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장 22-36절: 철저하지 못함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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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략)

므낫세 지파가 벳산과 그 주변 마을들과, 다아낙과 그 주변 마을들과, 돌과 그 주변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주변 마을들과, 므깃도와 그 주변 마을들에 사는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강성해진 다음에도 가나안 사람을 모조리 몰아내지 않고,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았다.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아직도 게셀에서 그들 가운데 섞여 살고 있다. 스불론 지파가 기드론의 주민과 나할롤의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살면서 부역꾼이 되었다. 아셀 지파는 악고의 주민과 시돈의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벡과 르홉의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다. 아셀 지파가 그 땅의 주민인 가나안 사람과 섞여 산 까닭은,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납달리 지파는 벳세메스 주민과 벳아낫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인 가나안 사람과 섞여 살면서, 벳세메스와 벳아낫 주민을 부역꾼으로 삼았다. 아모리 사람은 단 지파 자손을 힘으로 산간지방에 몰아넣어, 낮은 지대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아모리 사람은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살기로 마음을 굳혔으나, 요셉 가문이 강성하여지니, 그들은 요셉 가문의 부역꾼이 되었다. 아모리 사람의 경계선은 아그랍빔 비탈에 있는 바위에서부터 그 위쪽이다. (27-36절)

해설:

“요셉 집안”(22절)은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를 말한다. 저자(들)은 요셉 집안이 베델을 점령한 경위를 기록한다(22-26절). 므낫세 지파는 여러 성읍을 점령했지만 주민들을 다 몰아내지 못했고,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는 것에 만족했다(27-28절). 에브라임 지파도 게셀을 점령했지만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여 섞여 살게 되었다(29절).

스불론 지파는 기드론과 나할롤을 점령했지만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여 섞여 살며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는 것에 만족하였다(30절). 아셀 지파도 가나안 민족과 섞여 살았고(31-32절), 납달리 지파도 마찬가지였다(33절). 심지어 단 지파는 아모리 사람들에게 밀려서 산간지방에 모여 살아야 했다(34절). 나중에 요셉 가문(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이 강성해진 후에야 아모리 사람들을 제압하여 부역꾼으로 삼았다(35-36절).

1장의 기록에서 저자(들)은 여호수아가 이끌었던 정복 전쟁과 그의 사후에 지속되었던 정복 전쟁 사이에 매우 뚜렷한 차이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을 따라 ‘헤렘 전쟁’을 수행했으나, 그 이후에는 어느 지파도, 어느 지도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럴 힘이 없어서 그랬으나, 나중에 힘을 키우고 나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어지는 사사기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묵상:

오늘날의 감수성으로 보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죽이는 ‘헤렘 전쟁’은 잔인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정당전쟁이론’(Just War Theory, 정당한 이유 때문에 정당한 방식으로 행하는 전쟁은 정당하다는 이론)으로 보더라도 ‘헤렘 전쟁’은 정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기 위해 일회적으로 허락된 예외적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백성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고, 제사장 나라를 세우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사사기 이후로 이스라엘은 그런 방식의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극약처방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루어진 정복 전쟁에 대해 기록하면서 “철저하지 못함”을 강조합니다. 처음에는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에서 모든 부족이 연합한 과거와 달리 이제는 부족들이 각개 전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나중에는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충분히 강해진 다음에도 이민족들을 몰아내지 않았습니다. 저자(들)은 “섞여 살았다”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철저하지 못함”이 어떤 불행을 초래할 지에 대해 암시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대한 좋은 메타포입니다. 루터는 죄악을 뱀에 비유했습니다. 뱀은 머리만 집어 넣으면 온 몸을 집어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처럼 죄악은 ‘머리만 넣게 해 줘’라고 속삭이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죄악은 우리의 존재 안에 머리를 집어 넣고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몸 전체를 끌어 들입니다.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것과 같습니다. 중독자들 중에 중독을 결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 결국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개역개정, 살전 5:22)고 했습니다. 죄악에 대해서는 ‘이 정도야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난다는 생각이 있다면 단호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지어질 것입니다.

