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3장 4-10절: 죄 가운데 살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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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해설:

앞에서 거룩함에 대해 말한 다음, 사도는 다시 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불법”(4절)은 “법 없이 사는 것”과 “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도는 율법을 생각하고 이렇게 썼을 것이다. “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다. “죄를 짓다”와 “불법을 행하다”는 모두 현재형 동사로 되어 있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지속적, 반복적 행동을 가리키므로, 여기서 사도가 염두에 둔 것은 “습관적 죄” 혹은 “죄에 물든 생활”이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5절)라는 표현으로써 사도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분 자신이 죄가 없어야 한다.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6절) 사는 것이므로, 죄 짓는 상태에 머물러 살 수가 없다. 죄 가운데 살아간다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를 “보지도 못한” 것이고, “알지도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는다면 죄 짓는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살 수 없다. 

사도는 수신자들에게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7절)라고 경고한다. “아무”는 미혹하는 영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앞에서 말한 거짓 교사를 의미할 수도 있다. 미혹하는 자들의 핵심 전략은 죄의 문제를 경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경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망각되고, 그것이 망각되면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 구원자)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다. 

의를 행한다는 말은 그 사람 자신이 의롭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니 그분에게 속한 사람도 의로워진다. 반면, “죄를 짓는 사람”(8절) 즉 “죄를 짓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다. “악마”는 ‘디아볼로스’의 번역으로서 사탄을 가리킨다. “악마에게 속해 있다”는 말은 사탄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다”라고 말한 이유는 천사가 죄(하나님께 대한 반역)로 인해 사탄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탄의 본질은 죄라고 할 수 있다.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악마의 일”은 믿는 이들을 미혹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에게 난 사람”(9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사람을 가리킨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죄 짓는 상태에 머물러 살지 않습니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복숭아 씨앗은 복숭아 나무로 자랄 만한 모든 요소를 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만한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믿는다는 것은 그 씨앗을 품고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은 죄 짓는 삶에 그대로 머물러 살 수 없다. 

행위가 존재를 드러낸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탄에게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불법 중에 불법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다(10절).

묵상:

요한 사도는 앞에서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1:10)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6절) 혹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9절)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사도가 앞에서 한 말을 잊어먹고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헬라어의 구문적 특징을 고려하면 이 모순이 해결됩니다. “죄를 짓는다”는 말은 죄를 죄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죄를 탐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은 그러한 삶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씨”가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씨앗을 품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속성이 자라나고, 의를 행하게 됩니다.

미혹하는 자들이 믿는 이들을 흔드는 가장 중요한 전략은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죄를 범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를 자랑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물을 존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잘 사는 것은 가장 많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고 높아서 인간들의 죄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착각하고 죄를 즐기다가 죄 가운데 멸망하게 만드는 것이 미혹하는 자들의 전략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악마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게 하여, 죄 된 삶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영원한 제물로 드리심으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우리의 죄는 그분의 보혈로 씻김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심겨집니다. 믿음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로잡아 의롭게 변화되어 의를 행하게 만드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까지 우리는 완전한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죄인 줄 알고, 죄에 넘어진 상태를 안타까이 여깁니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돌아서서 다시 의의 길을 갑니다. 그렇게 의와 거룩에 있어서 성장해 가는 것이 믿음의 여정입니다. 

요절: 9절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기도:

저희에게 “하나님의 씨”를 심어주셨다는 말씀에 놀랍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품고 계시다는 사실에 또한 놀랍니다. 믿음 안에서 저희가 그토록 높아졌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고, 그 은혜에 걸맞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오, 주님,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무겁게 짊어진 죄짐을 벗겨 주시고,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의 특권을 주셨음을 감사와 찬양으로 올려드립니다. 주님,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씨가 심겨 있음을 잊은 채, 눈과 귀를 세상에 빼앗겨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성령님, 저의 잠든 영혼을 깨워 주셔서 무엇이 하나님 앞에 죄인지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저녁에 강한 소나기가 내리더니 날씨가 또 바뀐 것 같아요. 하늘이 맑게 개어오고 대기는 시원한 날, 수요일 아침입니다. 좀 일찍 깨어났어요.

    계속해서 주어진 본문(요일3:4-10)을 읽습니다.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자녀의 권세를 받은 자. 우리는 포도나무 되신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해요. 죄의 유혹에 자주 걸려 넘어지지만 죄가 내 삶의 패턴 자체가 되도록 그 자리에 둥지를 틀고 앉지는 말아야 하겠지요?

