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본문: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해설:
이어서 야고보 사도는 상인을 예로 들어 가르침을 준다. 우리 번역에서는 “들으십시오”(13절)가 문장 마지막에 나오지만, 원문에서는 처음에 나온다. 5장 1절에서도 사용된 표현으로서, 이어지는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도는 가상의 화자를 설정하여 대화를 주고 받는 화법(‘디아트리베’)을 자주 사용한다.
가상의 화자는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문제는 “장사하여 돈 버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 말 번역에는 감추어져 있지만, 네 개의 동사(“우리가 가다”, “우리가 머물다”, “우리가 장사하다”, “우리가 돈을 벌다”)를 연달아 사용된 것을 보면, 화자는 인생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일인칭 단수 대명사(“내가”) 대신에 복수 대명사(“우리가”)를 사용한 이유는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읽게 하려는 문학적 전략이다.
야고보 사도는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가상의 화자의 잘못된 생각을 들추어낸다(14절). 인간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 지조차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 첫째요, 인생이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이 둘째다. 이 사실을 안다면, 미래에 대해 함부로 장담하지 않게 된다(15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할 수 있다. 가상의 화자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울쭐대면서 자랑하고”(16절) 있다. 사도는 “그 자랑은 악한 것입니다” 라고 단정한다. 그것은 악에서 나오는 생각이며, 악으로 이끄는 생각이다.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된다”(17절)는 말씀은 독립된 격언처럼 보이는데, 앞의 내용과 연관지어 보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면 인정하고 실천하라는 뜻이 된다. 즉 인생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 것처럼 우쭐대면서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다.
묵상: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 12:13-21)를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형제들과 벌이고 있는 유산 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청하자, 예수님은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14절)고 말씀하시면서 어떤 부자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그는 이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큰 수확을 거두자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기로 계획하면서,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19절) 하고 자축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하고 물으십니다. 그 부자는 세상적으로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일도 오늘처럼 든든할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의 이 비유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주를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야고보는 상인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갈릴리 주민들은 주로 지주와 소작농이었으나, 야고보의 독자들은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독자들을 위해 예수님의 비유를 살짝 바꾸어 가르침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 말 속에는 아주 깊은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고백이요, 자신의 존재와 활동은 그분의 다스림 아래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복된 일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무엇을 이루었다고 우쭐해져서 자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그것도 주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힘 쓸 일은 주님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 그분 안에 머물러 사는 한, 교만해져서 고개 쳐 들 일도 없고, 열패감에 고개 숙일 일도 없습니다.
요절: 15절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기도:
오늘도, 주님께서 원하셔서, 새 아침을 맞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하루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죽는 것도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 안에 살다 주님 안에서 죽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행복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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