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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해설: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로 불러내신다. 해변을 따라 걸으시다가 예수님이 그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절)고 물으신다. “이 사람들보다”로 번역된 ‘투톤’은 남성으로도, 중성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이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사물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지를 물으신다. “사랑하느냐”로 번역된 헬라어(“아가페이스 메”)의 의미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는 의미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것과 같이 조건 없이, 끝까지, 변함 없이 사랑하는 것이 아가페의 사랑이다.
베드로는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답한다. 여기서 베드로는 “필로 쎄” 즉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답한다. ‘필레오’는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 제가 주님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저의 사랑은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 사랑입니다”라고 답한 셈이다. 예수님은 “내 어린 양떼를 먹여라”고 하신다.
한참을 말없이 걸어가시다가 예수님은 동일한 질문으로 두 번째 물으신다. 베드로도 동일하게 답한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다른 말씀 없이 “내 양떼를 쳐라”(16절)고 하신다. 앞에서는 “어린 양떼”(‘아르니아’)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프로바타’(성장이 끝난 양들)를 사용한다. 어린 양떼에 대해서는 “먹이라”(‘보스케’)고 하셨는데, 성장한 양떼에 대해서는 “치라”(‘포이마이네’)고 하신다. “돌보라”는 뜻이다.
얼마 후, 예수님은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7절) 이번에는 “필레이스 메” 즉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 베드로는 불안해져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답한다. 결국 베드로는 자신의 사랑의 한계를 주님 앞에 인정하고 고백한 것이다. 예수님은 “내 양 떼를 먹여라”고 답하신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베드로의 앞날에 대해 예언하신다(18절). 그것은 베드로가 미래에 고난당하고 순교당할 것에 대한 예언이었다(19절). 그는 이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다가 주님처럼 죽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나를 따라라”는 말씀으로 그를 다시 부르신다.
묵상:
대제사장의 집뜰에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했던 기억은 베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불을 피해 다녔을지 모릅니다. 불을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주님을 만난 날도 그는 주님께서 피워 놓은 숯불을 보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빵과 물고기를 떼어 줄 때, 마지막 밤의 기억은 더욱 선명하게 살아났을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13:37)라고 호언장담하던 기억도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빵과 물고기를 차마 먹기가 송구스러웠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마음과 감정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아니, 그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렇게 연출을 하셨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자 베드로를 따로 불러내십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실지 두려웠을 것입니다.
얼마 후, 주님께서는, 당신이 그를 사랑한 것 같이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이미 그 사랑에 실패했습니다. 그는, 자신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은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 사랑이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도 같은 말로 질문하시고 베드로도 같은 말로 답합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깨어지기 쉬운 사랑이나마 자신을 사랑하고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그렇다고 답하자, 예수님은 당신의 양떼를 먹이라고 하십니다. 그 대화를 통해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의 실수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세심한 배려를 봅니다. 세 번이나 “나는 그를 모른다. 그는 나와 상관없다”고 부인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는 실패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세 번이나 고백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 사랑이나마 그분께 바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것이면 당신의 양떼를 맡기기에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베드로를 향해 “나를 따라라”고 부르시는 장면은 마음을 찡하게 만듭니다. 베드로는 가야바 법정에서의 실패로 인해 제자로서 실패했다는, 제자로서의 자격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처음 그를 부르셨던 말씀을 다시 불러 주십니다. 그 부름으로 베드로는 새로이 출발할 수 있었고, 제자의 길에서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요절: 17절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기도:
스스로 실패자라는 절망 가운데 빠져 있던 베드로를 불러내시고, 대화를 통해 그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잃어버린 소명감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 주님의 그 마음을 느끼니, 저희의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저희도 이 세상 누구보다,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을 따라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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