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장 8-13절: 믿음과 독선

3–4 minutes

To read

음성듣기

본문: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도 꿈꾸면서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은, 모세의 시체를 놓고 악마와 다투면서 논쟁을 할 때에, 차마 모욕적인 말로 단죄하지 못하고,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란다” 이렇게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욕합니다. 그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들처럼, 본능으로 아는 것 바로 그 일로 멸망합니다. 그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가인의 길을 걸었으며, 삯을 바라서 발람의 그릇된 길에 빠져들었으며, 고라의 반역을 따르다가 망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함께 먹을 때에 자기 배만 불리면서 겁 없이 먹어대므로, 여러분의 애찬을 망치는 암초입니다. 그들은 바람에 밀려다니면서 비를 내리지 않는 구름이요, 가을이 되어도 열매 하나 없이 죽고 또 죽어서 뿌리째 뽑힌 나무요, 자기들의 수치를 거품처럼 뿜어 올리는 거친 바다 물결이요, 길 잃고 떠도는 별들입니다. 짙은 어두움이 그들에게 영원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해설:

유다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꿈꾸는 사람들”(8절)이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꿈”은 허황된 믿음과 생각을 말한다. 그들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그들은 “육체를 더럽힌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들은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거침없이 죄를 즐겼다. 둘째, 그들은 “권위를 업신여긴다.” 여기서의 “권위”는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복음의 권위를 가리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복음을 왜곡했다. 셋째, 그들은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한다.” “영광스러운 존재들”은 삼위의 하나님과 사도들을 가리킨다.

9절에서 언급된 사건은 성경에는 없고 유대 문헌에서 발견된다. 이 유대 문헌들은 정경(성령의 영감이 담겨 있는 문서로서 신앙과 신학의 근거 자료가 되는 문서들)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참고 자료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유다는, 천사장 미가엘조차도 함부로 극단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에 반하여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아는 것을 전부로 알고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해 부정하고 정죄한다. 그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들처럼” 본능을 따라 행동한다. 

유다는 그들이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행동은 가인과 발람과 고라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다(11절). 가인의 이야기는 창세기 4장 1-8절에 나와 있고, 발람의 이야기는 민수기 22-24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라의 이야기는 민수기 16장에 기록되어 있다. 

유다는 그들에 대해 다섯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묘사한다. 첫째, 그들은 “애찬을 망치는 암초”(12절)다. “애찬”은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나누는 사랑의 교제인데, 그들은 “자기 배만 불리면서 겁없이 먹어대어” 사랑의 분위기를 망쳐 놓았다. 그들이 암초인 이유는 공동체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바람에 밀려다니면서 비를 내리지 않는 구름”과 같다. 겉으로는 그럴 듯한데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셋째, 그들은 “죽고 또 죽어서 뿌리째 뽑힌 나무”와 같다. 형식은 있지만 열매가 없다는 뜻이다. 넷째, 그들은 “거친 바다 물결”(13절)처럼 자기들 내면의 “수치를 거품처럼 뿜어 올린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인간의 죄성이 드러난다. 다섯째, 그들은 “길 잃고 떠도는 별들”과 같다. “짙은 어둠이 그들에게 영원히 마련되어 있다”는 말은 영원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묵상:

유다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이 아는 것을 절대화시키고,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칠게 부정하고 정죄하는 경향이 거짓 교사들에게 강하다고 지적합니다. 미가엘 천사가 모세의 시신을 두고 악마와 다투었다는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상상하여 만들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그 이야기 안에서 한 가지 진실을 찾아냅니다. 미가엘 천사가 악마에게 극단적인 혐오와 저주를 쏟아붓지 않는 태도에서 믿는 이들의 언행의 모범을 본 것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언행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바른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자신이 피조물이요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에게서 보이는 경향들이 지금도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에게서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떠듭니다. 자신들이 믿고 주장하는 것들 외에는 모든 것을 부정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경향이 바로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념이 첨예하게 양극화되고, 개인 방송의 보급으로 인해 모두가 진영 논리에 갇히다 보니, 그런 태도가 더욱 강고해집니다. 제대로 다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절대화시키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악마화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와 저주를 쏟아냅니다. 그런 성향이 강할수록 믿음 좋은 사람으로 칭송받습니다.  

