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본문: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써 보냅니다. 이 새 계명은 하나님께도 참되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습니다.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그 사람 앞에는 올무가 없습니다.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고, 어둠 속을 걷고 있으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해설:
앞에서 “나의 자녀들아”(1절)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사랑하는 여러분”(‘아가페토이’)이라고 부른다. 사도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수신자들을 아낀다. 그는 자신이 지금 주는 가르침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옛 계명”이라고 말한다(7절). 그들은 이미 그 계명에 대해 들었다.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라는 말은 레위기 19장 18절에 나오는 이웃 사랑의 계명을 가리킨다.
그 “옛 계명”을 “새 계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8절)이다. 율법의 시대가 지나고 은혜의 시대가 왔으므로 옛 계명이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심으로써 이웃 사랑의 옛 계명의 의미를 혁명적으로 바꿔 주셨다. “이웃”에는 원수까지 포함되고, “사랑”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는 것이다. “이 새 계명은 하나님께도 참되고”라는 말은 “이 새 계명은 하나님의 뜻에 맞고”라는 뜻이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라는 말은 “여러분에게도 진리입니다”라는 뜻이다.
“빛 가운데 있다”(9절)는 말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살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살고 있다면,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가령,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이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도 역시 현재형 동사가 사용되고 있으므로, “형제자매에 대해 미움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풀어야 한다. “어둠 속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진리 바깥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10절)은 “빛 가운데” 즉 하나님의 진리 안에 “머물러 있다.” “올무”는 헬라어 ‘슽칸달론’의 번역으로서, “넘어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글의 맥락으로 볼 때 “넘어지게 하는 것”은 미워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형제자매에 대한 미움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바깥에 머물게 한다(11절). 그것은 깜깜한 곳에서 걷는 것과 같아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진리 바깥에 머물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진리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묵상: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신명기 6장 4-5절의 “하나님 사랑의 계명”과 레위기 19장 18절의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목하셨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과 예언의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형식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새로운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옛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차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8절). “어둠”의 시대는 율법의 시대를 의미하고, “참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율법은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 잠시 하나님의 뜻을 비추어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지만, 인간의 죄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주어진, 제한적이고 잠정적인 지침이었습니다.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은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행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환히 드러내 보여주시는 “참 빛”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 1:5)고 했습니다. 어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빛이 비치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그 빛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과 생명을 환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로 인해 율법에 담겨 있던 하나님의 뜻이 환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계명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옛 계명이라 할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혀 새로운 의미와 차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율법적인 사고 안에 갇혀 있을 때(어둠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들만을 편애하는 분으로 오해했고, 자신들과 같은 혈통, 같은 종교, 같은 전통을 가진 사람들만을 이웃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그들의 편협한 이해로 인해 다른 민족들에 대한 혐오와 배척과 박해를 정당화 하는 논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둠 안에 살면서 어둠의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며 의인과 악인 모두의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치셨고, 이웃의 범주에서 제외시킬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주는 것이라고 가르치심으로써, 사랑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랑의 계명은 “오래된 새 계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랑의 계명을 충직하게 따라 살다가 죽으셨습니다. 새 계명은 고매한 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새 계명을 따라 죽으신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써 그것이 진리와 생명의 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요절: 8절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써 보냅니다. 이 새 계명은 하나님께도 참되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을 믿음으로 저희가 빛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어둠의 행실이 저희에게 남아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보다는 미움에, 용서보다는 응징에, 포용보다는 배척에 더 민첩한 저희의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셔서 빛의 자녀들답게 말하고 행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