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 10장 29-43절: 가나안 땅을 정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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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건너가서, 립나와 싸웠다. 주님께서 립나도 그 왕과 함께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칼로 그 성과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무찔러서, 그 안에 산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의 왕에게 한 것과 같이 립나의 왕도 무찔렀다. 또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건너가서,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다. 주님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 사람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그 이튿날 이스라엘은 그 성을 점령하였고, 립나에서 한 것과 꼭 같이, 칼로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무찔렀다. 그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왔다. 여호수아는 그 왕과 그 백성을, 살아 남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무찔렀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건너가서,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그 날 그 성을 점령하고, 칼로 그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무찌르고, 라기스에서 한 것과 꼭 같이, 그들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쳐올라가서, 그들과 맞서서 전투를 벌였다. 그들이 그 성을 점령하고, 에글론에서와 꼭 같이, 그 왕과 온 성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고 칼로 무찔렀다. 그들은 그 성과 그 성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드빌로 돌아와서, 전투를 벌였다. 그는 그 성과 왕과 그의 모든 성읍들을 점령하고, 칼로 쳐서,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으며,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 그는 헤브론과 립나와 그 왕에게 한 것과 꼭 같이 드빌과 그 왕을 무찔렀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온 땅 곧 산간지방과 네겝 지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들의 모든 왕을 무찔러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명을 따라, 살아서 숨쉬는 것은 모두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또한 여호수아는 가데스바네아에서 가사까지, 그리고 온 고센 땅뿐만 아니라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찔렀다. 주 이스라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싸우셨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단번에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손에 넣었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길갈에 있는 진으로 돌아왔다.

해설:

막게다를 점령한 후, 여호수아는 동맹을 맺어 기브온을 공격했던 왕들의 성들을 차례로 공격한다. 그는 먼저 립나로 가서 성을 점령하고 왕과 모든 주민을 전멸시킨다(29-30절). 이어서 라기스 성(31-33절), 에글론 성(34-35절), 헤브론 성(36-37절) 그리고 드빌 성(38-39절)을 차례로 점령하고 왕과 주민을 전멸시킨다. 저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전멸시켜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40절에서 저자(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의 대부분을 점령했고,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는 가나안 남부 지역까지 점령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싸워 주셨기 때문”(42절)이었다. 긴 원정 끝에 여호수아는 길갈에 있는 진으로 돌아온다(43절). 

기록 상으로만 보면, 짧은 시간 안에 가나안의 여러 성읍들을 점령했고,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년에 걸친 전쟁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중간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저자(들)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신실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묵상: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호수아기를 비롯한 구약의 역사 기록은 “고백적 역사”입니다. 현대 실증주의 역사가들처럼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신실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성을 점령할 때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전멸시켜 희생제물로 바쳤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 이유도 같은 의미입니다. 전술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민족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연전연패 해야 할 그들이 연전연승을 이어갔습니다. 

여호수아기가 기록될 즈음 유대인들은 소수자들로서 이민족들 사이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국가적으로 다시 회복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에 살던 흑인 노예들의 상황보다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유대인들에게 여호수아의 압도적 승리의 이야기는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유대인들이 구약의 역사 이야기를 탐독하여 읽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근본주의적인 유대인들이 여호수아기를 전범으로 삼아 이스라엘 땅에 사는 모든 비유대인들을 제거하려 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읽고 적용하는 가장 나쁜 예입니다. 기독교 국가주의(Christian Nationalism)를 신봉하는 백인들이 이 땅에서 다른 인종들을 몰아내겠다는 목적으로 민병대를 모아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습니다. 그들도 여호수아의 ‘헤렘’ 전쟁을 모델로 삼습니다.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쟁 이야기를 쓴 이유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절: 40절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온 땅 곧 산간지방과 네겝 지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들의 모든 왕을 무찔러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명을 따라, 살아서 숨쉬는 것은 모두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기도: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인종 청소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거룩한 전쟁”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에 저희도 분노하는데, 주님은 얼마나 더 그러시겠습니까? 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이들을 제어하여 주십시오. 저희를 도우셔서 누구를 만나든 주님의 형상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마음에 혼란이 오는 요절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 가나안 사람이 이스라엘에 사는 그리스도인 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성지 순례의 뻐스 기사는 가자사람 기독교인 이어서 찬송가를 같이 부르며 다녔습니다. “지금 나는 부분적으로 아나 때가 되면 주님이 나를 아시는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 는 말씀을 읊조리며 모든사람들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겠습니다, 예 믿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푸른 바탕에 검고 흰 구름이 빗살 무늬처럼 끼어있어 좀 비장한 아름다움을 주고 대기는 쌀쌀한 아침, 금요일입니다.

