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본문:
요단 강 서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에 있는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들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그 강물을 말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간담이 서늘했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아주 용기를 잃고 말았다. 그 때에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베풀어라.” 그래서 여호수아는 돌칼을 만들어 기브앗 하아라롯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여호수아가 할례를 베푼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백성 가운데서 남자 곧 전투할 수 있는 모든 군인은, 이집트를 떠난 다음에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다 죽었다. 그 때에 나온 백성은 모두 할례를 받았으나, 이집트에서 나온 다음에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할례를 받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이집트를 떠날 때에 징집 연령에 해당하던 남자들은, 사십 년을 광야에서 헤매는 동안에 그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우리의 조상에게 맹세하셨지만, 이집트를 떠난 조상이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볼 수 없게 하겠다고 맹세하셨다. 그들을 대신하여 자손을 일으켜 주셔서,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는데, 그것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지 않아서, 그들이 무할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성이 모두 할례를 받고 나서 다 낫기까지 진 안에 머물러 있었다.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고 한다.
해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넌 이야기가 가나안의 여러 왕들에게 전해진다. 그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일들에 대해서도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 자신들의 땅을 향해 오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들은 두려워 떨었다. “그들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그 강물을 말리셨다”(1절)는 수사적 과장이다. “땅의 모든 백성이 주님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신가를 알도록”(4:24)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돌칼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할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신다(2절). 출애굽 1 세대는 이집트에 있을 때 할례를 받았지만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 지금 여호수아가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로서, 광야 유랑의 상황에서 할례를 소홀히 했던 것 같다(4-7절).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과 함께 명하신 일이다(창 17장).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예식이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마자 모든 남성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주님은 “돌칼”(2절)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가는 중에 모세가 갑자기 죽음의 위기를 맞았을 때, 십보라가 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할 때에도 돌칼을 사용했다(출 4:25). 철로 된 칼이 있음에도 굳이 돌칼을 사용하라고 하신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할례가 철기 문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이었음을 상기시키려는 의미로 보인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돌칼을 만들어 그곳에 있는 산에서 백성에게 할례를 행한다.
그들이 할례 받은 산은 나중에 ‘기브앗 하아라롯’(할례산)이라고 불렸다(3절).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의 상처가 아물기까지 진 안에 머물러 있었다(8절). 할례를 끝냈을 때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버렸다”(9절)고 말씀하신다.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는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던 수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묵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들이신 이유는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모델 국가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고, 매일같이 만나로 먹이신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놀라운 이적으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편애하시는 증거가 아닙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할 목적으로 그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단 강을 건너 길갈에 진을 치고 자리를 잡았을 때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라는 뜻입니다. 저자(들)은 이 이야기를 전하며 출애굽 1세대의 실패를 4절과 6절에서 반복합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았음에도 하나님에게 반역하여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할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언약 백성답게 살도록 힘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적진 앞에서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면에서 본다면, 매우 위험한 일일 수 있었습니다. 만일 상처가 아물기 전에 다른 민족이 공격해 오면 전투력에 큰 지장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을 받았을 때 여호수아는 잠시 망설였을지 모릅니다. 매우 위험한 도박과 같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유대인에게 할례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세례가 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이 땅에서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삶이 따르지 않으면 할례가 무익했던 것처럼 세례도 무익해질 수 있습니다.
요절: 3절
그래서 여호수아는 돌칼을 만들어 기브앗 하아라롯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기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다시 지어졌다는 사실이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의 근거입니다. 세례로써 저희는 주님의 소유가 되었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으며,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오니 저희의 새로운 정체성이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게 해주십시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주님의 모습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