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2장 1-3절: 이단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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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난 것과 같이, 여러분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로 몰고 갈 이단을 몰래 끌어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자기들이 받을 파멸을 재촉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서 방탕하게 될 것이니, 그들 때문에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그들은 탐욕에 빠져 그럴 듯한 말로 여러분의 호주머니를 털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에게 내리실 심판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파멸이 반드시 그들에게 닥치고 말 것입니다.

해설:

베드로 사도는 2장 전체를 할애하여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한다. 구약 시대에도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혼란시켰다(1절). 영적인 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거짓 예언자들의 말에 속기 쉽다. 베드로 사도가 활동하는 시기에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 믿는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있었다. 

사도는 그들의 가르침을 “파멸로 몰고 갈 이단”이라고 표현한다. “이단”으로 번역된 ‘하이레시스’(영어의 heresy가 여기서 나왔다)는 원래 “갈라진 분파”를 의미했는데, 신약성경에서는 왜곡된 복음을 가리킨다. 왜곡된 복음은 현생의 삶에서 파멸에 이르게 하고, 구원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몰래 끌어들이다”는 말은 “옆문으로 데리고 들어오다”라는 의미다. 그것이 복음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전략이다. 

복음을 왜곡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을 값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를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는 뜻이다. “값주고 사다”는 시장에서 거래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사셨다. 복음을 왜곡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은 “자기들이 받을 파멸” 즉 영원한 저주를 스스로 “재촉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 방탕하게 된다”(2절)는 것에 있다. 개역개정에는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본받다”고 번역했다. 헬라어 ‘아셀게이아’는 성적 탐닉을 가리킨다. 지난 2천 년 동안 출현했던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호색한들이었다. 복음에 대한 왜곡은 여러 가지의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데, 성적 타락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언행으로 인해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로 인해 전도의 길이 막힌다.

거짓 예언자들은 복음이 비방받는 것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신도들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일에 전심한다(3절). 그들의 말은 “그럴 듯한” 속임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심판이 정해져 있고, 그 심판은 반드시 닥칠 것이다. 

묵상: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이단의 본성과 속성을 폭로합니다. 2천 년 전에 쓰여진 글인데 오늘의 이단들에 대한 글인 것처럼 읽힙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항상 복음을 왜곡하여 탐욕을 채우려는 영적 사기꾼들이 있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간절한 갈망을 미끼로 삼아 미혹합니다. 그들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것처럼 “그럴 듯한” 말로 속이지만, 그들의 속셈은 그들을 털어먹는 것에 있습니다. 사도는 “이단에 빠지면 파멸에 이른다”고 했는데, 영원한 생명을 잃을 뿐 아니라, 이생에서도 참담한 불행을 겪습니다. 영적 사기꾼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영적 사기꾼들로 인해 “복음이 비방 받는 것”에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반사회적이고 비이성적인 언행을 보고, 기독교 전체를 매도합니다. 영적 사기꾼들의 만행을 보고, 목회자들이 모두 그런 류의 사람들이라고 간주합니다. 기독교 복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렇게 보면, 이단들은 양면으로 해를 끼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어 구원의 길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복음은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복음은 “파멸로부터” 구원받는 길입니다. 복음을 믿고 행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지만,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자신을 값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믿는 이들을 변화시켜 주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합니다. 불신의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것은 때로 손해를, 때로 모욕을, 때로 박해를 자초하지만, 그런 삶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의 눈을 하나님께 향하게 만듭니다. 그들로 인해 “진리의 길”이 높임 받게 됩니다.

요절: 2절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서 방탕하게 될 것이니, 그들 때문에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

저희로 인해 “진리의 길”이 비방받은 적은 없는지, 두려움으로 반성해 봅니다. 저희를 “값주고 사신” 주님을 더욱 바짝 따르겠습니다. 저희를 도우셔서 주님의 진리를 더 환히, 더 아름답게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성령께서 밝히 말씀 하시기를 후일에 어떤이들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경고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갈수록 돈을 숭배하고 도덕이 문란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어리석다고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신도들을 모욕하고 핍박하는 세상에서 도리혀 약속하신 하늘의 큰 상을 기리며 기쁘고 감사하며 사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쪽빛 하늘과 새털구름, 시원한 공기를 감싸는 풀내음. 자연이 아름다운 미국에 살고 있음을 한껏 느끼는 아침, 금요일이에요.

    짧은 본문 (2:1-3), 천천히 숨고르며 읽고 공부해 봅니다. 사도들이 모두 죽고 사도적 재림신학 (=임박한 종말론)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던 시대. 그 신학적 진공상태 (theological vacuum)을 파고들었던 것이 이원론적 이단 신학이었다고 하네요 (Copilot).

