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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건너가서, 립나와 싸웠다. 주님께서 립나도 그 왕과 함께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칼로 그 성과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무찔러서, 그 안에 산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의 왕에게 한 것과 같이 립나의 왕도 무찔렀다. 또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건너가서,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다. 주님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 사람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그 이튿날 이스라엘은 그 성을 점령하였고, 립나에서 한 것과 꼭 같이, 칼로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무찔렀다. 그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왔다. 여호수아는 그 왕과 그 백성을, 살아 남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무찔렀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건너가서,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그 날 그 성을 점령하고, 칼로 그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무찌르고, 라기스에서 한 것과 꼭 같이, 그들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쳐올라가서, 그들과 맞서서 전투를 벌였다. 그들이 그 성을 점령하고, 에글론에서와 꼭 같이, 그 왕과 온 성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고 칼로 무찔렀다. 그들은 그 성과 그 성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드빌로 돌아와서, 전투를 벌였다. 그는 그 성과 왕과 그의 모든 성읍들을 점령하고, 칼로 쳐서,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으며,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 그는 헤브론과 립나와 그 왕에게 한 것과 꼭 같이 드빌과 그 왕을 무찔렀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온 땅 곧 산간지방과 네겝 지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들의 모든 왕을 무찔러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명을 따라, 살아서 숨쉬는 것은 모두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또한 여호수아는 가데스바네아에서 가사까지, 그리고 온 고센 땅뿐만 아니라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찔렀다. 주 이스라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싸우셨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단번에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손에 넣었다. 여호수아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더불어 길갈에 있는 진으로 돌아왔다.
해설:
막게다를 점령한 후, 여호수아는 동맹을 맺어 기브온을 공격했던 왕들의 성들을 차례로 공격한다. 그는 먼저 립나로 가서 성을 점령하고 왕과 모든 주민을 전멸시킨다(29-30절). 이어서 라기스 성(31-33절), 에글론 성(34-35절), 헤브론 성(36-37절) 그리고 드빌 성(38-39절)을 차례로 점령하고 왕과 주민을 전멸시킨다. 저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전멸시켜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40절에서 저자(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의 대부분을 점령했고,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는 가나안 남부 지역까지 점령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싸워 주셨기 때문”(42절)이었다. 긴 원정 끝에 여호수아는 길갈에 있는 진으로 돌아온다(43절).
기록 상으로만 보면, 짧은 시간 안에 가나안의 여러 성읍들을 점령했고,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년에 걸친 전쟁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중간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저자(들)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신실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묵상: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호수아기를 비롯한 구약의 역사 기록은 “고백적 역사”입니다. 현대 실증주의 역사가들처럼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신실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성을 점령할 때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전멸시켜 희생제물로 바쳤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 이유도 같은 의미입니다. 전술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민족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연전연패 해야 할 그들이 연전연승을 이어갔습니다.
여호수아기가 기록될 즈음 유대인들은 소수자들로서 이민족들 사이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국가적으로 다시 회복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에 살던 흑인 노예들의 상황보다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유대인들에게 여호수아의 압도적 승리의 이야기는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유대인들이 구약의 역사 이야기를 탐독하여 읽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근본주의적인 유대인들이 여호수아기를 전범으로 삼아 이스라엘 땅에 사는 모든 비유대인들을 제거하려 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읽고 적용하는 가장 나쁜 예입니다. 기독교 국가주의(Christian Nationalism)를 신봉하는 백인들이 이 땅에서 다른 인종들을 몰아내겠다는 목적으로 민병대를 모아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습니다. 그들도 여호수아의 ‘헤렘’ 전쟁을 모델로 삼습니다.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쟁 이야기를 쓴 이유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절: 40절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온 땅 곧 산간지방과 네겝 지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들의 모든 왕을 무찔러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명을 따라, 살아서 숨쉬는 것은 모두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기도: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인종 청소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거룩한 전쟁”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에 저희도 분노하는데, 주님은 얼마나 더 그러시겠습니까? 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이들을 제어하여 주십시오. 저희를 도우셔서 누구를 만나든 주님의 형상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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