기도:

주님께서는 저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셨습니다. 저희를 도우셔서 이 거룩한 신분에 맞지 않는 일들을 분별하게 하시고 버리게 하시고 싫어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를 지성소에 세우셨으니, 늘 거룩함을 따라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5 responses

  1. Young j kim Avatar
    Young j kim

    부족하고 연약한 저희들을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으로 지금까지 자녀 삼아 살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는 악을 온전히 분별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과 지혜를 허락하사, 남은 여생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billkim9707 Avatar
    billkim9707

    주님이 거룩하니 주님의 자녀들이 저희들도 거룩 하여야 하는데 온전히 깨끗하지 못한 형편입니다, 지금는 이세상에 사는동안 샘물 같은 보혈로 항상 싰어야 합니다만 그때는 온전히 깨끗해질때가 올줄로 믿습니다. 마라나타, 주님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멘.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고 바깥 공기는 쌀쌀하지만 햇볕이 아주 잘 드는 아침, 수요일입니다.

    주아진 본문(삿1:22-36)을 읽습니다. 가나안 남은 땅들의 정복을 위한 작은 전쟁들. 벧엘 (또는 루스) 이외의 다른 성읍은 모두 미완의 정복으로 끝납니다. 그 결과는 가나안 족속과의 공존. 현대 독자의 시각으로 보면 가장 납득할만한 결과인 “공존”을 성경 기자들은 실패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가나안 족속과의 공존은 유지하면서도 “혼합”을 피하는 방법. 그래서 야훼 (YHWH) 신앙의 본질을 오염없게 유지할 묘수는 없었을지요.

    세상 속에서 세상의 원리와 규칙대로 살고 있는 우리. 어떻게 하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따를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은 할까요?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업무가 폭풍처럼 몰아쳤던 지난 몇 주. 오랜만에 조용한 pause의 시간을 누리네요. 몸도 부쩍 회복되서 간 밤에는 모처럼 부대낌 없이 잠을 잤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호흡을 넣어주시는 이. 생명의 축복과 더불어 사명을 주시는 분께 경배.

    세상 안에서 살지만 세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죄의 중력을 거슬러 저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매일이 되었으면. “주여,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안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길. 그 차이를 아는 지혜도”(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that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I can, and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Prayer of Serenity).

  4. Eun Young Kim Avatar
    Eun Young Kim

    주님! 저의삶에서 이정도는 괜찮겠지..하는 세상과 타협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악한부분을 깨닫게 해주시고 결단하고 끊어내어 진정한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도록 저를 더욱 새롭게 하소서 !

  5.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헤렘 전쟁은 완결성과 배타성이 특징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의 두 아들 지파 뿐 아니라 스불론, 아셀, 납달리 지파들도 가나안의 선주민들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한 채 노예로 삼아 함께 살았습니다. 일종의 협상 같이 보이는 이 상황이 현대인의 눈에는 무리가 없어 보이나 아브라함-모세-여호수아로 이어지는 언약의 주제를 배경에 두고 보면 백성의 약속 불이행입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계약으로 보는게 좀 불편하지만, 언약 신학의 정의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 covenant 을 중심으로 성경의 흐름을 체계화하는 신학’입니다. 언약 신학의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1)구속 언약: 창세 전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맺은 구원의 계획과 예정의 약속 2)행위 언약: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으로 순종하면 영생을 얻고 불순종하면 사망에 이르는 조건적인 성격의 약속 3)은혜 언약: 타락 후에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과 맺은 언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먼저 세우시는 일방향적 unilateral 성격을 갖지만 인간에게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는 양방향적 bilateral 사건이기도 합니다. (AI 의 도움을 받아 정리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보는가.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보는가. 하나님은 나의 부모인가, 친구인가, 심판관인가, 마술사인가…구약에는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장면이 여러번 나옵니다. 엄격하게 보면 모든 약속에는 거래가 따릅니다. 다만, 거래에는 조건과 대가가 명시적이며 물건이나 이익을 교환한다는 점에서 거래의 도덕성은 법적인 조항과 조건이 결정합니다. 반면에 약속은 신뢰와 책임을 기반으로하는 자발적인 구속입니다. 이익이 아니라 관계가 중심에 있습니다. 관계는 도덕이나 거래를 초월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거래란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내놓을 거래의 조건이나 대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인간과 거래를 합니까. 그러니 언약은 그런 의미에서 일방적입니다. ‘하나님 마음대로’하는 언약이어서가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이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선 지킬 수 없는 언약 (여호수아가 말한대로 백성은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수도 있는)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그분의 성실하심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점’입니다. 지파들은 벌써부터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정복되어 이 땅에서 사라졌어야 할 가나안의 땅과 부족 이름이 나옵니다. 앞으로 300년 넘게 치뤄야 할 전쟁의 예고편처럼 읽힙니다. 사사기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백성을 일으켜 세우는 사신들의 이야기입니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수퍼맨…마블만화 우주계의 히로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존재합니다.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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