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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들은 우리가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해설:
다음으로 사도는 이 편지를 쓴 동기를 밝힌다. 요한복음을 쓸 때도 그랬듯이, 이 편지를 쓰는 이유도 믿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13절) 하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것”은 곧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믿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하신 분이므로,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 안에 거하는 것이다. 12절에서도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도 요한에게는 “생명”과 “영생”이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영원의 차원에서 보면 육신적인 생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들의 이름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담대함”(14절)을 가진다. 그분의 넉넉한 사랑을 믿고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한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 된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려는 열망이 생기며, 그 열망을 따라 기도하면, 그분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15절). 우리의 간구를 들으실 뿐 아니라 응답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묵상:
이 편지에서 요한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편지의 목적이 안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실을 다시 일깨우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사도는 다시 그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수신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이들”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무감각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실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복음을 처음 받아들이고 거듭났을 때에는 새 세상을 보는 것 같고, 새 삶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거듭났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정체되는 느낌을 가지기 쉽습니다. 자신이 거듭났는지 의심하기도 하고, 성령께서 자신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침체가 깊어지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됩니다.
인간은 “익숙해짐”의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적응력”이라 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는 “권태감”의 원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에도 우리는 쉽게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혹은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에도 적용됩니다. 처음에는 눈물 콧물 쏟으며 감격했던 구원에 대해 나중에는 심드렁하게 여깁니다. 그러다가 믿음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 매너리즘”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하나님과의 사귐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절: 13절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도: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에 늘 깨어 있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그 생명의 능력이 저희를 통해 이 세상으로 흘러나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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