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장 14-16절: 마지막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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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런 사람들을 두고 아담의 칠대손 에녹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보아라, 주님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으니, 이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또 불경건한 죄인들이 주님을 거슬러서 말한 모든 거친 말을 들추어내서, 그들을 단죄하시려는 것이다. 이들은 불만에 싸여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요, 자기들의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입으로 허풍을 떨다가도,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남에게 아첨을 합니다.”

해설:

“아담의 칠대손 에녹”(14절)은 창세기 5장 24절에 언급된 사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는 표현을 그가 죽지 않고 들려 올려졌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히 11:5)라고 했다.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음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언젠가 에녹이 다시 와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약성경에 들어가지 못한 유대 문헌 중에 에녹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에녹이 돌아와서 하늘에 관한 비밀을 전하는 이야기인데, 정경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성령의 영감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보아라, 주님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으니”라는 구절은 에녹 1서 1장 9절을 인용한 것이다. 유다는 이 예언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했다. 

주님께서 천사들과 다시 오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기”(15절) 위해서다. “심판하다”는 말은 “정의를 행하다”라는 의미다. 각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따라 의인에게는 구원으로, 악인에게는 멸망으로 판정하신다는 뜻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주님을 거슬러서 말한 모든 거친 말들”을 들추어 내어 징계하실 것이다. “불경건”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불만에 싸여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16절)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이 불평거리가 된다. 광야 유랑 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주 불평불만을 일삼아 모두 광야에서 숨졌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또한 “자기들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동기요 목적이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교만하게 허풍을 떨다가도, 이익 앞에서는 굽신대면서 아첨을 떨었다. 

묵상:

마지막 심판 장면에 대해 묘사하면서 유다는 각 사람이 행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날 것이며, 그것에 대해 “정의를 행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어 표현에서 “put to justice”는 “재판에 부치다”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정의에 부치”가 됩니다. “정의의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정당한 평가와 그에 대한 보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재판정에서 검사가 피고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어 고발하면, 재판장은 변호사의 변호를 참고하여 피고에게 정당한 보응이 무엇인지를 결정합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도 영원한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그 자리에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숨겨진 우리의 죄가 모두 밝혀진다면, 우리 자신조차 유죄 판결을 받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는 이들은 그 자리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대속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재판장 앞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의 죄는 제가 이미 담당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것이고, 재판장은 그 변호를 받아들여 우리에 대한 기소를 취소하실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 3:18)고 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마지막 날”은 구원이 완성되는 새로운 “시작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날이며, 완전하고도 영원한 평화와 사랑과 안식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기도:

주님 안에 있으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는 것”은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마지막 날”은 “새로운 시작”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도, 심판대 앞에 서는 것도 두렵지 않다면, 이 세상에서 당할 일 중에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담대하게 그러나 겸손히 살아가겠습니다. 아멘. 

3 responses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엘에이는 요즘 또 더워졌습니다. 지난 주는 90도를 넘기지 않아 이제 여름의 끝이구나 싶었는데 이번 주는 매일 100도 가까이 더운 날이 계속됩니다. 더워서인지 통 잠에 들지 못해 뒤척이다 아예 일어났습니다. 본문에 에녹이 나옵니다. 창세기에는 홍수 사건 이전의 인물들이 몇 살까지 살았는지 기록되어 있는데 에녹은 365년을 살았습니다. 평생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누리며 살다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다고 기록합니다. 에녹은 유다교와 기독교, 말일성도교와 이슬람교에서 성인으로 대접 받습니다. 여러 전승들은 에녹을 심판 집행자, 으뜸 천사장, 기록자, 하나님 보좌 옆에 있는자 등으로 이해합니다. 유다는 에녹의 예언을 빌려 하나님의 심판은 미래에 확실히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유다는 다른 사람에 대해 늘 불평하는 사람을 심판의 벌을 받는 첫번째 경우로 꼽습니다. 섬찟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하고, 안 좋게 말하고, 안 보고, 멀리하는 나의 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를 그렇게 대하면 엄청 억울해 하겠지만 내가 남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attribution bias -귀속, 책임, 탓- 편견이라는게 있습니다. ‘내로남불’과 비슷한데, 타인이 실수하는건 그의 됨됨이 때문이고 내가 잘못하는건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편견입니다. 남이 지각하면 게을러서 시간을 못 맞춘거고, 내가 지각하면 차가 막혀서 할 수 없이 늦었다는 겁니다. 이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지만 나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용서 받아야 한다고 크게 착각하는 겁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솔직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그건 솔직한게 아니라 이기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이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황금률은 최고의 비결입니다.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대로,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해주어라.’ 나와 너의 경계를 해체하는 일, 타인의 자리에 나를 세워 보는 일, 오늘 신경 써서 체크해 보고 싶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토네이도 기류가 물러가고 날씨가 확 선선해졌습니다. 이제 가을의 문이 열리는 걸까요? 연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이 아름다운 아침, 금요일입니다.

    주어진 본문(유1:14-16)을 읽습니다. 영지주의 이단교사들의 교만과 (신성) 모독. 그 결국에는 심판이 따르겠지요? 수만의 천사를 거느리고 (내려)오시는 주님.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묵시 예언(사40:10)이 생각나는 본문.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주의 재림과 심판. 그 날이 도둑 같이 오는 것 맞을까요? 어떻게 하면 항상 깨어있을 수 있는지. 종말은 좋은 것일까요? 물음만 꼬리를 물고 대답은 딱히 알 수 없네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 주.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신 이. 그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을 뿐.

    이제 하루를 또 시작하려 합니다. 낮에 사무실에 가고, 저녁엔 미팅이 있어 마음이 분주한 날. 그래도 밤에는 잠을 잤고, 아팠던 어깨도 점점 낳아지고 있어요. 아침엔 거뜬히 일어나 신선한 생명의 날을 호흡하고 빵과 커피를 먹었습니다. 오늘도 일상이 이어지고 있어서, 또 가족으로 인해 감사.

    하나님이 정말로 계심을, 또 상급이 있음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던 자. 내 붉은 죄를 흰눈보다 더 희게하신 그 놀라운 능력. 보혈. 구주의 보혈.

    그 보혈로 인해 주의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보좌 앞으로 나아갈 담력을 얻었지요.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또 한 걸음씩. 그 걸음들이 매일 쌓이는 나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삶. 그런 인생을 허락해 주시길.

  3. Bill Kim Avatar
    Bill Kim

    매일 아침 허락하신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며 약속하신 십자가의 죄사하심을 영혼 깊은곳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들의 죄를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하신다“는 말씀을 읊조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토록 귀한 복음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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