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장: 중보의 능력

3–4 minutes

To read

음성듣기

본문:

온 회중이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온 회중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왜 우리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사로잡히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들은 또 서로 말하였다. “우두머리를 세우자.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1-5절)

(중략)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말대로 용서하겠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리고 나 주의 영광이 온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나의 영광을 보고도, 내가 이집트와 광야에서 보여 준 이적을 보고도, 열 번이나 거듭 나를 시험하고 내 말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그 땅을 못 볼 것이다. 나를 멸시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 땅을 못 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종 갈렙은 그 마음이 남과 다르고, 또 전적으로 나를 따랐으므로, 나는, 그가 다녀 온 그 땅으로 그를 데리고 가겠고, 그의 자손은 그 땅을 유산으로 받을 것이다. 아말렉 사람과 가나안 사람이 골짜기에 살고 있으니, 내일 너는 돌이켜 홍해로 가는 길을 따라서 광야 쪽으로 나아가거라.” (20-25절)

(후략)

해설:

열명의 정탐꾼이 퍼뜨린 소문은 삽시간에 이스라엘 온 회중을 공황 상태에 몰아넣는다. 그들은 “밤새도록 통곡하였다”(1절)고 할 만큼 심하게 흔들린다. 이집트로부터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감격했던 그들은, 이제 그 처사에 대해 모세와 아론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들은 심지어 모세와 아론 대신 자신들을 이끌 이집트로 돌아가게 할 지도차를 세우자는 데까지 이른다(2-4절).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업드린다(5절). 그들의 참담한 언행으로 인해 큰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정탐꾼으로 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6-9절). 하지만 이스라엘 회중은 돌을 들어 그들을 죽이려 한다(10절).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나타나신다(10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의 고집스러운 불신앙을 전염병으로 징계하겠다고 하신다(11-12절). 그러자 모세는 백성을 위해 호소한다. 그렇게 하시면 이집트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조롱하겠느냐고(13-16절), 그러니 백성을 한 번 더 용서해 달라고(17-19절) 간청한다.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을 받아들여 즉각적인 징계를 철회하신다. 대신에 이집트를 탈출한 일세대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며(20-23절), 여호수아와 갈렙이 일세대 중 가나안 땅을 밟는 유일한 생존자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24, 38절). 모세의 중보 기도를 받아들여 집행 유예를 선고하신 셈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아말렉 사람과 가나안 사람이 있으니, 홍해로 가는 길을 따라 광야 쪽으로 가라고 지시하신다(25절). 그것은 사십 년 동안의 광야 유랑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십 일 동안 정탐하고 불신앙에 빠졌으므로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하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26-35절).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들은 모든 이야기를 백성에게 전하자, 백성은 갑자기 돌변하여 가나안 땅으로 치고 올라간다(39-40절). 모세가 말렸지만(41-43절) 그들은 듣지 않는다(44절). 아니나 다를까, 아말렉 사람과 가나안 사람이 반격했고, 이스라엘군은 대패한다(45절).

묵상: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병으로 징계하시겠다는 하나님께 모세가 중보하는 장면은 감동적입니다. 시내산에서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출 32:31-32).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를 보면, 마치 모세가 제시한 논리와 이유에 하나님이 설득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감정이 격하여 잠시 이성을 잃은 반면, 모세는 냉정하게 사리를 분별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제시한 논리에 설복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논리를 들이대면서 백성을 위해 간구하는 모세의 마음을 받아 들이신 것입니다. 모세가 제시한 논리를 반박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의 갸륵한 마음을 받아 들여 절충안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중보 기도는 말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논리가 아니라 간절한 애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보 기도를 들으신다면 논리나 이유 때문이 아니라 기도자의 간절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올리는 기도의 말들은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수단입니다. 우리가 말의 논리로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대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지혜로움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입니다(고전 1:25). 우리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이고, 하나님은 그 마음에 감동하셔서 때로 계획을 바꾸십니다. 

