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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동생을 쳐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살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해설:
사도는 다시 사랑의 계명으로 돌아간다. 그 계명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바가 있다(11절). 사도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소환한다. 그는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12절)이었다고 말한다. “악한 자”는 앞에서 말한 악마 즉 사탄을 의미한다. 사탄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에 가인은 악을 행했고, 의를 행한 동생을 미워했다. 그 미움이 결국 살인죄를 낳았다.
아벨에게 일어난 것처럼,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기를 힘쓰다 보면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13절) 한다. 믿는 사람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기”(14절) 때문이다. 여기서의 “죽음”과 “생명”은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이 세상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믿는 사람들은 거북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형제자매를 진실되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음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의 “죽음”도 영원한 죽음이다.
사도는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15절)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태복음 5장 21-22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미움은 살인의 씨앗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미움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살인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
살인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것인 반면, 사랑은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그 사랑을 보여주셨다(16절). “버리다”로 번역된 헬라어 ‘티테미’는 “내어주다” 혹은 “내어놓다”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으니, 우리 또한 그 사랑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 “목숨을 내어준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한다는 의미다.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 모른체 할 수 없다(17절).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 수 없다.
결론으로서, 사도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18절) 사랑하자고 권한다.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말이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라고 해야 한다. 마음 담긴 한 마디 말은 큰 힘을 가진다. 하지만 말에 그치면 그 사랑은 진실되다고 볼 수 없다.
묵상:
지금 사도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믿음 안에서 자신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들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러 있고, 영원한 생명이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의롭게 변화되었고, 의를 행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죄 중에 죄는 미움이고, 의 중에 의는 사랑입니다.
그 변화는 한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을 의사가 치료해 주었으면, 건강을 되찾고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환자 자신의 책임입니다. 자신 안에서 시작된 변화가 더 깊어지고 강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면, 그 의가 더 깊어지고 강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에 무능한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바꾸어 주셨다면, 이제는 사랑을 실천하여 사랑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하지만 몸에 배인 미움의 관성을 따라 살아가려는 성향이 거듭난 우리에게도 남아 있습니다. “악한 자” 즉 사탄은 그 미움의 관성을 부단히 자극하여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려 합니다. 죄성이 살아 있는 한, 미움의 감정이 생겨날 수는 있습니다. 그 감정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만일 그 감정에 자신을 내어주면, 그 사람에게 주어졌던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 마음이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 “생명에서 죽음으로” 옮겨지는 재앙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본다면, “형제자매를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 주신 명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주신 명령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반면,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은 이미 얻은 구원을 가장 위태롭게 하는 일입니다.
요절: 18절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기도:
저희에게 참된 사랑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랑을 행할 수 있게 저희를 변화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능력을 실험하고 연습하는 일보다는 미움의 관성에 내어맡기는 영적 게으름이 저희에게 남아 있습니다. 오, 주님, 저희를 붙들어 주시어 미움의 관성이 이끄는 힘을 싸워 이기고 사랑의 능력을 따라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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