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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런 사람들을 두고 아담의 칠대손 에녹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보아라, 주님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으니, 이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또 불경건한 죄인들이 주님을 거슬러서 말한 모든 거친 말을 들추어내서, 그들을 단죄하시려는 것이다. 이들은 불만에 싸여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요, 자기들의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입으로 허풍을 떨다가도,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남에게 아첨을 합니다.”
해설:
“아담의 칠대손 에녹”(14절)은 창세기 5장 24절에 언급된 사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는 표현을 그가 죽지 않고 들려 올려졌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히 11:5)라고 했다.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음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언젠가 에녹이 다시 와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약성경에 들어가지 못한 유대 문헌 중에 에녹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에녹이 돌아와서 하늘에 관한 비밀을 전하는 이야기인데, 정경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성령의 영감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보아라, 주님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으니”라는 구절은 에녹 1서 1장 9절을 인용한 것이다. 유다는 이 예언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했다.
주님께서 천사들과 다시 오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기”(15절) 위해서다. “심판하다”는 말은 “정의를 행하다”라는 의미다. 각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따라 의인에게는 구원으로, 악인에게는 멸망으로 판정하신다는 뜻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주님을 거슬러서 말한 모든 거친 말들”을 들추어 내어 징계하실 것이다. “불경건”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불만에 싸여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16절)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이 불평거리가 된다. 광야 유랑 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주 불평불만을 일삼아 모두 광야에서 숨졌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또한 “자기들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동기요 목적이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교만하게 허풍을 떨다가도, 이익 앞에서는 굽신대면서 아첨을 떨었다.
묵상:
마지막 심판 장면에 대해 묘사하면서 유다는 각 사람이 행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날 것이며, 그것에 대해 “정의를 행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어 표현에서 “put to justice”는 “재판에 부치다”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정의에 부치”가 됩니다. “정의의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정당한 평가와 그에 대한 보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재판정에서 검사가 피고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어 고발하면, 재판장은 변호사의 변호를 참고하여 피고에게 정당한 보응이 무엇인지를 결정합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도 영원한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그 자리에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숨겨진 우리의 죄가 모두 밝혀진다면, 우리 자신조차 유죄 판결을 받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는 이들은 그 자리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대속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재판장 앞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의 죄는 제가 이미 담당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것이고, 재판장은 그 변호를 받아들여 우리에 대한 기소를 취소하실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 3:18)고 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마지막 날”은 구원이 완성되는 새로운 “시작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날이며, 완전하고도 영원한 평화와 사랑과 안식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기도:
주님 안에 있으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는 것”은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마지막 날”은 “새로운 시작”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도, 심판대 앞에 서는 것도 두렵지 않다면, 이 세상에서 당할 일 중에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담대하게 그러나 겸손히 살아가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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