그러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는 점점 더 매력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복음은 왜곡되고 변질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작게 하고,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자세를 낮추어 다른 이들을 포용하려는 따뜻함과 유연함과 푸근함이 사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기독교는 세상에 불화를 더 심화시키고 갈등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요절: 8절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도 꿈꾸면서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기도:

저희의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 낮아지게 하시고, 더 넓어지게 하시며, 더 부드러워지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말과 행실을 통해 주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주님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고 희미하게 보고있지만 때가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며 주님이 저희들을 아는것같이 저희들도 온전히 알때가 온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문제는 주님께서 기뻐히 받으실 열매가 없습니다. 아직도 거치른 세상 풍조에 휩쓸려 떠내려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십자가를 꼭 붙잡고 흔들리지 않고 거룩한 길을 걸으며 저희들의 삶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언젠가 주님앞에 섰을때 잘했다고 칭찬 받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밝은 회색 구름이 스크린처럼 하늘을 덮고 있고 매미 소리가 왠지 처량한 아침, 목요일입니다. 이제 가을의 문턱에 서서히 닿고있는 갈까요?

    본문(유1:8-13)을 읽습니다. 얼마전에 공부한 벧후2:10-16절과 사실상 같은 내용인 평행본문. 초기 영지주의의 이단신학에 대한 강한 비판과 정죄. 특히 유대교와 고대 기독교의 층위적 천사질서 (미가엘-가브리엘-정사-권세-주권)를 부정하고 모독(열등하고 악한 영적 존재로서의 천사관)하는 영지주의 교사들에 대한 강한 반론이라고 하네요 (copilot).

    삼층천(바울), 칠층천(에녹전승), 영적 실제로의 천사계층 등 근대 이후 신학에서는 퇴화된 개념들에 대한 논쟁이라 이해와 적용이 어려운 본문. 목사님의 해석처럼 교만 (=영적 무지의 또 다른 단면), 해치는 말(=칼 같은 찌르고 죽이는 혀), 영적 무질서에 생각의 발걸음을 멈춰보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우리는 하느님을 그 분이 알려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음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내 혀가 찌르고 깎아내리고 해치는 칼이 되지 않게 혀에 재갈을 물리고 온유함으로 길들이는 날들이 되기를. 주신 자유에 도취되어 영적 방종과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게 하시길. 오늘 주신 하루 분의 생명.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받으며 이 소망의 길, 소명의 길을 계속 걷기를. 아빠 우리 아버지.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지난 몇 달간 (여름 내내) 우리는 사도들의 서신들을 읽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수많은 신자들을 고민에 빠뜨린 거짓 가르침들이 얼마나 강력한 유혹이고 바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뀌거나 변하지 않지만 복음을 복음으로 받고 순종하는 우리는 바뀌고 변합니다. 이 긴장이 떨림과 두려움을 가져 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수많은 가르침이 우리에게 손짓합니다. 복이 되는지 아닌지 금방 판명 나는 가르침이 있는가 하면 충격과 논란을 다 벗어내지 않았지만 수세기 동안 살아 남은 가르침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처음부터 귀에 달고 sweet 마음을 울리는 가르침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딱 알겠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이해하여 따른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용의 단계부터 이런데 우리가 진리에 순종하며, 수호하여 목숨까지 바치는 단계로 가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성령의 인도입니다. 우리에겐 미가엘 천사의 지혜나 절제력이 없습니다. 악 -유혹, 달콤한 약속, 그럴듯한 진리,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 등등-에 맞서서 싸우는 용기와 힘도 약합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약함입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 입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마가 9: 24)’ 라고 외친 아버지의 ‘모순’이 우리를 주께로 이끕니다. 이 모순이 독선의 이중성보다 낫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늘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은 권력의 세계에서만 통하는게 아닙니다. 사람의 모든 것은 절대로 절대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상대적입니다. 독선 홀로 ‘독’+ 옳을/착할 ‘선’은 단어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나만 선하다는 사람은 이미 선함에서 벗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어로는 self righteous 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옳다고 하면 이미 선함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지혜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내 삶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현명을 맞는 때에 맞는 만큼 주신다고 믿습니다. 영지주의도 세상의 가설과 이론들도 다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혜를 무조건 배척하여 문학, 철학, 예술, 과학 다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오직 성경 한 권 만 읽으면 된다는 사람들-도 거짓 가르침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도, 그렇게 믿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어 괴로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은혜입니다. 내 믿음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의 사랑이 이루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4. gachi049 Avatar

    주님, 벼 추수 때가 되면 잘 영글고 잘 익은 벼가 머리를 숙이듯이, 하나님과 깊이 사귈수록 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이를 위해 저의 영과 육을 다스려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eave a Reply

Discover more from 사귐의 소리 2026

Subscribe now to keep reading and get access to the full archive.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