    빛의 자녀들. 하나님으로 난 자녀들 (children born of God). 놀랍게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가 떨어져 심어졌다고 성경이 선포하고 있네요. 그러니 열매를 맺어야 해요. 의의 열매, 사랑의 열매. 죄를 피하고 의를 행하며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 존 웨슬리의 삼대 원칙—“Do no harm, do good, stay in love with God”—을 기억해 보게 되네요.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수요일이지만 중요한 미팅이 있어 사무실로 출근할 계획이에요. 간 밤에는 잠을 꽤 깊게잤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허락된 오늘, 그 분량의 생명을 호흡합니다. 따뜻하게 샤워하고 향기로운 빵과 커피를 먹었습니다. 모든 것을 감사. 특히 가족이 곁에 있어서 감사.

    빛과 진리이신 분. 길이요 생명이신 분. 그의 사랑 안에 머물며 그 생명나무에서 끊어지지 않기를. 내 안에 숨겨진 하나임의 씨앗.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한 그루의 나무가 될 때까지. 주님의 시간이 내 시간과 교차하며 바라는 모든 것들이 실상이 되고 또 증거가 되기까지. 성령의 권능으로 악을 이기고, 선을 향하며,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점점 더 커가는 나날, 그런 열매 맺는 인생을 허락해 주시기를.

  3. Bill Kim Avatar

    “사랑하는자는 하나님안에서 태어났고 하나님을 알고(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반면에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너머질까 조심하라“ 말씀도 읊조리면서도 종종 너머지는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의 믿음을 믿도록 하신 성삼위 일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려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사랑의 빛진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오직 십자가의 구원만이 살길인것을 사귐의소리 식구와 함께 세상에 알리면서—- 아멘.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죄의 심각성을 되짚어 보게 하는 본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새로와졌다는 뜻입니다. 새로와졌으면 밖에서 보고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단순하지 않아서 단번에 달라진 것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표현처럼 겉사람과 속사람이 따로 있어서인지 다시 태어난 사람, 새로와진 사람일지라도 겉모습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달라진걸 종종 목격하고 또 자신의 변화도 경험하며 삽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새로와짐은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요, 사랑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한은 죄를 짓지 말라고 간절히 권면하면서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같은 ‘죄인’으로 묶습니다. 올바르게 사는 사람 곧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죄가 무거운 죄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내가) 짓는 죄가 한 둘이 아니기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죄인의 심정으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죄인 것을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한 습관적인 죄가 있습니다. 죄까지는 아니겠지 하면서 타의반 자의반으로 짓는 제도적인 죄도 있습니다. 나의 생존과 평안이 우선이라서 할 수 없다며 짓는 죄도 있습니다. 죄의 정의와 범위를 어떻게 정하든 나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회개의 은혜 덕분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회개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집을 나간 작은 아들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죄에서 돌이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이야기로 그만한 예화가 없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해보고 갈 때까지 갔다 ‘제정신이 들어’ 발길을 돌리는 모습, 아버지의 하인으로라도 살아야겠다며 집으로 오는 그의 심정, 아들이 그럴줄 알고 기다리는 아버지…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는 예화입니다. 예수님은 이야기의 끝부분에 또 하나의 교훈을 담습니다. 큰 아들의 시각입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다. 동생이 돌아왔는데 하나도 좋지 않습니다. 독자는 큰 아들도 작은 아들 못지않은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큰 아들에겐 사랑이 부족합니다. 사랑 없이 아버지와 살았습니다. 요한 사도의 관점에서 큰 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작은 아들의 죄는 겉으로 봐도 알 수 있는 죄였습니다. 큰 아들의 죄는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죄입니다. 동생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끝내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깨끗하게 마무리 짓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두 아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볼 뿐입니다. 큰 아들을 위한 변명과 변호도 가능합니다. 장자라는 무게 때문에 사랑보다 의무가 앞서는 삶을 살았을 수 있습니다. 동생처럼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가 아버지께로 오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묵묵하게 자기 일 하면서 주변을 챙기고 눈에 안띄게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사랑을 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표현을 하고 안하고 아닐까요. 그렇게 큰 아들의 입장을 이해합니다만, 예화의 중심은 아버지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겐 두 아들 모두에게 나눠줄 사랑이 넘치고도 넘친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기까지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각자의 길을 돌아왔다는 겁니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자녀인 우리에게 달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사랑을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빛 안에 있다면 떳떳하고 환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 어머니로 부를 수 있는 영광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이신 주님만 생각하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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