    본문(여10:29-43)은 계속해서 잔혹한 진멸전(헤렘) 이야기. 그로테스크하고 좀 공포스러운 본문이에요. 목사님 인도처럼 이 책의 저자들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었을지에 생각을 모아봅니다.

    언약의 양면성 즉 축복과 저주. 그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저주스러운 현재 (포로기)를 회복의 미래로 바꾸려면 어떤 내면과 공동체의 정화 (=자기 안의 악을 진멸)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들이 순종의 길로 돌아올 때 주실 승리와 회복의 약속은 얼마나 신실한 것인지…

    오늘은 체크업 때문에 아침 일찍 병원을 방문했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튼튼한 두 다리로 걷고 견고한 심장의 박동으로 생명을 이어가게 하심을 감사.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주신 기회, 그 생명의 기회로 인해 감사.

    에발산의 저주를 홀로 지고 가신 유월절 어린양. 그래서 그리심산의 축복만 남겨주시고 그 축복과 함께 사명을 주시는 이를 경배. 주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약속의 땅을 향해 용감히 나아가는 오늘이 되기를. 여리고가 무너지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승리하는 나날. 그것이 나의 삶이 되기를. 아이들의 인생이 되기를.

  3. gachi049 Avatar

    하나님, 주님께서는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셨고(사도행전 17:26), 외모나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며(사도행전 10:34~35),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음을 고백합니다.(갈라디아서 3:28) 또한 마지막 날, 모든 민족과 언어가 주님을 찬양하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요한계시록 7:9) 주님, 오직 자신의 민족만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주장하는 배타적인 무지와 오만을 다스려 주시고, 그로 인한 불의한 행동들을 멈추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가는 일에 우리 믿음의 공동체를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사람에겐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정의와 기대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점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행복의 공통점으로 조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편편하고 편안하고 원만한 상태일 때 행복을 느낍니다. 음식의 맛이나 날씨 같이 감각의 영역에서도 조화로울 때 행복하고,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계획 같은 내면의 세계를 돌아볼 때도 조화와 균형이 느껴지면 행복합니다. 추석은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 달이 유난히 밝은 명절입니다. 연중 최고의 명절이지요. 농경문화에서 ‘5월 농부 8월 신선’의 뜻은 봄 계절내내 농사일로 쉴 틈이 없다가 오곡이 익는 가을에는 풍성함을 누리며 쉬고 즐긴다는 뜻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기도입니다. 말씀 묵상과 행복이 관계가 있을까요.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처방전 같은 말 말고, 말씀 앞에 앉아 깊이 생각하고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어렸을 때는 성경을 ‘그대로’ 읽고 믿었습니다. 성경에 쓰인대로 느끼고 판단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이기면 좋았습니다. 백퍼센트 성경 저자 (=하나님)의 편이 되어 읽었습니다. 요즘에는 성경이 ‘불편한 진실’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과 성경 속의 세상이 조화롭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싶어서 세상을 따르기도 하고, 세상과 맞추기도 합니다. 세상에 속고 다칠 때엔 세상에 등 돌리고 성경을 펼칩니다. 성경 안에 꼭 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 비결이 있을 것 같고, 하나님의 뜻이 눈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아니지요. 성경 안에도 이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이, 어떨 땐 더 심한 현실이 펼쳐집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은 미완성입니다. 헤렘도 미완결입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은, 해 아래 완전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 만 사는 존재입니다. 이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다음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아 헤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행복의 조건을 채워 주시지 않아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행복의 조건을 넘어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행복이 아니라 주님입니다.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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