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본문:
(전략)
므낫세 지파가 벳산과 그 주변 마을들과, 다아낙과 그 주변 마을들과, 돌과 그 주변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주변 마을들과, 므깃도와 그 주변 마을들에 사는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강성해진 다음에도 가나안 사람을 모조리 몰아내지 않고,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았다.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아직도 게셀에서 그들 가운데 섞여 살고 있다. 스불론 지파가 기드론의 주민과 나할롤의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살면서 부역꾼이 되었다. 아셀 지파는 악고의 주민과 시돈의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벡과 르홉의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다. 아셀 지파가 그 땅의 주민인 가나안 사람과 섞여 산 까닭은,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납달리 지파는 벳세메스 주민과 벳아낫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인 가나안 사람과 섞여 살면서, 벳세메스와 벳아낫 주민을 부역꾼으로 삼았다. 아모리 사람은 단 지파 자손을 힘으로 산간지방에 몰아넣어, 낮은 지대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아모리 사람은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살기로 마음을 굳혔으나, 요셉 가문이 강성하여지니, 그들은 요셉 가문의 부역꾼이 되었다. 아모리 사람의 경계선은 아그랍빔 비탈에 있는 바위에서부터 그 위쪽이다. (27-36절)
해설:
“요셉 집안”(22절)은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를 말한다. 저자(들)은 요셉 집안이 베델을 점령한 경위를 기록한다(22-26절). 므낫세 지파는 여러 성읍을 점령했지만 주민들을 다 몰아내지 못했고,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는 것에 만족했다(27-28절). 에브라임 지파도 게셀을 점령했지만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여 섞여 살게 되었다(29절).
스불론 지파는 기드론과 나할롤을 점령했지만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여 섞여 살며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는 것에 만족하였다(30절). 아셀 지파도 가나안 민족과 섞여 살았고(31-32절), 납달리 지파도 마찬가지였다(33절). 심지어 단 지파는 아모리 사람들에게 밀려서 산간지방에 모여 살아야 했다(34절). 나중에 요셉 가문(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이 강성해진 후에야 아모리 사람들을 제압하여 부역꾼으로 삼았다(35-36절).
1장의 기록에서 저자(들)은 여호수아가 이끌었던 정복 전쟁과 그의 사후에 지속되었던 정복 전쟁 사이에 매우 뚜렷한 차이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을 따라 ‘헤렘 전쟁’을 수행했으나, 그 이후에는 어느 지파도, 어느 지도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럴 힘이 없어서 그랬으나, 나중에 힘을 키우고 나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어지는 사사기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묵상:
오늘날의 감수성으로 보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죽이는 ‘헤렘 전쟁’은 잔인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정당전쟁이론’(Just War Theory, 정당한 이유 때문에 정당한 방식으로 행하는 전쟁은 정당하다는 이론)으로 보더라도 ‘헤렘 전쟁’은 정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기 위해 일회적으로 허락된 예외적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백성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고, 제사장 나라를 세우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사사기 이후로 이스라엘은 그런 방식의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극약처방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루어진 정복 전쟁에 대해 기록하면서 “철저하지 못함”을 강조합니다. 처음에는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에서 모든 부족이 연합한 과거와 달리 이제는 부족들이 각개 전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나중에는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충분히 강해진 다음에도 이민족들을 몰아내지 않았습니다. 저자(들)은 “섞여 살았다”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철저하지 못함”이 어떤 불행을 초래할 지에 대해 암시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대한 좋은 메타포입니다. 루터는 죄악을 뱀에 비유했습니다. 뱀은 머리만 집어 넣으면 온 몸을 집어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처럼 죄악은 ‘머리만 넣게 해 줘’라고 속삭이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죄악은 우리의 존재 안에 머리를 집어 넣고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몸 전체를 끌어 들입니다.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것과 같습니다. 중독자들 중에 중독을 결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 결국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개역개정, 살전 5:22)고 했습니다. 죄악에 대해서는 ‘이 정도야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난다는 생각이 있다면 단호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지어질 것입니다.
기도:
주님께서는 저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셨습니다. 저희를 도우셔서 이 거룩한 신분에 맞지 않는 일들을 분별하게 하시고 버리게 하시고 싫어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를 지성소에 세우셨으니, 늘 거룩함을 따라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