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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 가는 안개입니다.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둠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허무맹랑하게 큰소리를 칩니다. 그들은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들을 육체의 방종한 정욕으로 유혹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자기들은 타락한 종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어서 정복을 당하면, 그런 사람들의 형편은 마지막에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들이 의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속담이 그들에게 사실로 들어맞았습니다.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
해설:
사도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물 없는 샘”(17절)에서 “물”은 생명수 즉 구원을 의미한다. 그들은 구원을 전한다는 겉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생명수는 줄 수 없다. “폭풍에 밀려 가는 안개”는 그들의 미래 운명에 대한 암시처럼 보인다. “캄캄한 어둠”은 영원한 멸망에 대한 상징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거짓 교사들은 믿음이 견고하지 않은 사람들을 미혹한다. 사도는 그들을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들”(18절)이라고 묘사한다. 믿음이 견고한 사람들은 “완전히 빠져 나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 교사들은 그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미혹한다. 하나는 “허무맹랑한 큰 소리”다. 이단자들은 교묘한 말로 허황된 약속을 남발한다. 또 하나는 “육체의 방종한 정욕”이다. 성적 타락과 방종은 모든 이단 종파의 특징이다.
거짓 교사들은 “자유”(19절)를 약속하지만, 실은 그들 자신이 “타락한 종”이다. “진 사람”은 육체의 욕망과 불의에 정복당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도는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당하여 다시 욕망의 종이 된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앎”)은 “세상의 더러운 것들”(20절)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성령께서 욕망을 이기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에게 미혹되어 다시 욕망의 종이 되면, 믿기 이전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믿지 않을 때는 “몰라서” 그렇게 산 것이지만, 이제는 “의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21절)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는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사도는 당시에 떠돌던 두 개의 속담을 인용하여 그들의 불행한 운명을 강조한다(22절). 첫번째 속담은 잠언 26장 11절에서 온 것이고, 두번째 속담은 당시 이방인들 사이에 떠돌던 속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속담을 인용함으로써 사도는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강조한다.
묵상:
신학계의 오랜 논쟁 중 하나는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가?”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 장 깔뱅은 “Once Saved, Always Saved!”라는 표현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혹은 “영원한 안전”(Eternal Security)이라고도 불리는 이 교리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주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예정론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할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으로 예정했다면, 그 구원은 인간의 허물로 인해 취소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성도의 견인”이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을 끝까지 이끌어 주신다는 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면, 한번 믿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구원을 잃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정론자들에게 어려움을 안겨 줍니다. 베드로 사도는 “거룩한 계명을 알고도 저버린다면”(17절)이라는 표현으로써, 믿는 이들이 의지적으로 믿음을 떠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차라리 믿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몰라서 안 믿은 것” 보다 “알면서도 믿지 않은 것”이 더 큰 진노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본문에 대해 예정론자들은 “그 사람은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애초부터 믿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믿게 된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해 줄 말씀은 성경 안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죄와 사망 가운데 빠져 있던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게 하신 것도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그것을 받아 누리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예정론자들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그들은 인간을 “하나님의 노예” 혹은 “하나님의 인형”으로 창조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셔서 그분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도록 의도하셨습니다. 자유의지를 허락하실 때, 하나님은 인간 편의 불순종의 가능성을 각오하셨습니다.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응답과 거룩하고 의롭게 살려는 우리의 노력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을 자유”가 있음에도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깨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선물을 오용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요절: 21절
그들이 의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기도:
지금은 저희가 주님 안에 머물러 살지만, 저희는 저희 자신을 믿지 못합니다. 언제 어떻게 미혹되어 “하나님은 없다”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될지 모를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매일 주님 앞에 고개 숙입니다. 저희의 연약한 의지를 붙들어 주시어 믿음의 길에서 완주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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