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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 자기가 받은 지혜를 따라서 여러분에게 편지한 바와 같습니다. 바울은 모든 편지에서 이런 것을 두고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서, 무식하거나 믿음이 굳세지 못한 사람은, 다른 성경을 잘못 해석하듯이 그것을 잘못 해석해서, 마침내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불의한 자들의 유혹에 휩쓸려서 자기의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십시오. 이제도 영원한 날까지도 영광이 주님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해설: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14절)는 앞에서 말한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기다리다”는 ‘프로스도케오’의 번역으로서 “소망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티도 없고 흠도 없는”이라는 표현은 성전에 드리는 제물의 조건으로 요구되었다. 바울 사도가 “너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했는데, 사도 베드로도 삶 전체를 제사로 보고 있다. “아무 탈이 없이”를 직역하면 “평안 가운데”가 된다.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사도는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가 더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15절). 베드로는 여기서 바울 사도를 증인으로 끌어들인다. 베드로는 바울 사도가 여러 교회에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편지들을 직접 읽어 보았다. “자기가 받은 지혜를 따라서 여러분에게 편지한 바와 같습니다”라는 표현은 성경의 양면성에 대한 베드로의 믿음을 반영한다. 성경은 인간 저자가 쓴 것이지만, 그 안에 성령의 영감(“받은 지혜”)이 담겨 있다.
바울 사도는 여러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부활에 대해 가르쳤다. “그 가운데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16절)고 말한 이유는 재림에 대한 교리들이 경험적인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식하거나 굳세지 못한 사람들”은 그 말씀을 곡해하여 파멸에 이른다. “다른 성경을 잘못 해석하듯이”에서 “성경”은 구약 성경을 가리킨다.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에는 구약 성경만 존재했다. 당시 신도들이 바울의 편지를 구약 성경을 대하듯 다루었다는 암시다.
베드로 사도는 “이 사실을 미리 알아두라”(17절)고 이른다. 그런 사람들이 거짓 교사가 되기 때문이다. 사도는 앞에서 거짓 교사들이 얼마나 부패한 사람들인지를 충분히 알렸다. 그들에게 미혹되면 믿음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다. 동시에 사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십시오”(18절)라고 권한다. “주님”(‘퀴리오스’)은 예수님의 현재적인 다스림을 강조하고, “구주”(‘소테르’)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을 강조한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데, 히브리적 개념에서 지식은 체험적이고 관계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사도는 송영으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피조물인 인간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있다.
묵상:
기독교 교리 중에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쉬운 것은 별로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는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습니다. 과학이 진리 판명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 버린 지금은 더욱 그렇지만, 사도 베드로 시대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의 왕으로 다시 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며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살리라는 교리는 허황된 신화처럼 들립니다. “세상은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말이 더 맞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라는 말보다 결코 믿기에 더 수월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도 알고 보면 허황된 신화처럼 들립니다.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믿는 이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보여주는 우주적 결말입니다. 창조 사건과 부활 사건이 의미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재림의 사건도 진실이어야 합니다. 만일 재림의 사건을 부정한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부정해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도 부정해야 합니다.
태아는 어머니의 자궁이 세상의 전부라고 느낄 것이고, 양수 안에서 떠다니면서 그것이 생의 전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태아는 어머니 태 바깥에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있고, 9개월을 다 채우고 나면 그 세상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미래는 상상하는 것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미래를 알려 준 분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할 일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는”(18절) 것이며, 다른 하나는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는”(14절)입니다. 하나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한 삶입니다. 이 두 가지를 지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주님이 오셔도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요절: 14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기도:
오, 주님, 주님의 미래를 믿고 소망하게 하옵소서. 그 믿음에 걸맞게 거룩하게 살게 하옵소서. 그렇게 되도록, 저희를 더 깊이 만나 주십시오.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주님을 더 깊이 알도록 힘쓰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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