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3장 7-31절: 화가 된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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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략)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들이 이렇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모압 왕 에글론을 강적이 되게 하여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셨다. 에글론은 암몬 자손과 아말렉 자손을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를 점령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모압 왕 에글론을 섬겼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으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가 곧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인 왼손잡이 에훗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에훗을 시켜,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보냈다. 그러자 에훗은 길이가 한 자쯤 되는 양쪽에 날이 선 칼을 만들어서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모압 왕 에글론에게 가서 조공을 바쳤다. 에글론은 살이 많이 찐 사람이었다. 에훗은 조공을 바친 뒤에, 그 조공을 메고 온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에훗 자신은 길갈 근처 돌 우상들이 있는 곳에서 되돌아와, 에글론에게 “임금님, 제가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왕이, 모시고 섰던 부하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모두 물러갔다. 에훗이 왕에게 다가섰을 때에, 마침 왕은 시원한 그의 집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에훗이 “임금님께 전하여 드릴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니, 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에 에훗은 왼손으로 오른쪽 허벅지에서 칼을 뽑아 왕의 배를 찔렀다. 칼자루까지도 칼날을 따라 들어가서 칼 끝이 등 뒤로 나왔다. 에훗이 그 칼을 빼내지 않았으므로, 기름기가 칼에 엉겨 붙었다. 에훗은 현관으로 나가, 뒤에서 다락방 문을 닫고 걸어 잠갔다. 에훗이 나간 뒤에, 그의 부하들이 와서 다락방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왕이 그 시원한 다락방에서 용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다려도 왕이 끝내 다락방 문을 열지 않으므로, 열쇠를 가져다가 문을 열고 보니, 왕이 죽은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은 몸을 피하여, 돌 우상들이 있는 곳을 지나서 스이라로 도망쳤다. 그가 그 곳에 이르러 에브라임 산간지방에서 소집 나팔을 불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따라 산간지방에서 쳐내려갔다. 에훗이 그들을 앞장섰다. “나를 따라라! 주님께서 너희 원수 모압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다.” 그가 이렇게 외치자, 그들이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으로 가는 요단 강 나루를 점령하고 한 사람도 건너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에 그들이 쳐죽인 건장하고 용맹스러운 모압 군인의 수는 모두 만 명이나 되었는데, 한 사람도 도망치지 못하였다. 그 날 모압은 굴복하여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그 뒤로 그 땅에는 팔십 년 동안 전쟁이 없이 평온하였다. 에훗 다음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가 되었다.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만으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쳐죽여 이스라엘을 구하였다.

해설:

첫 번째 사사로 세움 받은 사람은 갈렙의 사위인 옷니엘이다(7-11절). 옷니엘이 갈렙의 사위가 된 경위는 여호수아기 15장 13-19절과 사사기 1장 11-15절에 나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고 그로 인해 8년 동안 메소포타미아 왕에게 지배 당했다. 그들이 고난 중에 “울부짖으니”(9절) 하나님은 옷니엘에게 “주님의 영”(10절)을 부으셔서 메소포타미아 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 내신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사십 년 동안 전쟁 없는 시대를 지낸다.

전쟁 없는 사십 년 동안 새로 태어난 사람들은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는” 세대가 된다. 그들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해이해졌고, 그로 인해 모압에게 지배 당한다. 모압 왕 에글론이 암몬 자손과 아말렉 자손을 끌어들여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다(12-13절). 이스라엘은 십팔 년 동안 에글론 왕을 섬겼다(14절). ‘에글론’은 “작은 송아지”라는 의미이고, “섬기다”는 “경배하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에글론을 섬겼다”는 말은 조상들이 시내 산에서 황금 송아지를 섬긴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에글론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울부짖으니”(15절) 주님께서는 베냐민 지파의 에훗을 사사로 세우신다. 저자(들)은 그가 왼손잡이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야구에서 좌완 투수가 비밀 병기인 것처럼, 오른손잡이의 세상에서 왼손잡이 전사도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글론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일을 에훗에게 맡겼다.

