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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이 두 번째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두 편지로 나는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려서, 여러분의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거룩한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한 말씀과, 주님이신 구주께서 여러분의 사도들을 시켜서 주신 계명을, 여러분의 기억 속에 되살리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말미암아 형성되었다는 것과, 또 물로 그 때 세계가 홍수에 잠겨 망하여 버렸다는 사실을, 그들이 일부러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하늘과 땅도 불사르기 위하여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할 날까지 유지됩니다.
해설:
사도는 이 편지를 “두 번째 편지”(1절)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베드로의 편지는 두 개밖에 없지만, 실제로는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첫 번째 편지는 베드로전서일 수도 있고,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들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일 수도 있다. 사도는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 두 번째 편지를 쓰고 있다고 의도를 밝힌다. 1장 13절에서도 사도는 신도들을 “일깨우려 한다”고 했다. 베드로 사도가 염려하고 있는 것은 수신자들이 이미 받아들인 복음의 진리를 망각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교육이 아니라 “일깨움”이었다.
일깨움의 대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거룩한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한 말씀“(2절)이다. 베드로 사도가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메시아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다른 하나는 “주님이신 구주께서 여러분의 사도들을 시켜서 주신 계명”이다. “계명”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사도는 “사랑의 계명”(요 13:34)과 “선교의 계명”(마 28:18-20)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일깨우는 이유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조롱하는 자들”(3절) 때문이다. 조롱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조롱은 영적 교만에서 나온다.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무시한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욕망”을 섬긴다. 사도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사실을 알면,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즐겨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재림에 대한 믿음이다.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 대다수의 신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세상이 그대로인 것처럼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4절의 “조상들”은 앞서 간 모든 세대들을 가리킨다. “만물은 창조때로부터 그대로였듯이 그냥 그대로다”라는 말은 무신론자들의 현실 인식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룬다는 교리는 이러한 세계관에 전혀 맞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현실의 표피만 보았지,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 만사가 우연히 생겨나 무심히 반복된다고 보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5절) 되었고, 창조 이후에도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6절) 우주의 운행과 인류의 역사를 다스려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냥 그대로”인 것처럼 운행하신다.
묵상:
“만물은 창조때로부터 그대로였듯이 그냥 그대로다”라는 말은 무신론자들의 현실 인식을 잘 표현합니다. 물론, 그들은 “창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은 우연히 생겨난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의미나 사명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생겨났고, 그냥 존재하고, 그냥 소멸합니다. 이것이 ‘무신론적 진화론’의 존재론입니다. 진화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와 다스림의 손길을 탐구하는 학문이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또한 불교적 존재론인 ‘제행무상’(諸行無常)과도 닮았습니다. 만유는 우연히 생겨났고, 만사는 아무 원리도 없이 일어나고 반복된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집착’이고, 그것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이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인데, 그러려면 “만물은 원래부터 그대로였듯이 그냥 그대로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주 과학자들이 말하는 ‘빅뱅’의 사건이 옳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생명 진화 과정’에 대한 과학자들이 말이 맞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의미 없이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섭리 안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구원론과 기독교의 구원론은 정반대입니다. 불교는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치는 반면, 기독교는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진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부릅니다(계 1:8). 모든 존재와 사건의 시작이요 끝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시작하셨으니, 그분이 완성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은 아무 의미 없이 무한히 순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창조주의 섭리와 계획 속에 있습니다. 그 섭리와 계획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생각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그리고 이어진 성령의 역사를 생각하면, 믿을 수 있고 소망할 수 있습니다.
요절: 3-4절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
기도:
저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시어 주님을 보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에 예민하게 하시고, 주님의 미세한 음성에 귀기울이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쉬는 숨이 성령이시며, 저희가 먹는 음식이 주님의 살인 것을 알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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