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삼서 1장 9-10절: 디오드레베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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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가 그 교회에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하는 일들을 들추어내겠습니다. 그는 악한 말로 우리를 헐뜯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자기도 신도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려는 사람들까지 방해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습니다.

해설:

가이오가 속한 교회에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가이오와는 정반대의 태도로 일관했다. 장로 요한은 디오드레베에 대해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9절)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교만하고 욕심이 과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은 장로의 영적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공동체의 우두머리로 행세하기 위해 장로 요한의 권위를 거부한 것이다. 장로는 자신이 직접 가서 그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한다. 편지로는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도력 다툼이 일어나면 항상 발생하는 문제가 상대방에 대한 중상모략이다. 디오드레베도 “악한 말로” 장로 요한의 권위를 헐뜯고 있었다. “신도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10절)는 말은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사람들까지” 방해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려 한다. 아마도 디오드레베는 가이오를 제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쫓아낼 길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혼자서 교회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묵상:

믿음의 공동체에서 영적 리더십을 두고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데, 실제로는 자주 일어납니다. 장로 요한이나 가이오와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지도자들은 신도들의 믿음이 자라도록 섬기는 것에 마음을 씁니다. 그러기 위해 기꺼이 낮아지고 기꺼이 희생합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인정받으려 하거나 공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반면, 디오드레베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명예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쉽게 두각을 나타내고 중요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본색은 금세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도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신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가장 비신앙적인 말과 행동을 하면서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공동체는 ‘뒤집어진 세상’(upside down kingdom)입니다. 믿음이 커질수록 낮아지는 세상이고, 섬기는 것으로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진실로 큰 사람은 스스로 낮추는 사람이고, 스스로 높아지기를 도모하는 사람은 작은 사람입니다. 서로가 자신을 낮추어 서로를 섬김으로 모두가 높아지는 세상입니다.

기도:

저희 안에 가이오도 있고 디오드레베도 있습니다. 가이오처럼 살려 하지만, 자주 디오드레베가 나오려 합니다. 저희를 붙드셔서 뒤집어진 세상을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믿음의 공동체인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삶의 영역에서 마땅히 낮아지고 섬겨야 한다는것을 알면서도 앞서고 인정 받고 군림하려고 인생을 허비한것 같아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지금 부터라도 낮아지고 겸손한 심정으로 섬기기를 원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을 기도로 섬기는 삶으로 삶을 마감할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앞에 섰을때 잘했다고 칭찬받는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 합니다. 아멘.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편지에 이름까지 나오는걸 보니 디오드레베는 공동체를 흔들어 댄 위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롤’ 소설에 스크루지가 나옵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세 유령이 나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인색함과 냉정함으로 자신을 칭칭 감고 고립된 삶을 사는 에버니저 스크루지가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꿈을 꾸듯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게된 그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자신의 미래 (장례식) 장면을 보고 더 이상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인생의 두번째 기회를 얻는 셈입니다. 새 결심으로, 새 사람으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합니다. 우리도 스크루지처럼 자기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면 새로운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 하는 인물평은 극히 조심스럽습니다. 우리 모두 언제라도 달라질 수 있는 소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골목대장’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디오드레베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내세우고,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소서. 특별한 사람인양 우쭐대고 싶어하는 마음을 없애 주소서. 자신을 성찰하며 조심스럽게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비구름이 걷힌 하늘이 점점 파래져오고 선선한 기운도 느껴지는 아침, 토요일입니다. 어제는 잠을 좀 설쳤습니다.

    아주 짧은 본문(요삼1:9-10)을 읽습니다. 내용은 평이해요. 스스로 으뜸이 되어 공동체에서 파당을 짓는 한 사람 (=디오드레베)에 대한 힐난. 방문할 때에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또 치리하겠다고 귀띰하는 어법이네요. 이 아침 목사님의 기도가 마음에 울림과 공감을 줍니다. “(제) 안에 가이오도 있고 디오드레베도 있습니다. 가이오처럼 살려 하지만, 자주 디오드레베가 나오려 합니다”.

    이제 또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꿈처럼 아름다운 8월의 토요일. 손주와 함께 동네 수영장에 가고, 맛있는 저녁도 만들어 먹으려해요. 살아 있어서, 소소한 행복도 누릴 수 있어서, 가족을 주셔서 감사. 늘 쫓기는 듯한 일상의 오선지 위에 찍어 주시는 안식의 쉼표로 인해.

    갈릴리 호수에서 세번 사랑을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고 돌보라 부탁하신 분. 제 인생의 동산에 심겨진 소중한 꽃과 나무들을 잘 섬기며 돌보는 오늘이 되기를. 내 자아와 내 나르시시스트적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으로부터 낳은 아이 (a child born of god) 답게 먼저 아버지의 유익,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나날. 주의 살과 피를 매일 먹고 마시며 제게 주신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가는 삶. 그런 인생을 주시길.

  4. gachi049 Avatar

    인류는 원죄를 안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공동체 안에는 가이오와 디오드레베 같은 모습이 공존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자부할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은밀히 숨어든 사탄은 탐욕과 과욕, 교만을 내세워 진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진리의 매너리즘에 빠진 성도들에게는 때로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경각심이 필요한 지도 모릅니다. 주님, 우리가 가이오와 같이 신실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디오드레베와 같이 완악해진 성도에게도 예수님의 사랑을 늘 베풀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그의 영과 마음이 사랑으로 녹아내려 결국 하나님 앞에 신실한 성도로 변화되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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