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5장 13-15절: 영적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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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들은 우리가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해설:

다음으로 사도는 이 편지를 쓴 동기를 밝힌다. 요한복음을 쓸 때도 그랬듯이, 이 편지를 쓰는 이유도 믿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13절) 하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것”은 곧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믿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하신 분이므로,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 안에 거하는 것이다. 12절에서도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도 요한에게는 “생명”과 “영생”이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영원의 차원에서 보면 육신적인 생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들의 이름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담대함”(14절)을 가진다. 그분의 넉넉한 사랑을 믿고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한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 된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려는 열망이 생기며, 그 열망을 따라 기도하면, 그분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15절). 우리의 간구를 들으실 뿐 아니라 응답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묵상:

이 편지에서 요한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편지의 목적이 안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실을 다시 일깨우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사도는 다시 그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수신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이들”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무감각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실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복음을 처음 받아들이고 거듭났을 때에는 새 세상을 보는 것 같고, 새 삶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거듭났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정체되는 느낌을 가지기 쉽습니다. 자신이 거듭났는지 의심하기도 하고, 성령께서 자신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침체가 깊어지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됩니다.

인간은 “익숙해짐”의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적응력”이라 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는 “권태감”의 원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에도 우리는 쉽게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혹은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에도 적용됩니다. 처음에는 눈물 콧물 쏟으며 감격했던 구원에 대해 나중에는 심드렁하게 여깁니다. 그러다가 믿음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 매너리즘”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하나님과의 사귐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절: 13절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도: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에 늘 깨어 있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그 생명의 능력이 저희를 통해 이 세상으로 흘러나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십자가의 은혜로 죄사함 받고 주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이 됐다는 믿음을 가진것이 어느덧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자격없는 죄인의 용서에 진정으로 감사하며 기쁘고 즐거웠던 삶이 모르는 사아에 무덤덤한 삶으로 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봅니다, 매일 매일 주님께 더 가까히 나아가고 깊고 긴밀한 사귐을 갖고 주님 닮아가고 말씀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하루 하루의 일상이 주님 앞에서 바르게 서고 새로워지는 승리의 삶을 살아내는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푸른 하늘엔 새털 구름이 끼어있고 햇살이 눈부신 8월의 아침, 토요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요일5:13-15)은 세 절 밖에 안됩니다. 짧은 본문에 이름, 생명(Zoe), 기도 등 여러 주제들이 풍성히 담겨있는 듯 해요. 다 이루는 기도에 생각의 촛점을 맞춰봅니다.

    요한복음에는 비슷한 내용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무엇이든이라는 단어에는 늘 귀가 번쩍 열리는 것 같아요. “거하면,…거하면”이라는 이중 조건에는 생각이 많아지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런 난해하고 추상적인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까요? 이름, 그리고 생명이라는 단어가 실마리를 주지는 않을까요? 질문이 틀린 것은 아닐지요? “무엇을 하느냐” (doing something)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 그 존재 상태에 머무느냐“ (being and remaining in someone). 그것이 진짜 문제는 아닐지요.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해요. 8월의 첫째주가 마무리 되는 날. 점심 약속도 있고 마무리할 일도 있어 마음이 좀 분주하네요. 간 밤에는 좀 늦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래도 꽤 잘 자고 아침에는 새벽예배도 온라인으로 보고 따뜻이 샤워하고 향기로운 커피와 빵을 먹었습니다. 고단한 인생 길. 쉼표를 허락하셔서 감사. 가족으로 인해 감사.

    포도나무 되신 분. 그 생명 줄기에 가지로 붙어 이미 주신 영생(Zoe)을 맛보며 찬양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뜻. 그 뜻은 사랑임을, 자녀답게 아버지의 유익(주의 의와 나라)을 먼저 구하는 것임을 기억하며 제 인생의 동산을 깨끗이 가꾸는 인생. 공의를 구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주와 함께 겸손히 걷는 길 (seek justice, love mercy and walking humbly with god). 그러므로 무엇이든 바라는대로 구하면 이뤄지는 삶. 그런 삶을 주시기를.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영적 매너리즘을 가리키는 말로, ‘친숙함은 경멸을 키운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는 격언이 있습니다. 익숙하고 흔해지면 별 것 아닌걸로 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해설에서 지적하듯 좋게 말해 적응력이고 나쁘게 말해 권태감입니다. 환경이든 사람이든 생경함이 없어질 때까지, 낯가림을없앨 때까지는 긴장을 합니다. 뭐든 배우려하고 알아가려 합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편안함이 찾아오고 안정이 됩니다. 이는 곧 권태감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예전에도 묵상에서 나눴는데 7월에 새목사님이 파송을 받아 오시면 교회는 긴장감과 기대로 반짝반짝합니다. 목사님은 더 합니다. 교우들을 알아가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씁니다. 결혼에 비유해 이때를 허니문 시기라고도 하지요. 허니문 시기로 계속 살기는 어렵습니다. ‘매일 신혼처럼 깨가 쏟아지는 부부’인 교회가 있을까요. 적응력이 좋아서 낯설음의 시간을 빨리 잘 넘기고 안정을 찾은 교회는 그 다음에 할 일이 권태감이 스며들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깨어 있어야 하고, 불편하고 힘들어 하는 교우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일주일쯤 전에 한국의 한 영화상에서 30대 배우가 대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소감의 끝머리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작품을 하는 것이 한 번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저라는 배우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을 찾고 싶어지고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상당히 속이 영근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교회, 직장, 가정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지금 present 이 선물 present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강요하거나 주장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새로 오신 목사님이 교우에게 바라는게 있을 것입니다. ‘목회의 비전’이 있고, 어떤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교우들도 목사님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겪었던 아픔을 복기하면 교인의 말을 들어 보는 목사님, 자기 말만 하지 않는 목사님, 나의 목회관이라는 답변 뒤로 숨지 않는 목사님을 바랍니다 저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우들이. 매너리즘은 어디에나 언제나 찾아옵니다. 휴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꼭 멀리 휴가를 가지 않아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여유가 있다면, 지금 여기가 당연한게 아니란걸 기억한다면 매너리즘의 계곡에 빠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님, 말씀 앞에 매일 나가 새로운 당신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매일 주님과 이웃을 새롭게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4. gachi049 Avatar

    주님, 처음 창세기부터 말씀을 읽을 때의 설렘과 호기심은 아득해지고, 이제는 마치 교과서를 읽듯 익숙함과 매너리즘에 빠져 있음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래도 말씀 묵상과 사귐의 기도 훈련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그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다 알기에 부족합니다. 주님, 부르실 때까지 매일의 삶이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되게 하시고, 성령님의 조명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더욱 알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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