어느 날, 에훗은 오른쪽 허벅지에 양날 칼을 숨기고 조공단을 이끌고 에훗 왕에게 갔다(16절). 에글론 왕은 살이 피둥피둥 찐 사람이었다(17절). 왼손잡이 전사를 당해낼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에훗은 길갈 근처에서 조공단을 돌려보내고 홀로 에글론 왕에게 돌아와 독대를 청했다(18-19절). 일대일로 마주했을 때, 에훗은 숨겨온 양날칼로 에글론을 찔렀고, 칼은 그의 배를 관통했다(20-22절). 에훗은 시간을 벌기 위해 다락방의 문을 걸어잠그고, 돌아가 군대를 소집하여 요단 강 나루를 점령하고, 모압 군사를 전멸시켰다(23-29절). 그 뒤로 팔십 년 동안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렸다(30절).

그 후에는 삼갈이 사사로 다스렸다(31절).

묵상:

3장은 적어도 150년 동안의 역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 요약문에서 반복되는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는”이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 울부짖으니”라는 표현입니다.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다”는 말은 고난을 겪어 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전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난 없는 인생을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평화를 타락의 기회로 삼습니다. 평안과 번영이 오래 지속될 때 타락하지 않을 사람을 별로 없습니다. 누구나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해집니다.

그럴 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울부짖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고난은 오히려 유익이 됩니다. 주님을 “겪어 아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고난은 우리를 연단하고 정화하는 통로가 됩니다. 반면, 고난 중에도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주님께 돌아서지 않는 사람에게 고난은 파멸의 길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의 고난을 허비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절대 다수는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절감할 정도의 심한 고난을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세대가 하나님을 떠나고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의 길을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닙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담한 고난을 당하여 구해 달라고 울부짖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저희가 누리는 평안이, 저희가 추구하는 풍요가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다 얻고도 주님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인데, 저희는 가지고 누리는 것이 너무 많아 주님을 가장자리로 밀어 놓고 삽니다. 오, 주님, 이 죄를 자각하고 부르짖어 회개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이 주신 축복이 화의 근원이 되지 않도록, 저희를 깨어있게 해주십시오. 아멘.

10 responses

  1. billkim9707 Avatar
    billkim9707

    환란과 고난이 가장한 축복인 경우가 많은것을 깨닫습니다, 젊었을때 가난과 어려움이 저에게 축복 이었던것을 60년넘게 지나서야 깨닫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르는 사이에 어려움을 피할려는 모습을 봅니다. 어려움을 피하지말고 감사히 받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십자가의 주님을 항상 기억 하면서,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2. Young j kim Avatar
    Young j kim

    땀과 지혜, 능력을 동반한 훈련 없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씀 묵상과 기도 없이 우상의 유혹을 따르며 살아간다면 하나님 없이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온 세상이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욕심에 눈이 멀어 탈취와 폭력, 온갖 부패와 침략이 난무하는 말세지말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는 각박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유일한 살 길은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삶뿐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모두가 날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로 주님의 완전한 보호 아래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하늘은 푸르게 맑지만 승강장에는 쌀쌀한 바람이 일렁이는 아침, 화요일입니다.

    성경(삿3:7-31) 본문을 읽습니다. 첫 사사인 옷니엘, 그리고 에훗의 이야기. 한 사람은 메소포터미아, 다른 사람은 모압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옛날 이야기나 재미있는 영웅민담처럼 부담없이 읽혀 내려집니다. 묵상 꼭지를 잡기는 쉽지 않네요.

