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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러분을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시고, 여러분을 흠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의 영광 앞에 기쁘게 나서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 곧 우리의 구주이시며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주권과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 전에와 이제와 영원까지 있기를 빕니다. 아멘.
해설:
유다는 마지막으로 수신자들을 위한 축복의 기원을 적는다. 이 기원의 초점은 성부 하나님을 향한다. 그분은 믿는 이들을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신다”(24절). “넘어지다”는 죄의 유혹이나 악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키다”로 번역된 헬라어 ‘퓔라소’는 무장한 군사의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죄에 물든 인간은 죄의 유혹과 악의 위협에 혼자서 맞서 싸워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은 또한 그들을 “흠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의 영광 앞에 기쁘게 나서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전능하신 분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유다는 그분을 “우리의 구주이시며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25절)이라고 묘사한다. 인류를 온전히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계시지 않다. 그런 분이기에 믿는 이들은 “영광과 위엄과 주권과 권세”를 오직 그분께만 돌린다. 다만,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그렇게 할 수 있다.
“영원 전”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영원은 1차원 시간을 넘어선 것이기에 전이나 후가 없다. “영원 전에와 이제와 영원까지”는 영속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묵상: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인기 없는 단어는 죄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무엇을 죄라고 말하는 것은 편견에서 나오는 것이며 혐오를 퍼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죄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각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경계심이 느슨해졌습니다. 죄를 부끄러워 하기 보다는 자랑합니다. 교회는 그러한 사조에 따라 가기 위해 복음의 내용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습이 마치 축제를 즐기면서 불 가운데로 행진해 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런 시대에 살기에 유다서는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을 왜곡하여 인간의 죄성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악한 행위인지를 기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죄악을 선택한 것에 대한 심판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죄악에 대해 시퍼런 경계심을 가지게 하고 거룩한 삶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거룩한 열망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결심은 너무나 쉽게 흐려지고, 우리의 의지는 너무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성삼위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과 경배는 오직 성삼위 하나님에게만 향합니다. 모든 것은 그분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죄악에 대한 저희의 영적 감각을 예민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죄악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거룩한 삶을 향한 열심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삼위 하나님께서 저희를 돌보시고 인도하셔서 저희의 결심과 의지가 열매 맺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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