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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해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17절)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을 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진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2:14).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으로 산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18절)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죽음’과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이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징벌”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 그 사랑을 행하는 사람은 두 가지 모두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은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세상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분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형제자매를 사랑한다(19절).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함량 미달이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20절)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미워하면”은 현재형 동사로 되어 있다. 어떤 상황에서 미움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보이는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뗄 수 없는 한 쌍이다. 그것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천명하신 것이다.
묵상:
요한일서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명사(‘아가페’)로 14회, 동사(‘아가파오’)로 17회, 총 31회 사용되었습니다. 흔히 요한을 가리켜 “사랑의 사도”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거듭 설명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혹은 우리가 행하고 있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말은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까지, 우리는 사랑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체험할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 주는 지표는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성경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기도를 얼마나 오래 하는가, 찬양을 얼마나 뜨겁게 하는가는 정확한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 맺어질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 성령께서 일하고 있다고 믿어도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그분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죽음도, 죽음 이후의 심판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요절: 18절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기도:
저희가 주님의 사랑을 알지만, 아직 머리에만 있고, 아직 입술에만 있습니다. 이 사랑이 저희의 손과 발로 옮겨지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선택하고 결정할 때마다 사랑이 기준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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