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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해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13절)라는 번역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하나님의 영이 쪼갤 수 있는 것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직역하면 “하나님이 자기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셨습니다”가 된다.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면 가장 먼저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14절)을 믿게 된다. 사도는 자신이 그 사실을 “보았고 … 증언했다”고 말한다. “시인하다”(15절)는 ‘호몰로게오’의 번역으로서 내면적인 믿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개적 시인은 그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로 보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백할 정도이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사도는 여기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달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16절)라고 확인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라고 결론짓는다.
묵상: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존재하시는 분이다”라는 뜻입니다. “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루아흐’와 헬라어 ‘프뉴마’는 “바람”, “공기” 혹은 “숨”을 의미합니다. 대기권 안에 공기가 충만한 것처럼, 하나님은 온 세상에 충만하십니다. 우리가 공기를 호흡하며 살지만, 공기를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살면서도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가 세상에 가득한 공기의 일부인 것처럼, 우리가 호흡하는 성령은 하나님의 일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내주하십니다. 이 말은 반대로 해도 맞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셔야만 나사렛 청년 예수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말은 십자가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의 병든 사랑이 치유를 받고, 그리스도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있다는 말은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요절: 13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기도:
저희 안에 성령을 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저희의 병든 사랑이 치유받아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저희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자신도 없습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어 사랑 안에서 더욱 자라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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