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를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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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개월 동안 여호수아기를 읽고 묵상해 왔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부름받고 요단 강을 건너는 이야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로 이어지는 정복 전쟁 이야기들은 자주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특별히, 정복한 성읍의 주민과 가축을 모두 죽여 없앴다는 기록(헤렘 전쟁)을 읽을 때면, “왜 이래야만 했는가?” 하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한시적인 명령이었고, 후대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문학적 장치라고 해도, 여전히 질문은 남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저는 앞에서 나름대로 설명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의문이 개운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의문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믿습니다, 아멘” 하고 넘어가는 것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혹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혹은 “하나님은 왜 이렇게 명령하셨을까?” 하고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마주치는 질문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씨름했고, 여러 종류의 답이 나와 있습니다. AI를 사용하면,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결론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신뢰할 만한 학자들의 의견을 읽고 나서,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질문이 생겨날 때, 언제나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겨 두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지나다 보면 나중에 답을 얻을 수도 있고, 영영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입니다. 성경의 세계는 시간적으로 우리와 너무 멀고, 공간적으로 우리와 너무 낯섭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세계입니다. 우리의 이 작은 머리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교만입니다.

여호수아기는 창세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백 년이 넘는 대하 서사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세겜에 이르렀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창 12:7)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약속은 길고 긴 우회로를 거쳐 결국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오경’이 아니라 ‘육경’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야곱이 식솔을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갈 때 그 약속은 영영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야곱의 식솔들을 한 민족으로 키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사백여 년 후에 주님은 모세를 불러내어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꺼내셨고,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 중 일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질 차례입니다.

여호수아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주목할 대상은 창세기로부터 여호수아기에 이르는 거대 서사의 흐름입니다. 헤렘 전쟁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가는 거대 서사를 보지 못하는 것은 큰 어리석음입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여호수아가 유언처럼 남긴 고별 설교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뜻을 세우시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약속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때로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도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

여호수아기를 다 읽고 묵상하도록 저희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험한 산길을 완주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험한 길도 있었고, 메마른 길도 있었지만,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이제 눈을 감고 지나온 길을 회상해 봅니다. 창세기로부터 이어진 길고 긴 역사를 통해 주님은 결국 약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저희가 신뢰하고 의지하는 주님이 그런 분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설렙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남겨진 약속이 실현될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주님께 저희의 삶을 의탁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2. billkim9707 Avatar
    billkim9707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헤렘 전쟁사를 읽을때 혼동이 옵니다, 이방인들의 우상과 문화를 전멸하라고 이해하며 읽어왔으나 아직도 석연치 않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님이 나를 아시는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말씀을 읊조리고 있습니다.

    어찌했던 주님은 사랑이시고 모든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 하시는 전지전능의 창조주 하나님 이신것을 믿습니다, 예! 믿습니다. 때가 되면 온전히 알수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아멘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토요일 아침입니다. 어제 저녁에 이번 주의 업무 과제를 완결할 수 있었네요.

    아침에 “사귐의 소리”를 받아보니 정해진 본문 없이 여호수아기를 읽고 난 전체적인 목사님의 소회가 묵상으로 실려있습니다. 헤렘 (진멸)으로 점철된 전반, 외계의 토지대장을 읽는 듯 했던 후반부. “이래서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일어났던 좀 힘든 묵상의 여정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 아침 목사님의 묵상이 주목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 그 성취가 달성되는데 걸렸던 그토록 긴 크로노스의 시간, 그러나 약속의 말씀이 그 즉시 성취의 선포인 카이로스 차원 등을 되새김해 봅니다.

    제게는 세겜(샤캄)으로 모든 의미의 길들이 모아지는 엔딩이 마음에 가장 크게 남습니다. 북쪽 에발산 (=저주)과 남쪽의 기리심산 (=축복) 사이에 있는 중간 지점 세겜. 그것이 우리의 인생일까요?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던 자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지어졌지만 아직 하나님의 온전하신 거룩, 그의 안식에 들지 못한 존재, 천국의 순례자. 그의 여행은 에발산에서 시작되고 그리심산을 향해가는 여행의 현주소가 바로 여기, 세겜이라할지요.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지친 여행자의 삶에 안식의 쉼표를 허락하셔서 감사. 에벤에셀, 이 자격없는 자에게 베푸신 그 도움과 축복의 풍요함을 찬양. 신실하신 이. 약속을 지키시는 분. 그가 허락하신 땅의 분깃을 에덴으로 가꾸며, 그의 말씀을 좇아 좁고 험한 길, 그 생명의 길, 사랑의 길, 공의의 길을 걷는 나날. 그런 인생이 되기를. 이 순례의 여정이 끝나고 그리심산에 이르기까지.

  4. Young j kim Avatar
    Young j kim

    여호수아기를 묵상하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유언처럼 남겼던 경고의 말씀(여호수아 24:19-20)과,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기도한 후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의 사건(출애굽기 32장)이 깊이 비교됩니다. 당시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모습에 거룩한 분노가 폭발한 모세는 돌판을 던졌고, 우상을 파괴하여 그 가루를 마시게 했으며, 레위 지파를 통해 3,000명을 처단함으로 죄를 청산하고 거룩함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주님, 이처럼 광대하시고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마음과 그 하실 일을 먼지에 불과한 저희가 어찌 다 알 수 있으며, 끊임없는 죄성 속에서 어떻게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는 오직 저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말씀) 안에서 성령님과 함께 동행(기도)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오늘도 저희와 동행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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