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본문:
전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난 것과 같이, 여러분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로 몰고 갈 이단을 몰래 끌어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자기들이 받을 파멸을 재촉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서 방탕하게 될 것이니, 그들 때문에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그들은 탐욕에 빠져 그럴 듯한 말로 여러분의 호주머니를 털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에게 내리실 심판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파멸이 반드시 그들에게 닥치고 말 것입니다.
해설:
베드로 사도는 2장 전체를 할애하여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한다. 구약 시대에도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혼란시켰다(1절). 영적인 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거짓 예언자들의 말에 속기 쉽다. 베드로 사도가 활동하는 시기에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 믿는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있었다.
사도는 그들의 가르침을 “파멸로 몰고 갈 이단”이라고 표현한다. “이단”으로 번역된 ‘하이레시스’(영어의 heresy가 여기서 나왔다)는 원래 “갈라진 분파”를 의미했는데, 신약성경에서는 왜곡된 복음을 가리킨다. 왜곡된 복음은 현생의 삶에서 파멸에 이르게 하고, 구원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몰래 끌어들이다”는 말은 “옆문으로 데리고 들어오다”라는 의미다. 그것이 복음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전략이다.
복음을 왜곡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을 값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를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는 뜻이다. “값주고 사다”는 시장에서 거래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사셨다. 복음을 왜곡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은 “자기들이 받을 파멸” 즉 영원한 저주를 스스로 “재촉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 방탕하게 된다”(2절)는 것에 있다. 개역개정에는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본받다”고 번역했다. 헬라어 ‘아셀게이아’는 성적 탐닉을 가리킨다. 지난 2천 년 동안 출현했던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호색한들이었다. 복음에 대한 왜곡은 여러 가지의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데, 성적 타락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언행으로 인해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로 인해 전도의 길이 막힌다.
거짓 예언자들은 복음이 비방받는 것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신도들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일에 전심한다(3절). 그들의 말은 “그럴 듯한” 속임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심판이 정해져 있고, 그 심판은 반드시 닥칠 것이다.
묵상: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이단의 본성과 속성을 폭로합니다. 2천 년 전에 쓰여진 글인데 오늘의 이단들에 대한 글인 것처럼 읽힙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항상 복음을 왜곡하여 탐욕을 채우려는 영적 사기꾼들이 있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간절한 갈망을 미끼로 삼아 미혹합니다. 그들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것처럼 “그럴 듯한” 말로 속이지만, 그들의 속셈은 그들을 털어먹는 것에 있습니다. 사도는 “이단에 빠지면 파멸에 이른다”고 했는데, 영원한 생명을 잃을 뿐 아니라, 이생에서도 참담한 불행을 겪습니다. 영적 사기꾼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영적 사기꾼들로 인해 “복음이 비방 받는 것”에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반사회적이고 비이성적인 언행을 보고, 기독교 전체를 매도합니다. 영적 사기꾼들의 만행을 보고, 목회자들이 모두 그런 류의 사람들이라고 간주합니다. 기독교 복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렇게 보면, 이단들은 양면으로 해를 끼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어 구원의 길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복음은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복음은 “파멸로부터” 구원받는 길입니다. 복음을 믿고 행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지만,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자신을 값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믿는 이들을 변화시켜 주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합니다. 불신의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것은 때로 손해를, 때로 모욕을, 때로 박해를 자초하지만, 그런 삶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의 눈을 하나님께 향하게 만듭니다. 그들로 인해 “진리의 길”이 높임 받게 됩니다.
요절: 2절
많은 사람이 그들을 본받아서 방탕하게 될 것이니, 그들 때문에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
저희로 인해 “진리의 길”이 비방받은 적은 없는지, 두려움으로 반성해 봅니다. 저희를 “값주고 사신” 주님을 더욱 바짝 따르겠습니다. 저희를 도우셔서 주님의 진리를 더 환히, 더 아름답게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