    목사님의 제안을 따라 평화(별탈이 없는 상태의 유지)의 표피 아래 감춰진 영적 위험(하나님을 잊어버림)을 생각해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자기 기업을 갖게된 사람들. 평화와 무탈의 시기 속에서 이스라엘은 택하신 족속,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점점 잃게 되는 듯. 그 희석의 바로미터는 여호와와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혼합주의였겠지요. 저는 과연 다른지.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며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가짜. 그게 혹시 제 이야기는 아닌지.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밤에는 잠을 잘 잤고 불편했던 몸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오늘도 출근할 일터가 있어서 감사. 일상이 흔들리지 않고 있어서 감사. 별일이 없을 때에 무탈할 때에 더 큰 두려움과 딸림으로 주의 엄위하심과 자비를 기억하게 하시길. 말씀을 늘 듣고 묵상하며 그 찔림 앞에 영혼을 정직히 내놓고 부르짖고, 갱신하며, 마음의 할례를 받는 나날. 그것이 나의 인생이 되었으면.

  4. Eun Young Kim Avatar
    Eun Young Kim

    이스라엘백성이 풍요속에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의 풍요와 안락함을 좆아사는모습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혼나고 하는 반복적인 모습을 보며 그런삶의 모습이 그들만이 아니라 나의 모습인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누리는 모든 풍요가 당연한거 아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비젼과 마음으로 살게하옵시고 전쟁과 같은 참담한 고난을 겪지 않도록..또한 세상의 안락함에서 깨어서 살기원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님!!!

