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앞에서 “태초 이전의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과 ‘그 말씀’과 생명 창조에 대해 묘사했던 저자는 빛의 속도로 앵글을 돌려 주후 30년경에 살았던 인물을 비춘다. “요한”(6절)은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요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신앙 갱신 운동을 이끌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는 말로써, 저자는 요한의 세례 운동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전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이유는 “그 빛”에 대해 증언하여 사람들을 믿게 하는 것이었다(7절). 당시에 세례자 요한을 “그 빛”으로 믿고 따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는 “그 빛”에 대한 증언자일 뿐이다(8절).
세례자 요한이 증언한 “그 빛”은 “참 빛”(9절)이다. 온전한 , 완전한 빛, 영원한 빛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빛은 태양에서 발산되는 것이다. 그 빛은 언젠가는 꺼진다. 첫째 날 “빛이 있으라”(창 1:3)고 명령하여 생겨난 빛은 태양빛이 아니다. 모든 존재를 있게 하는 근원적인 빛으로서, 하나님에게서 발산되는 빛이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것은 과거에 일회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저자는 그 빛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고, “비추고 있다”고 현재형으로 말한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지상에 없지만, “그 빛”은 계속 비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10절)는 말로써 저자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으로 눈을 돌린다.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여 거부했다(11절).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라는 말과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라는 말로써, 저자는 그분을 거부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강조한다.
모두가 그분을 부정하고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분을 “맞아들인”(12절)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그것을 “그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히브리 문화권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대변한다. 따라서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그 사람을 믿는다”는 뜻이다. “믿다”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튜오’는 인격적인 신뢰 상태를 의미한다. 저자는 현재형 동사를 사용했는데, 헬라어에서 현재형 동사는 지속적인 행동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이름을 믿다”는 말은 그분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일회적인 사건이지만, 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지속적 사건이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창조되었으니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죄로 인해 그 자격을 상실했다. 그 자격을 되찾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다. “혈통에서나”(13절)라는 말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육정에서나”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됨이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는 인간의 의지로 혹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진 권한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녀의 자격을 회복시켜 주신다.
묵상:
저자 요한은 시간이 시작된 원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묘사한 다음, 시간 안에서 일어난 한 사건으로 초점을 옮깁니다.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그 자체로서 신적인 존재이셨던 ‘그 말씀-지혜’가 시간 안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가 그분에 의해 지어졌으므로 그분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분이 영원하시니 그분이 주신 생명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참 빛”(9절)이라고 부릅니다. 물리적 생명이 태양빛에 있다면, 영원한 생명은 그분 안에 있습니다. 지어진 모든 것은 그분 안에서 물리적 생명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물리적 생명을 전부로 알고 그것에 만족하여 살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육신적인 생명은 한순간 번쩍이고 사라지는 불티와 같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결과로 인간은 ‘그 말씀-지혜’를 알려 하지도 않고, 알아도 따라 살려 하지 않습니다. 눈 질끈 감고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인간이 처한 영적 어둠의 원인입니다. 개인이 영적 어둠 가운데 살고 있으니, 세상에 어둠이 가득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인간의 죄성은 발호하는 법입니다. 세상에 영적 어둠이 짙게 깔려 있으니, 죄악이 번성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택하여 구원 역사를 진행하시다가, 때가 이르자 ‘그 말씀-지혜’를 보내 주셨습니다. 14절에서 저자는,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이 나사렛 사람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자로서 자신이 창조한 존재들에게 오셨고, 영원한 왕으로서 자기의 백성에게 오셨습니다.
피조물이 자신을 지으신 창조자 앞에 설 때, 그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든가, 거부하고 배척하든가, 두 가지의 선택지 앞에 섭니다. 백성이 자신의 통치자 앞에 설 때,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든가, 거부하든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그분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피조물로서, 그분의 백성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에 대한 그분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한순간의 결단으로 되지만, 영접한 이후에 그분께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은 계속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고, 자녀로서의 권리를 부여 받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고, 자녀로서의 모든 특권이 주어졌음을 진실로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힘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그 빛”을 받은 사람의 삶의 방법이며, 그것이 “그 말씀-지혜”를 따라 사는 것이고, 그것이 이 땅에서 “그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입니다.
기도:
주님이 누구이신 줄 알아보고, 저희에 대한 주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마음을 열고 주님을 모셔 들이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자녀의 신분에 감사하며, 자녀됨의 특권을 누리되, 자녀답게 살도록 저희를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 to young mae kim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