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장 17-21절: 두려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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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해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17절)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을 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진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2:14).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으로 산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18절)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죽음’과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이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징벌”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 그 사랑을 행하는 사람은 두 가지 모두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은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세상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분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형제자매를 사랑한다(19절).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함량 미달이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20절)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미워하면”은 현재형 동사로 되어 있다. 어떤 상황에서 미움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보이는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뗄 수 없는 한 쌍이다. 그것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천명하신 것이다. 

묵상:

요한일서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명사(‘아가페’)로 14회, 동사(‘아가파오’)로 17회, 총 31회 사용되었습니다. 흔히 요한을 가리켜 “사랑의 사도”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거듭 설명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혹은 우리가 행하고 있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말은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까지, 우리는 사랑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체험할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 주는 지표는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성경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기도를 얼마나 오래 하는가, 찬양을 얼마나 뜨겁게 하는가는 정확한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 맺어질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 성령께서 일하고 있다고 믿어도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그분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죽음도, 죽음 이후의 심판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요절: 18절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기도:

저희가 주님의 사랑을 알지만, 아직 머리에만 있고, 아직 입술에만 있습니다. 이 사랑이 저희의 손과 발로 옮겨지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선택하고 결정할 때마다 사랑이 기준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죽음의 골자기를 다닐지라도 해를두려워 하지 않는것은 주님이 함께 하심아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비록 사랑의 주님이 저와 함께 계시다는것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임마누엘 주님의 약속을 생각과 마음에 품고 주님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기를 원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사귐의소리 울타리 안에 있는 믿음의 형제 자메를 주님이 사랑한것 같이 서로 사랑하면서 본향을 향하여 기쁘게 걷는 순례자로서—-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깨난 아침, 수요일입니다. 마치 장마처럼 비오고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것으로 예보되고 있네요.

    주어진 본문(요일4:17-21)을 읽습니다. 사랑. 참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쫗는다고 하시네요. 목사님 해설처럼 제 안에 정말 사랑이 있다면. 또 그게 혀만으로 하는 것 아닌 행함과 진실을 담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구원의 증표이고 확신의 영이겠지요? 판단하는 마음, 정죄라는 마음,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 제가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들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형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비는 잦아들었지만 비구름이 가득한 하늘. 이제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에요. 비가 많이 왔지만 머리 위에는 지붕이 지켜주고 있어서 잠을 잘 잤어요. 아침에는 거뜬히 눈을 떠서 편안히 숨을 쉬고,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고, 향기로운 빵과 커피를 먹었습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제 마음은 왜 두려움으로 늘상 출렁이는 걸까요? 실패에 대한 불안? 내일에 대한 염려? 아이들? 이 기괴한 세상?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는 분. 오늘 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 하나도 솔로몬의 영화로 입히시는 분.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시는 그 아버지. 그 분의 사랑, 그 완전한 사랑에 나를 맡기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오늘이 되기를. 제게 참사랑을 주시길. 그 사랑이 두려움을 내몰게 하시길.

  3. gachi049 Avatar
    gachi049

    주님, 사랑이란 단순히 느끼는 마음을 넘어, 가장 소중한 것을 조건 없이 내어주어 타인을 채우는 행동임을 깨닫습니다. 조건 없는 그 사랑으로 죄의 사슬에 묶인 저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육신이 되어 사랑의 실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저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성령님께서 늘 저희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8절을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There is no room for fear in love. Well-formed love banishes fear. Since fear is crippling, a fearful life -fear of death, fear of judgment- is one not yet fully formed in love. 메시지 성경은 사랑을 우리가 살면서 완성해 가는 일이나 프로젝트로 보게 도와줍니다.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 때,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그렇게 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상태로 사는 것, 사랑을 켜 둔 상태에 사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더울 때는 누굴 만나도 인사가 너무 덥지요, 더운데 잘 지내십니까입니다. 더워도 에어컨 잘 안 틀고 산다던 이들도 요새는 에어컨 없이는 못 살겠어, 밤에도 계속 틀어 놔 이럽니다. 젊은이들은 온도를 낮게 설정해 놓고 에어가 자동으로 돌아가게 하는 반면 한국 장년들은 필요할 때에만 에어를 켜거나, 온도와 시간을 조정해가며 에어컨을 사용하는 편입니다. 요한 사도는 사랑을 온 on 으로 켜놓고 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모드, 사랑이 돌아가는 상태에서 살라고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먹는 약 가짓수가 는다지요. 성인병부터 영양 보조제나 기능성 약품 등 챙겨 먹는 약이 늘어납니다. 나도 이제 늙었구나 느끼는 때는 먹고 싶은대로 먹으면 안되겠다 싶을 때입니다. 좋아하고 즐기는 음식이 몸에는 좋지 않으니 끊기 시작하면 내가 이제 늙었구나 싶습니다. 덜 좋아해도, 입에 좀 거칠어도 몸에 유익하다면 먹습니다.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신경 쓰는 것처럼 사귐과 교제 관리를 위해 신경을 쓴다면 어떨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지 말고 내내 켜놓는 것처럼 환대와 배려, 친절, 유쾌, 이런 버튼을 켜놓고 살면 세상이 좀 좋아질까 싶습니다. 메시지 성경이 말하는 well formed love -잘 형성된 사랑, 든든히 세워진 사랑, 예쁘게 자란 사랑-는 상대방, 즉 내 사랑의 대상이 기쁘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도와 주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가진 능력은 사랑을 받는 사람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도 그렇게 되게 합니다.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주면 내 것은 없어지는게 아니라 내 것도 채워지는게 사랑입니다. 연합감리교단의 소식지에서 기존의 교회와 좀 다른 형식으로 사역하면서 그 지역에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교회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UMC에 속했지만 복음주의 교단에서 쫓겨(진보적이라 하여) 났지만 카리스마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LGBTQ+ 교인들을 환영하는 교회도 있고, neurodivergent -뉴로다이버전트, 신경다양성- 널리 알려진 예가 어티즘 (자폐) 스펙트럼 가족의 필요를 이해하고 충족 시키는 환경과 예배 형식을 도입하여 환영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사랑을 완성해가는 교회의 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아동과 성인은 소리와 빛에 매우 민감합니다. ‘뜨거운 찬양’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껴질 지, 활력있게 걷는 발걸음 소리와 큰 목소리, 거리낌 없는 스킨쉽 등이 뉴로다이버전트 사람들에게 어떤 부담이 되는지 솔직히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 기사를 통해 조도가 낮고 조용하고 잘 정리된 교회학교는 자폐아에게 와도 괜찮은 곳이라고 안심 시키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방향이 중요하다 싶습니다. 사랑이여 내게 오라가 아니라 사랑이여 저이에게 가라 하는 연습이 필요하겠습니다. 몸에 좋다는 것,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을 찾는 나이에 영혼이 잘 되는 것,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것에도 관심을 갖기를 원합니다. 영혼의 양식이며 생수이신 주님과 늘 불이 켜진 상태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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