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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온 회중이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온 회중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왜 우리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사로잡히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들은 또 서로 말하였다. “우두머리를 세우자.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1-5절)
(중략)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말대로 용서하겠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리고 나 주의 영광이 온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나의 영광을 보고도, 내가 이집트와 광야에서 보여 준 이적을 보고도, 열 번이나 거듭 나를 시험하고 내 말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그 땅을 못 볼 것이다. 나를 멸시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 땅을 못 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종 갈렙은 그 마음이 남과 다르고, 또 전적으로 나를 따랐으므로, 나는, 그가 다녀 온 그 땅으로 그를 데리고 가겠고, 그의 자손은 그 땅을 유산으로 받을 것이다. 아말렉 사람과 가나안 사람이 골짜기에 살고 있으니, 내일 너는 돌이켜 홍해로 가는 길을 따라서 광야 쪽으로 나아가거라.” (20-25절)
(후략)
해설:
열명의 정탐꾼이 퍼뜨린 소문은 삽시간에 이스라엘 온 회중을 공황 상태에 몰아넣는다. 그들은 “밤새도록 통곡하였다”(1절)고 할 만큼 심하게 흔들린다. 이집트로부터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감격했던 그들은, 이제 그 처사에 대해 모세와 아론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들은 심지어 모세와 아론 대신 자신들을 이끌 이집트로 돌아가게 할 지도차를 세우자는 데까지 이른다(2-4절).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업드린다(5절). 그들의 참담한 언행으로 인해 큰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정탐꾼으로 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6-9절). 하지만 이스라엘 회중은 돌을 들어 그들을 죽이려 한다(10절).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나타나신다(10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의 고집스러운 불신앙을 전염병으로 징계하겠다고 하신다(11-12절). 그러자 모세는 백성을 위해 호소한다. 그렇게 하시면 이집트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조롱하겠느냐고(13-16절), 그러니 백성을 한 번 더 용서해 달라고(17-19절) 간청한다.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을 받아들여 즉각적인 징계를 철회하신다. 대신에 이집트를 탈출한 일세대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며(20-23절), 여호수아와 갈렙이 일세대 중 가나안 땅을 밟는 유일한 생존자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24, 38절). 모세의 중보 기도를 받아들여 집행 유예를 선고하신 셈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아말렉 사람과 가나안 사람이 있으니, 홍해로 가는 길을 따라 광야 쪽으로 가라고 지시하신다(25절). 그것은 사십 년 동안의 광야 유랑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십 일 동안 정탐하고 불신앙에 빠졌으므로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하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26-35절).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들은 모든 이야기를 백성에게 전하자, 백성은 갑자기 돌변하여 가나안 땅으로 치고 올라간다(39-40절). 모세가 말렸지만(41-43절) 그들은 듣지 않는다(44절). 아니나 다를까, 아말렉 사람과 가나안 사람이 반격했고, 이스라엘군은 대패한다(45절).
묵상: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병으로 징계하시겠다는 하나님께 모세가 중보하는 장면은 감동적입니다. 시내산에서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출 32:31-32).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를 보면, 마치 모세가 제시한 논리와 이유에 하나님이 설득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감정이 격하여 잠시 이성을 잃은 반면, 모세는 냉정하게 사리를 분별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제시한 논리에 설복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논리를 들이대면서 백성을 위해 간구하는 모세의 마음을 받아 들이신 것입니다. 모세가 제시한 논리를 반박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의 갸륵한 마음을 받아 들여 절충안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중보 기도는 말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논리가 아니라 간절한 애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보 기도를 들으신다면 논리나 이유 때문이 아니라 기도자의 간절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올리는 기도의 말들은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수단입니다. 우리가 말의 논리로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대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로움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입니다(고전 1:25). 우리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이고, 하나님은 그 마음에 감동하셔서 때로 계획을 바꾸십니다.
그것을 두고 “하나님도 이랬다 저랬다 하신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인간의 중보를 받으시고 “돌이키실” 때는 항상 징계와 심판으로부터 사랑과 구원으로 돌이키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심판하기로 하셨다 해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진심은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절:
“나 주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이 넘치어서 죄와 허물을 용서한다. 그러나 나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아니한다. 나는,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자손 삼사 대까지 벌을 내린다.” (18절)
기도:
저희에게 중보의 영을 더 충만하게 내려주십시오. 그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의 증거이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기도에 더 많은 이들을 품게 하시고, 더 간절히, 더 뜨겁게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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