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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해설:
앞에서 거룩함에 대해 말한 다음, 사도는 다시 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불법”(4절)은 “법 없이 사는 것”과 “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도는 율법을 생각하고 이렇게 썼을 것이다. “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다. “죄를 짓다”와 “불법을 행하다”는 모두 현재형 동사로 되어 있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지속적, 반복적 행동을 가리키므로, 여기서 사도가 염두에 둔 것은 “습관적 죄” 혹은 “죄에 물든 생활”이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5절)라는 표현으로써 사도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분 자신이 죄가 없어야 한다.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6절) 사는 것이므로, 죄 짓는 상태에 머물러 살 수가 없다. 죄 가운데 살아간다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를 “보지도 못한” 것이고, “알지도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는다면 죄 짓는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살 수 없다.
사도는 수신자들에게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7절)라고 경고한다. “아무”는 미혹하는 영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앞에서 말한 거짓 교사를 의미할 수도 있다. 미혹하는 자들의 핵심 전략은 죄의 문제를 경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경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망각되고, 그것이 망각되면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 구원자)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다.
의를 행한다는 말은 그 사람 자신이 의롭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니 그분에게 속한 사람도 의로워진다. 반면, “죄를 짓는 사람”(8절) 즉 “죄를 짓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다. “악마”는 ‘디아볼로스’의 번역으로서 사탄을 가리킨다. “악마에게 속해 있다”는 말은 사탄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다”라고 말한 이유는 천사가 죄(하나님께 대한 반역)로 인해 사탄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의 본질은 죄라고 할 수 있다.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악마의 일”은 믿는 이들을 미혹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에게 난 사람”(9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사람을 가리킨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죄 짓는 상태에 머물러 살지 않습니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복숭아 씨앗은 복숭아 나무로 자랄 만한 모든 요소를 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만한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믿는다는 것은 그 씨앗을 품고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은 죄 짓는 삶에 그대로 머물러 살 수 없다.
행위가 존재를 드러낸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탄에게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불법 중에 불법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다(10절).
묵상:
요한 사도는 앞에서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1:10)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6절) 혹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9절)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사도가 앞에서 한 말을 잊어먹고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헬라어의 구문적 특징을 고려하면 이 모순이 해결됩니다. “죄를 짓는다”는 말은 죄를 죄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죄를 탐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은 그러한 삶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씨”가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씨앗을 품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속성이 자라나고, 의를 행하게 됩니다.
미혹하는 자들이 믿는 이들을 흔드는 가장 중요한 전략은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죄를 범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를 자랑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물을 존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잘 사는 것은 가장 많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고 높아서 인간들의 죄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착각하고 죄를 즐기다가 죄 가운데 멸망하게 만드는 것이 미혹하는 자들의 전략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악마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게 하여, 죄 된 삶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영원한 제물로 드리심으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우리의 죄는 그분의 보혈로 씻김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심겨집니다. 믿음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로잡아 의롭게 변화되어 의를 행하게 만드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까지 우리는 완전한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죄인 줄 알고, 죄에 넘어진 상태를 안타까이 여깁니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돌아서서 다시 의의 길을 갑니다. 그렇게 의와 거룩에 있어서 성장해 가는 것이 믿음의 여정입니다.
요절: 9절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기도:
저희에게 “하나님의 씨”를 심어주셨다는 말씀에 놀랍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품고 계시다는 사실에 또한 놀랍니다. 믿음 안에서 저희가 그토록 높아졌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고, 그 은혜에 걸맞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오, 주님,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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