    오늘날의 이단신학(구원파, JMS)과 비슷하게 구원은 육체 (=행위)와 무관하고 선택된 자는 “영적자유” (=윤리로부터의 자유)를 특권으로 얻었다고 하지요? 오늘 아침 목사님의 해설처럼 2천년전 그리스의 문제가 아닌 바로 지금도 우리 옆에서 세력을 떨치는 악한 교리.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아 서성이고 있는…

    이제 하루를 시작해야 하겠지요? 차를 운전해 출근하는 날. 간 밤에는 약을 먹지 않고 미진한 대로 잠을 잤어요. 아침에 마신 커피, 그리고 빵에 뿌린 올리브기름의 향기가 아직도 혀에 맴도네요. 생명을 창조하신 주, 오늘도 생명의 호흡 그리고 하루라는 시간을 허락하셔서 감사.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할 이들, 그리고 가족이란 이름의 동산(=에덴)으로 인해 감사.

    성경을 주심을 감사. 성경 안에 들어있는 지식과 영감으로 인해 주의 죽으심, 대속, 그리고 다가올 재림-새하늘과 새땅을 더불어 믿으며 악한 영의 미혹과 함께 싸울 믿음의 요새, 주의 교회 안으로 부르심을 감사.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며 주와 함께 세상을 이기는, 악한 자 곧 마귀를 무릎 꿇리는 나날, 그런 삶이 되었으면.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가게를 정리하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저녁에 해가 떨어질 무렵에 한 시간쯤동네를 걷고 나면 적당히 피곤해서 단잠을 잘 것 같지만 굳이 화면 앞에 앉아 스트리밍을 하고, 미처 못 본 화제작 (‘파친코’ 같은)들을 몰아 보느라 늦게 자고 또 늦게 일어납니다. 영어로는 이단을 heresy 헤러시라고 하고, 이단자나 이교도는 heretics 헤러틱스라고 합니다. 미국의 법정 드라마를 보면 증인이나 원고측 참고인이 진술할 때 변호인이 ‘it’s heresy!’라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한국어 법정전문 용어로 헤러시는 ‘전문증거’이고, 전문증거는 증거로 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답니다. 배심원제도의 법정에서 배심원이 합리적인 판단을 형성하는데 방해가 되는 진술일 때 변호인이 쓰는 이의제기 카드입니다. 진술자 본인이 목격하거나 들은 것이 아니라 제3자에게서 들었다거나, 누가 ‘뭐라뭐라 카더라’ 식으로 진술할 때입니다. 중세 때 유럽의 종교재판은 이단을 적발하고 축출하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그 때의 이단은 정통 카톨릭 교리와 전통에 위배하는 가르침을 전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려하고 경계한 거짓교사들의 속임수를 걸러내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진리가 있으면 그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이 있습니다. 진품이 있으면 모조품도 있습니다. 베드로 시대는 세기말적 위기의식과 정치지리적 혼란이 심했던 때입니다. 시장에는 온갖 풍문이 돌고, 내일 어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온갖 탈선이 벌어졌을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의 증언과 믿음이 왕성한 한편, 변형되고 왜곡된 모조 증언도 수두룩 했을 겁니다. 자기가 본 게 아닌데 본 것처럼 말하면 현대법정에서 헤러시가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데 그런 것처럼 미혹하면 헤러시입니다. 우리 시대 이단의 문제는 ‘진리 대 거짓’의 단순구도로 풀 수 없어 보입니다. 권력과 금력을 갖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단자가 된 그룹도 있고 (이단 교주, 컬트 공동체), 이미 가진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일체의 반대자를 이단이라고 부를 때 만들어지는 피해자 그룹도 있습니다. 미국 정가에서는 지금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올라옵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둘러싼 신학논쟁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개인의 신앙에만 적용되는가, 아니면 국가와 사회도 책임을 져야 하는가.’ 누가 나의 이웃인가에 대한 성찰도 이 논쟁 속에 들어 있습니다. 건강한 토론, 신자 개개인의 묵상과 교회의 분별과 결단이 뒤따르기를 기도합니다. 나와 다르면 이단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입니다. 동시에 진리는 없고 나의 기분만 중요하다는 생각이야말로 베드로 사도가 우려한 거짓교사입니다. 예수님이 먹이고 돌보고 감옥에 찾아가 주라고 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인가, 일반적인 가난한 이웃인가 아니면 복음을 전하는 특정한 유대인 전도자들과 핍박 받는 제자 공동체를 뜻하는가, 선행과 구제는 개인의 영역에 속하는가 아니면 국가가 정책으로 정해 강제적으로라도 행해야 하는가…묵상과 기도는 계속됩니다. 성령의 빛이 마음을 밝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4. gachi049 Avatar
    gachi049

    요즈음 하나님의 진리를 교묘하게 비틀어 왜곡하고, 교인들을 맹목적인 도구로 삼아 세력을 키우려는 사이비 종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현혹하고, 참된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하여 영적으로 흔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주님, 바라옵건대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옵소서. 쉼 없이 말씀과 기도로 전신갑주를 입어 영적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어떤 미혹의 영과 악한 세력이 접근해 올지라도, 날카롭게 분별하여 예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는 영의 눈을 밝혀 주시옵소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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