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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도 꿈꾸면서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은, 모세의 시체를 놓고 악마와 다투면서 논쟁을 할 때에, 차마 모욕적인 말로 단죄하지 못하고,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란다” 이렇게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욕합니다. 그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들처럼, 본능으로 아는 것 바로 그 일로 멸망합니다. 그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가인의 길을 걸었으며, 삯을 바라서 발람의 그릇된 길에 빠져들었으며, 고라의 반역을 따르다가 망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함께 먹을 때에 자기 배만 불리면서 겁 없이 먹어대므로, 여러분의 애찬을 망치는 암초입니다. 그들은 바람에 밀려다니면서 비를 내리지 않는 구름이요, 가을이 되어도 열매 하나 없이 죽고 또 죽어서 뿌리째 뽑힌 나무요, 자기들의 수치를 거품처럼 뿜어 올리는 거친 바다 물결이요, 길 잃고 떠도는 별들입니다. 짙은 어두움이 그들에게 영원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해설:
유다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꿈꾸는 사람들”(8절)이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꿈”은 허황된 믿음과 생각을 말한다. 그들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그들은 “육체를 더럽힌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들은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거침없이 죄를 즐겼다. 둘째, 그들은 “권위를 업신여긴다.” 여기서의 “권위”는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복음의 권위를 가리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복음을 왜곡했다. 셋째, 그들은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한다.” “영광스러운 존재들”은 삼위의 하나님과 사도들을 가리킨다.
9절에서 언급된 사건은 성경에는 없고 유대 문헌에서 발견된다. 이 유대 문헌들은 정경(성령의 영감이 담겨 있는 문서로서 신앙과 신학의 근거 자료가 되는 문서들)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참고 자료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유다는, 천사장 미가엘조차도 함부로 극단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에 반하여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아는 것을 전부로 알고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해 부정하고 정죄한다. 그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들처럼” 본능을 따라 행동한다.
유다는 그들이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행동은 가인과 발람과 고라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다(11절). 가인의 이야기는 창세기 4장 1-8절에 나와 있고, 발람의 이야기는 민수기 22-24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라의 이야기는 민수기 16장에 기록되어 있다.
유다는 그들에 대해 다섯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묘사한다. 첫째, 그들은 “애찬을 망치는 암초”(12절)다. “애찬”은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나누는 사랑의 교제인데, 그들은 “자기 배만 불리면서 겁없이 먹어대어” 사랑의 분위기를 망쳐 놓았다. 그들이 암초인 이유는 공동체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바람에 밀려다니면서 비를 내리지 않는 구름”과 같다. 겉으로는 그럴 듯한데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셋째, 그들은 “죽고 또 죽어서 뿌리째 뽑힌 나무”와 같다. 형식은 있지만 열매가 없다는 뜻이다. 넷째, 그들은 “거친 바다 물결”(13절)처럼 자기들 내면의 “수치를 거품처럼 뿜어 올린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인간의 죄성이 드러난다. 다섯째, 그들은 “길 잃고 떠도는 별들”과 같다. “짙은 어둠이 그들에게 영원히 마련되어 있다”는 말은 영원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묵상:
유다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이 아는 것을 절대화시키고,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칠게 부정하고 정죄하는 경향이 거짓 교사들에게 강하다고 지적합니다. 미가엘 천사가 모세의 시신을 두고 악마와 다투었다는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상상하여 만들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그 이야기 안에서 한 가지 진실을 찾아냅니다. 미가엘 천사가 악마에게 극단적인 혐오와 저주를 쏟아붓지 않는 태도에서 믿는 이들의 언행의 모범을 본 것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언행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바른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자신이 피조물이요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에게서 보이는 경향들이 지금도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에게서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떠듭니다. 자신들이 믿고 주장하는 것들 외에는 모든 것을 부정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경향이 바로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념이 첨예하게 양극화되고, 개인 방송의 보급으로 인해 모두가 진영 논리에 갇히다 보니, 그런 태도가 더욱 강고해집니다. 제대로 다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절대화시키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악마화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와 저주를 쏟아냅니다. 그런 성향이 강할수록 믿음 좋은 사람으로 칭송받습니다.
그러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는 점점 더 매력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복음은 왜곡되고 변질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작게 하고,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자세를 낮추어 다른 이들을 포용하려는 따뜻함과 유연함과 푸근함이 사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기독교는 세상에 불화를 더 심화시키고 갈등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요절: 8절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도 꿈꾸면서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기도:
저희의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 낮아지게 하시고, 더 넓어지게 하시며, 더 부드러워지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말과 행실을 통해 주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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