은혜이고, 살아가는 순간 순간이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히브리적인 개념에서 “샬롬”은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온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든, 어떤 면이든 결핍이 생기게 마련이므로,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라는 인사말이 반갑습니다. 

믿음이 보배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은혜와 평화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은혜와 평화는 하나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믿음을 굳게 잡고 있으며, 그래서 이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려는 것입니다. 

요절: 2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기도:

저희에게 이 보배로운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믿음 안에서 은혜와 평화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은혜와 평화가 저희 이웃에게도 흘러가도록 저희의 말과 행동을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5 responses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간밤에 무섭게 치던 뇌성벽력이 그치고 비도 멈췄네요. 그 덕에 폭염이 한풀 꺾인 월요일 아침입니다.

    베드로 후서(1:1-2)를 시작합니다. 얼핏 상투적 수사로 읽힐 수도 있는 서신서의 모두 글. 예수를 앎으로써 우리 삶에 은혜와 평강의 문이 열리고, 믿음이 우리의 존재를 바꾼다. 이 아침 목사님의 묵상과 해석을 마음의 한 자락에 잘 담아보려 해요.

    초대 교회에서도 저자와 “정경성”(canonicity)에 대한 의심이 매우 강했다는 책 (오리겐, 유세비우스 모두 “의심 받는 책”으로 분류; Copilot). 이 의심을 압도하는 신학적 깊이와 통찰 때문에 결국 정경으로 채택되고 “신적 시간론”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시간 밖에서 시간 그 자체를 창조하신 하나님’ vs ‘시간 안에 갖혀있는 피조물’)의 단초가 되었다는 책. 사모하는 마음으로 잘 읽어보려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월요일이자 업무로 복귀하는 첫날. 왠지 개학날을 맞는 어린애처럼 마음이 술렁술렁하네요. 시차적응으로 밤이 두려운 시기에요. 그래도 그럭저럭 잠을 자고 아침에는 따뜻한 커피와 빵을 먹었습니다. 가족이 곁에 있습니다. 오늘도 살라하심을, 또 살 수 있도록 모든 것 주심을 감사.

    주 안에서는 하루가 천년과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음을 기억하고 주님의 시간, 그 의미와 깊이의 시간이 꼭 올 것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 주시길. 보배같은 믿음, 비록 흔들려도 결코 무너지지 않은 믿음, 그런 믿음을 제게 주시길.

  2. Bill Kim Avatar
    Bill Kim

    “믿음음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것들의 증거이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리라“ 는 구절을 알고 있으면서도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니 십자가밑에 무릎을 꿇지않고는 희망이 없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행함이 따르는 살아있는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마지막 숨쉴때까지 예수님의 향기가 번지는 삶으로—-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베드로후서를 시작하는 짧은 인사말 두 구절을 읽습니다. 베드로의 편지라서 (실제 저자 논란과 관계 없이) 그런지 레오14세 교황이 발표한 ‘위대한 인류 Magnifica Humanitas’ 회칙이 또 떠올랐습니다. 교황의 서신에는 발신자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 찾아 보니 바티칸 교황청 웹사이트를 참고하라고 알려줍니다. ‘위대한 인류’ 회칙은 ‘레오14세 교황의 회칙 위대한 인류’ 라는 제목 밑에 부제목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성 수호’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마그니피카 휴마니타스는 번역에 따라 고귀한 인류 혹은 위대한 인간성이 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소개하고 수신자에게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별명이 바위라는 것도 되짚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빌립보 지역에 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말하느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은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 예레미야 등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답하니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답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복되다’고 하시며 이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라며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돌 위에 교회를 지을 것이니 지옥의 문이 이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로 하여금 말하고 알게 하신 내용은 예수님에 관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베드로의 혈육 즉 조상으로부터 받은 유전적 지능이나 혈족 사회의 결과로 유대 땅에서 유대 청년들이 만나 맺은 인연에서 얻은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믿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그를 예수께로 이끄신 성령 하나님의 작품이지 베드로의 작품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교회를 짓기 위해 놓여진 첫번째 돌입니다. 그의 고백은 교회를 짓는 첫번째 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고백 위에 지어지는 교회가 어떤 교회일지 알았을까요. 몰랐을 것 같습니다. 교회의 ‘청사진’이 머리 속에 들어 있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에 맡기고 살라는 것이 베드로의 메시지입니다. 머리로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에서 경험하기에, 살아보니 알겠기에, 그렇게 살자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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