그것을 두고 “하나님도 이랬다 저랬다 하신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인간의 중보를 받으시고 “돌이키실” 때는 항상 징계와 심판으로부터 사랑과 구원으로 돌이키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심판하기로 하셨다 해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진심은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절:

“나 주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이 넘치어서 죄와 허물을 용서한다. 그러나 나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아니한다. 나는,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자손 삼사 대까지 벌을 내린다.” (18절)

기도:

저희에게 중보의 영을 더 충만하게 내려주십시오. 그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의 증거이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기도에 더 많은 이들을 품게 하시고, 더 간절히, 더 뜨겁게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온갖 표징으로 애급의 노예에서 해방시키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공급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불평하는 저희들입니다, 저희들의 죄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기를 원하시고 은혜배푸시기를 기뻐하시는 구원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려 올립니다, 지금부터라도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체험하며 감사하며 주님 사랑하며 이웃을 섬기기를 원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가나안 땅에 들어갈때까지—-
    아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스라엘의 행동을 보면 나도 화가 납니다. 설령 열 명의 대표자들 하는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해도 차라리 이집트로 가서 죽는게 낫겠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건지요. 광야에서 지파별로 대오를 짜서 행군을 할 땐 가나안 땅이 가까와지면 공격을 해서 전쟁을 치루는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묵게 될 땐 성막을 가운데 두고 질서정연하게 동서남북으로 진을 쳤습니다. 언제 또 행군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짐을 풀고 쉬었습니다. 모든 것을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하며 왔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 동정을 살피고 온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니 ‘멘붕’이 왔습니다. 이제 곧 죽겠구나 두려워집니다. 차라리 이집트로 데리고 돌아갈 지도자를 세우자고 할 정도니 돌았어도 보통 돈 게 아닙니다. 그런 백성을 하나님은 전염병으로 치시려고 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모세는 말립니다. 이집트와 가나안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냐며 참으시라고 말립니다. 이스라엘의 이상행동은 그 다음에 또 일어납니다. 전염병으로 죽는 벌은 거두었지만 가나안 땅에 대해 악평한 대표자들은 하나님께서 없애십니다. 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죄값으로 가나안 정복은 몇 주가 아니라 40년이라는 긴 기간으로 늘어날 것이며, 광야에서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사람 외에 지금 있는 사람 중에는 가나안으로 들어갈 사람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이것을 듣고 백성은 아침 일찍 산으로 올라가 가나안 사람들과 싸우겠다고 나섭니다. 아말렉과 가나안 사람들에게 패할 것이니 가지 말라는 모세 말을 듣지 않고 갔다가 결국은 크게 망하고 맙니다. 14장에서 백성이 하는 말과 행동은 제정신이 든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을 보고 온 대표들의 보고를 듣고 백성이 이토록 무너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조너던 색스 랍비의 해설은 사고방식의 차이를 이유로 듭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캐롤 드웩은 2016년에 ‘Mindset 사고방식’이라는 책을 발표합니다. 사고방식: 성공의 새로운 심리학 Mindset: The New Psychology of Success 책은 성공하는 사고방식과 실패하는 사고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했는데 재능이란 것은 주어진 것이라서 있거나 없다고 보는 고정형 사고방식 fixed mindset 을 가진 사람이 있고, 능력이 없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니 배워서 다시 하면 된다고 하는 성장형 사고방식 growth mindset 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정리합니다. 사람은 재능이 있거나 아니면 평범한거다 talented or ordinary 라고 보는 고정형 사고를 하면 실패를 두려워해서 (실패하면 재능이 없는 것이 되니까) 실패하지 않을 일만 찾아 하게 되니 리스크나 도전은 피하게 됩니다. 반대로 성장형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기가 재능이 있다 없다에 묶이지 않고 성취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기 때문에 실패에서 배우고 다시 도전합니다. 랍비 색스는 13장 3절에 주목합니다. 모세가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보낸 사람들은 지파의 리더들 (두령, 족장)로 성공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fixed mindset 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한편 갈렙과 여호수아는 growth mindset 을 가진 사람들, 즉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고 다음 성공의 디딤돌로 본 사람들입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였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죽이자는 형제들에게 종으로 팔자고 제안한 형입니다. 그는 또 며느리 다말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다말이 자기보다 옳다 (창 38:26) 는 선언을 하는 반성과 분별력을 보입니다. 이집트의 고관이 된 요셉 앞에서도 베냐민을 볼모로 잡으려는 요셉에게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을 사랑한다며 자기가 대신 종이 되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즉, 갈렙은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유다 지파의 사람이라는거지요. 여호수아 역시 13장 16절에서 보듯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다는 점을 들어 성경에서 이름이 바뀌는 경우는 분명한 성장형 사고방식의 예라고 말합니다. 14장을 읽으며 느꼈던 백성을 향한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며 어쩌면 나도 성장형 사고가 아니라 고정된 인식체계 안에 안주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체면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도 상식/계산/확율 등을 따지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나안 사람 손에 죽느니 이집트로 돌아가는게 낫겠다는 망언을 하고, 어차피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할거면 지금이라도 쳐들어가 싸워보자는 헛소리나 하는 이스라엘과 크게 다르지 않은겁니다. 부끄럽습니다. 주님, 못났습니다 참. 이러니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매일 가르쳐 주세요. 제 인생에도 몇 주면 해결날 일을 제 고집과 교만으로 몇 십 년씩 걸리게 만든 일은 없을까요…죄송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좀 쌀쌀하지만 푸른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기쁨의 감정을 일깨우는 아침, 목요일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틀째 자주 끊기는 잠을 잤습니다. 그래도 잤고, 일어났고, 햇살을 느낍니다. 생명을 허락하시는 분께 감사.

