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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가나안 전쟁을 전혀 겪어 본 일이 없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시려고, 주님께서 그 땅에 남겨 두신 민족들이 있다. 전에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들에게,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 알게 하여 주려고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이다. 그들은 바로 블레셋의 다섯 통치자와 가나안 사람 모두와 시돈 사람과 히위 사람이다. 히위 사람은 바알헤르몬 산으로부터 저 멀리 하맛 어귀에까지 이르는 레바논 산에 사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과연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조상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알아보시려고 이런 민족들을 남겨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함께 섞여 살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 여러 민족의 딸을 데려다가 자기들의 아내로 삼았고, 또 자기들의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의 신들을 섬겼다.
해설:
1장에서 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백성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이방 민족들과 섞여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섞여 살게 된 잘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렸다. 이방 민족들을 완전히 몰아낼 능력도, 의지도 그들에게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2장에서 저자(들)은, 이방 민족들과 섞여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을 남겨놓은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가나안 전쟁을 전혀 겪어 본 일이 없는”(1절) 새로운 세대를 “시험하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 시험은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진다. 첫째는 “전쟁이 무엇인지 가려쳐 알게”(2절) 하는 것이다. 전쟁 방법을 가르치려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전쟁을 겪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전쟁은 고난과 역경에 대한 비유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고난과 역경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조상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알아보시려고”(4절) 이방 민족들을 남겨두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시험에 보기 좋게 낙방했다. 그들은 여러 민족의 딸들과 통혼을 했고, 그로 인해 우상 숭배가 깊어졌다(6절).
묵상: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이방 민족들을 섞여 살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사사기 1장에서는 그 책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명령했고 여호수아가 행했던 것처럼 이방 민족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무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능력이 생겼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사사기 2장과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새로 태어난 전후 세대를 시험하기 위해 이방 민족을 남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이 앞에서 한 말을 망각하고 다른 소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두 각도에서 보고 서술한 것입니다. 순전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1장의 서술이 맞습니다. 이방 민족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무능력 때문이었고 의지 없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 존재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 안에서 인간은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어떤 행동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배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의와 악의, 선행과 악행을 모두 사용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바로의 완고함을 사용하여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신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행한 악행의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선택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강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끝내 죄악을 선택할 때 하나님은 내버려두십니다. 그 결정에 그를 내어주어 그 스스로 깨닫고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이, 너무도 자주, 우리는 주어진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습니다. 그것이 가나안 정착 세대가 선택한 불행이었습니다.
기도:
저희에게 주신 자유 의지를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리고, 오롯이 주님 손에 사로잡혀 살고 싶습니다. 저희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셔서, 저희의 선택과 결정이 주님의 뜻에 언제나 합치하게 해주십시오. 주님 손에 들린 공처럼, 주님 손에 잡힌 인형처럼, 그렇게 온전히 하나되어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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