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0장: 아파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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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략)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을 저질렀다. 그들은 바알 신들과 아스다롯과 시리아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사람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주님을 저버려, 더 이상 주님을 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블레셋 사람과 암몬 사람의 손에 내어주시니, 그 해에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억압하고 학대하니, 요단 강 동쪽 길르앗 지방 아모리 사람의 땅에 사는 온 이스라엘 자손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그렇게 억압을 당하였다. 암몬 자손이 또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지파를 치려고 요단 강을 건너왔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이 막심하였다. 그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부르짖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을 섬기어,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사람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도 너희가 나에게 부르짖었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 주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여 주지 않을 것이니, 너희가 선택한 신들에게나 가서 부르짖어라. 너희가 괴로울 때에 그들에게 가서 구원하여 달라고 해라.”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다 하십시오. 그러나 오늘만은 우리를 구출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주님을 섬기니,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으셨다. 그 때에 암몬 자손이 집결하여 길르앗에 진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쳤다. 그 때에 백성과 길르앗의 지도자들이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겠느냐? 그 사람이 길르앗에 사는 모든 사람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6-18절)

해설:

아비멜렉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또 다시 외적의 압제 하에 들어간다. 그 때 하나님은 돌라를 사사로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은 23년 동안 전쟁의 두려움 없이 살아간다(1-2절). 그 후에는 야일이 사사로 부름 받아 2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다. 사사로서 야일은 막대한 권세를 누렸는데,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다(3-5절).

야일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극심한 우상 숭배에 빠진다.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만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사는 다른 민족들의 신들을 모두 받아들인다(6절). 과거에는 야금야금 이방 신들을 받아 들였다면, 이제는 대놓고 우상숭배에 빠진 것이다. 그로 인해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레셋 사람과 암몬 사람에게 넘겨 주셨고,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18년 동안 압제 당한다(7-9절).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울부짖어 구원을 호소한다(10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거듭된 배신과 우상 숭배를 지적하면서(11-12절),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여 주지 않을 것”(13절)이라고 응답하신다.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죄에 빠졌는지를 인정하고 이방 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주님께 돌아온다(15-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진심어린 회개에 감동하신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으셨다”(16절)는 표현에서 그 사실이 드러난다. <개역개정>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고 번역해 놓았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아픔에 대한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이 찢어졌다”는 뜻이다. 다시는 구해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실만큼 노하셨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시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겪으셨고, 그로 인해 행동하기 시작하신다.

그 때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길르앗에 진을 친다. 이스라엘 자손은 미스바에 진을 치고 전쟁을 대비한다(17절).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전쟁을 이끌 지도자가 없었다. 백성은 이 전쟁에 지도자로 나서는 사람은 길르앗의 왕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지도자를 찾는다(18절).

묵상: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아파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출 20:5)라는 말은 “감정을 가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죄악에 대해서는 진노하시고 거룩한 삶에 대해서는 감동하십니다. 때로는 “다시는 너희를 거들떠 보지도 않겠다”고 말씀 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내가 다시는 너희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그분이 변덕스럽기 때문에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정으로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말썽 피우는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습니다. 자식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어머니는 때로는 혼내고 때로는 얼르고 때로는 위협하고 때로는 눈물로 간청합니다. 자식에게서 작은 희망의 싸인만 보아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감동하고 기뻐합니다. 자식이 고집을 부려 죄악에 깊이 빠져 있을 때면 속이 시꺼멓게 썩어 버립니다. 스스로 선택한 죄악의 길에서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의 마음은 칼로 베는 듯한 아픔을 겪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식을 구원하려 합니다. 지극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위해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만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찢어진 마음을 상징합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생각합니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시고 때로 기뻐하시고 때로 마음 졸이시며 때로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에 오늘도 그분의 손을 잡고 일어섭니다.

기도:

주님이 무심한 심판관이 아니셔서 감사합니다. 불꽃같은 눈초리로 감시하면서 징계하는 엄한 아버지가 아니라,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저희의 애환을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 홀로 내버려져 있다 해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아멘.