    오늘 말씀은 민수기 14장. 13장과 짝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왜 40년이나 광야에서 머물러야 했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 “불순종 -> 징벌선언 -> 현세대의 죽음 -> 40년의 기다림 -> 새로운 세대 (남은 자)들의 가나안 입성”이라는 이 장대한 광야 서사는 바빌론 포로기 성경 편수자들이 믿은 “남은 자(remnant) 신학(이사야 45-50)“의 구조를 그대로 비취주는 것이겠지요?

    엄혹한, 매우 엄혹한 본문이에요. 죄에 대한 처절한 자기 고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무서운 선포, 정화와 훈련의 시간 곧 광야 (=민수기+신명기 신학), 그리고 갱신 (=세대 교체)에 의한 회복의 약속. 처절한 징벌과 죽음의 언어 안에 이러한 메시지들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또 반짝이는 보석처럼 숨겨져있는 것은 그저 느낌일까요?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집에 용무가 있어 재택근무를 해요. 아침에 눈을 뜨고 따뜻한 햇살을 느낄 수 있어, 숨을 쉬고 하루라는 생명의 시간을 더 누릴 수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 죽지 않고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던자를 부르시어 정결케하시고 갱신하신 이. 그의 보혈, 그의 대속을 종일 묵상하는 오늘이 되기를.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포도나무 되신 주님의 죽으심, 그 부활하심과 연합하고 새 이스라엘, 새 래위인으로 살며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가는 하루 하루, 그런 인생이 되기를. 같은 축복이 아이들의 인생 가운데도 부어지기를. 생명의 떡 같이. 생수의 강 같이.

  4.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본인 뿐만 아니라 자손 삼사 대까지 벌을 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였다면 이 땅의 인류는 이미 멸절 되어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엄중한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게 하시려는 ‘사랑의 회초리가 되었고, 그 회초리는 끝내 십자가의 사랑으로 변하여 인류를 살리셨음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탐욕은 여전히 멈추지 않아, 지금 이 순간에도 포탄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간절히 구합니다. 아직 주를 알지 못하는 이들과 죄 아래 있는 영혼들을 위해 끊임없이 증보하며 기도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마라나타!

Leave a Reply to gachi049Cancel reply

Discover more from 사귐의 소리 2026

Subscribe now to keep reading and get access to the full archive.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