  5.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사사 에훗의 맹활약 스토리를 읽습니다. 소설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이 있습니다. 에글론 왕은 비만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뒤뚱거리며 걸을 것 같이 상상이 됩니다. 반면에 에훗은 보기보다 힘이 세고 날렵하기도 했을 것 같이 그려집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왕 에글론 치하에서 십팔년 동안 고생했다는 기록은 하나님을 등진 죄의 값을 단단히 치뤘다는 말로 들립니다. 같은 고생이어도 잘못한 댓가를 치루느라 겪는 고생이 있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감당하는 고생이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을 훈련할 때 잘 쓰는 표현으로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대로 먹고, 쉬고 싶은대로 쉬면서는 이루고자 하는 바를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결정이나 무절제한 행동의 결과가 고통으로 되돌아 오는 일도 있습니다. 반드시 값을 치뤄야 하는 겁니다. 에글론의 뱃살이 늘어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등은 휘었을 것입니다. 에글론의 배에 기름이 쌓이는 동안 백성은 고프고 주려서 허리가 등에 붙었을 지 모릅니다. 백성이 당한 고난은 불의에 잠식당한 정의가 아니라, 혈기와 정욕이 앞당겨 쓴 빚의 독촉장이었을 것입니다. 백성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죄를 회개하며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죄의 값을 치루느라 받는 고통이지만 주님은 백성의 신음소리를 흘려 듣지 않습니다. 구해주십니다. 에훗을 통해 모압의 독주에 쐐기를 박고, 모압의 손아귀에서 백성을 건져주십니다. 그렇게 80년을 어려움 없이 살게 하십니다. 한국에 와서 묵는 집이 지난 봄에 묵었던 교회 후배의 집입니다. 다음 주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후배네서 묵기로 했는데 나중에 미국에 가져 갈 물건들 이야기를 하다 벌써부터 주문하지 말고 출국 며칠 전에 주문해도 될 거라는 의논을 했습니다. 나중에 주문하는거를 ‘잊지말자’고 하다가, 동시에 모두 ‘잊지말자 6.25!’ 구호를 외쳤습니다.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정말 많이 보고 듣던 구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전혀 모를 이야기지요. 설령 안다고 해도 구호의 의미도, 배경도, 우리 같지 않을겁니다. 모압의 압제에서 풀려나 모압을 부리는 평화의 시대로 들어간 이스라엘도 ‘잊지말자 모압!’ ‘잊지말자 에글론!’ 구호를 외쳤을 지 모릅니다.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지 모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다짐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건져주면 한동안 똑바로 가다가 다시 또 곁길로 빠지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 도와주시고 또 살려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사기에선 무엇이 화이고 복인지 알 수 없습니다. 먹고 살 수 없다 해서 돈을 빌려주면 그 돈으로 뭔가를 해보려 하지 않고 쓸 데 없는 곳에 다 낭비하고 또 손을 벌리는 딱한 친척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손을 벌리고 또 벌립니다. 우리는 이럴 때 도와주는게 맞는지, 냉담하게 돌려 보내야 정신을 차리겠는지 고민하지만, 하나님은 계속 건져주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계속 복을 주시는데 복을 복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화로 만드는건 인간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안일함이 복을 변질 시킵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깨어 있어야 할 일입니다. 주님, 이것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신 복을,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잊지말자 주님입니다.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6.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사사 에훗의 맹활약 스토리를 읽습니다. 소설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이 있습니다. 에글론 왕은 비만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뒤뚱거리며 걸을 것 같이 상상이 됩니다. 반면에 에훗은 보기보다 힘이 세고 날렵하기도 했을 것 같이 그려집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왕 에글론 치하에서 십팔년 동안 고생했다는 기록은 하나님을 등진 죄의 값을 단단히 치뤘다는 말로 들립니다. 같은 고생이어도 잘못한 댓가를 치루느라 겪는 고생이 있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감당하는 고생이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을 훈련할 때 잘 쓰는 표현으로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대로 먹고, 쉬고 싶은대로 쉬면서는 이루고자 하는 바를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결정이나 무절제한 행동의 결과가 고통으로 되돌아 오는 일도 있습니다. 반드시 값을 치뤄야 하는 겁니다. 에글론의 뱃살이 늘어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등은 휘었을 것입니다. 에글론의 배에 기름이 쌓이는 동안 백성은 고프고 주려서 허리가 등에 붙었을 지 모릅니다. 백성이 당한 고난은 불의에 잠식당한 정의가 아니라, 혈기와 정욕이 앞당겨 쓴 빚의 독촉장이었을 것입니다. 백성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죄를 회개하며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죄의 값을 치루느라 받는 고통이지만 주님은 백성의 신음소리를 흘려 듣지 않습니다. 구해주십니다. 에훗을 통해 모압의 독주에 쐐기를 박고, 모압의 손아귀에서 백성을 건져주십니다. 그렇게 80년을 어려움 없이 살게 하십니다. 한국에 와서 묵는 집이 지난 봄에 묵었던 교회 후배의 집입니다. 다음 주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후배네서 묵기로 했는데 나중에 미국에 가져 갈 물건들 이야기를 하다 벌써부터 주문하지 말고 출국 며칠 전에 주문해도 될 거라는 의논을 했습니다. 나중에 주문하는거를 ‘잊지말자’고 하다가, 동시에 모두 ‘잊지말자 6.25!’ 구호를 외쳤습니다.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정말 많이 보고 듣던 구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전혀 모를 이야기지요. 설령 안다고 해도 구호의 의미도, 배경도, 우리 같지 않을겁니다. 모압의 압제에서 풀려나 모압을 부리는 평화의 시대로 들어간 이스라엘도 ‘잊지말자 모압!’ ‘잊지말자 에글론!’ 구호를 외쳤을 지 모릅니다.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지 모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다짐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건져주면 한동안 똑바로 가다가 다시 또 곁길로 빠지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 도와주시고 또 살려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사기에선 무엇이 화이고 복인지 알 수 없습니다. 먹고 살 수 없다 해서 돈을 빌려주면 그 돈으로 뭔가를 해보려 하지 않고 쓸 데 없는 곳에 다 낭비하고 또 손을 벌리는 딱한 친척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손을 벌리고 또 벌립니다. 우리는 이럴 때 도와주는게 맞는지, 냉담하게 돌려 보내야 정신을 차리겠는지 고민하지만, 하나님은 계속 건져주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계속 복을 주시는데 복을 복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화로 만드는건 인간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안일함이 복을 변질 시킵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깨어 있어야 할 일입니다. 주님, 이것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신 복을,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잊지말자 주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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