3 responses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일본 후쿠오카에 와 있습니다. 남편 선배 커플과 함께 왔는데 일본 여행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 그분들에게 여행 일정을 일임하고 따라왔습니다. 오늘은 온종일 비가 와서 다니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후쿠오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신사를 구경가려고 일찍부터 움직였습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신사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한국 관광객들과 유럽인들, 또 교복을 입은 일본 학생들로 무척 붐볐습니다. 이 신사는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로 알려져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와 학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 같았습니다. 신사 입구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길래 뭔가? 하고 보니 누워있는 소의 조각상입니다. 소의 머리를 만지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입니다. 신사의 상징물이 소랍니다. 광야의 히브리 백성이 절을 하던 황금송아지 상이 잠깐 생각났습니다. 신사 곳곳에 소원을 비는 나무판 (에마)들이 정말 많이 걸려 있었는데 원하는 대학교를 죽 쓰고 ‘절대합격’ ‘합격기원’ 등을 쓰고 자기 이름도 적어 두었습니다. 왠지 마음이 짠했습니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체에서 간절하게 비는 마음이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일본 글은 읽을 줄 모르지만 한자의 뜻으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욕망과 뜻을 이루는 데 있어 자기 밖의 힘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 같은게 있는가 봅니다. 자기 뜻을 자기 의지만으로 이룰 수 없다는 선이해가 있는가 봅니다. ‘하면 되지’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안 돼’라는 두려움이 따라 붙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면의 소원을 받쳐 줄 외부의 힘을 찾아 기대는가 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이스라엘 백성이 온갖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이방 민족에게 당하고, 노예살이를 하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비는 백성입니다. 구해주면 얼마 안 가 또 이방 신들 앞에 넙죽 엎드리는 백성입니다. 인간의 성숙과 진보가 차근차근 계단을 밟듯 올라가지 않고 두 계단쯤 올라간 듯 하다 열 계단 죽 미끄러져 떨어지고, 또 다시 힘들여 한 두 계단 올라가는 듯 싶다가 아예 계단이 뚝 끊겨 없어져 버린 것 같은 혼돈과 절망을 느끼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것 같을 때, 나의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을 부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읽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아십니다. 우리가 알기 전에, 깨닫기 전에 아십니다. 우리가 도와주세요 외칠 때까지 기다리실까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서야만 답해주실까요.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를 그냥 품으실까요. 우상 숭배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백성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집을 떠나 제멋대로 살다 고생하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기억해 냅니다. 그렇게 기억해내는게, 집으로 가겠다고 생각하는게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구나 싶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그 때가 하나님의 사랑에 내 마음이 녹는 때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Young j kim Avatar
    Young j kim

    하나님은 인격(지성, 의지, 감정)체로, 조건 없는 내어 주심과 영원한 신실함으로 표현되는 사랑이시고(요한복음 3:16), 심판하시는 공의이시며(히브리서 9:27), 거저 주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분(출애굽기 34:6)이심을 말씀을 통해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완전한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구원의 반석에서 주시는 은혜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로 주님을 이웃에게 전하면서 남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검은 비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밝은 얼굴을 빠끔 비취고 승강장에는 바람에 붑니다. 목요일 아침.

    오늘의 본문(삿10)을 읽습니다. 지역 전쟁 영웅 입다 이야기. 아비멜렉 이야기처럼 사실성이 짙지도 삼손 이야기처럼 민담적이지도 않은 그 스펙트럼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서사. 실제 지역 영웅에 대한 기억이 세월이 지나면서 비극적 신앙전설로 발전한 사례라고 보는 것이 가장 균형적인 리딩(Copilot)일 것이라 하네요. 그 백성의 곤고로 근심하시는 하나님. 그의 신실하신 구원. 그리고 인간의 한계와 비극.

    오늘도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쓸쓸하고도 온화한 늦가을의 풍광이 마음에 애수를 불러오네요. 어제는 두 번째로 한의원에서 테라피를 받았고 몸의 불편했던 부분이 빨리 회복되고 있습니다. 간밤에는 편안히 잠을 잤고 아침에는 일어나 오늘이라는 이름의 택배상자를 풀고 있습니다. 자녀의 곤고함을 보시고 들으시는 이, 엘 로이. 나의 하나님.

    오늘 하루의 일상, 오늘 해야하는 노동이 주께 올려드리는 삶의 예배가 되기를. 나의 기도, 주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 주께서 들으시고 주님의 때, 그 깊은 의미의 시간에 그 분의 방법으로 가장 완전하게 응답하시길. 그 때. 바로 그 때에 바라던 것들이 실상이 되고 눈물이 웃음으로 변하길. 아바. 우리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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