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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자녀 된 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그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된 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태초부터 계신 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이미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이미 하늘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된 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태초부터 계신 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있어서, 여러분이 그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해설:
“자녀 된 이 여러분”(12절)은 뒤에 “아버지 된 이 여러분”(13절)과 연관지어 해석해야 하는데, “부모를 둔 사람들”이 아니라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 혹은 교회 안에서 영적인 지도를 받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초보적인 신앙인들에게는 “그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이 편지를 통해 속죄의 교리를 깨닫기 원한다. 반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 혹은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로 섬기는 사람들(“아버지 된 이 여러분”)은 속죄의 교리 뿐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다. 사도 요한은 그런 사람들이 이 편지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원한다.
“젊은이 여러분”이라는 말은 14절에서 한 번 더 사용되었는데, 사도는 그들에 대해 ”여러분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있다“고 칭찬한다. 달리 말하면, 이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미 악한 자를 이겼다.” 사도는 그들이 이 편지를 통해 격려를 받기 원했다.
“어린이 여러분”(14절)은 신앙의 초보자들을 가리키는데, 사도는 그들이 “이미 하늘 아버지를 알고 있다”고 격려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고, 그분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아버지 된 이 여러분”은 13절에서와 같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셨다는 심오한 진리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는 계속하여 알아가야 할 심오한 진리다.
묵상: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다르게” 보아야 하는지, “다르게” 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교리”입니다.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 “창조의 교리”입니다. 그 신은 단일체가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성된 복합체라는 믿음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가 깨어진 원인에 대해 설명한 것이 “원죄와 타락의 교리”이고, 죄와 사망의 운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구원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인류에 대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성육신의 교리”라고 부르고, 그분이 인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대속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신 사건에 대해 “부활과 승천의 교리”라고 부르고, 때가 되어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사건에 대해 “재림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워짐을 얻는 사건에 대해서는 “중생(거듭남)의 교리”라고 부르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성화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이 모든 교리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믿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모든 교리의 첫 실마리가 “중생(거듭남)의 교리”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대한 신비에 접촉되는 첫 단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생의 체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눈 뜨면, 그 이후로 하나님의 신비를 하나씩 받아들이게 되고, 받아들인 교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인간적인 한계로 인해 이 모든 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무한대와 무한소의 차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더 이해하고 싶고,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더 말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통해 신앙의 여러 단계에 있는 수신자들이 각자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바램이 오늘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요절: 14절
어린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이미 하늘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된 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태초부터 계신 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있어서, 여러분이 그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기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그 신비에 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다 알 수 없지만 더 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진리로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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