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1-8절: 살아있는 돌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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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해설:

앞에서 사도는 거듭난 사람답게 살라고 명령했는데, 여기서는 그 명령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간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거듭난 사람으로 살도록 힘써야 한다. 부화가 다 된 알의 껍질을 깨뜨리는 것은 어미 닭의 책임이지만, 깨진 알껍질을 밀고 나와 기지개를 펴고 움직이는 것은 병아리의 책임이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사람들도 새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우선, 믿지 않을 때 몸에 배인 악한 습관을 벗어버리도록 힘써야 한다. 사도는 여기서 다섯 가지의 악덕(악의, 기만, 위선, 시기, 비망하는 말)을 예로 든다(1절). “버리십시오”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더러워진 옷을 벗는 행동을 묘사한다. 동시에, 거듭난 사람들은 “순수하고 신령한 젖”(2절)을 찾아 먹어야 한다. “갓난 아기들처럼” 이라는 표현은, 갓난 아기들이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믿는 이들도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비유다.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길에서 완주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은 믿음으로 현재 시작되었지만, 마지막 날에 완성되어야 한다. 

3절은 개역개정의 번역(“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이 훨씬 좋다. 시편 34장 8절에서 빌려 온 표현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은 가정법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주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했다. 진실로 그것을 경험했다면, 모든 악덕을 벗어버리고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그런 근거에서 사도는 신도들에게, “주님께 나아오십시오”(4절) 라고 초청한다.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더욱 가까이, 더욱 간절히 찾으라는 뜻이다. 

그분은 사람들에게는 “버려진 돌” 처럼 취급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선택하셔서 “살아있는 돌”(5절)이 되게 하셨다. 사람에게는 쓸모 없다고 판정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돌을 귀하게 여기셨다. 돌은 죽어 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있는 돌”이시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 즉 교회도 “살아있는 돌”이며 “신령한 집”이다. “신령한 집”은 성전을 말한다. “살아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5절)은 믿는 사람 개인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 즉 교회를 가리킨다. 믿는 이들 하나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 교회가 거룩한 성전이라면, 교회의 지체들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도는 이사야서 28장 16절을 인용한다. 모퉁이 돌은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쌓아올릴 때 기준점으로 삼기 위해 처음 놓는 돌을 의미한다.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6절)는 말은 메시아가 시온으로 오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모퉁이 돌로서 믿는 이들 개인과 믿음의 공동체 전체에게 기준점이 되신다(7절).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모퉁이 돌은 살아 있어서 믿는 이들의 삶 속에서 일하신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돌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8절) 것이 된다.   

묵상: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믿는 이들과 교회의 정체성을 묘사하기 위해 성전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을 둔 집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성전에 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으신 것은 성전 제사가 끝났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열매는 없고 잎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성전 제사 제도는 형식만 화려할 뿐 그 존재 이유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무너지면 새로운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그분 자신의 부활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요 2:21). 그분의 죽음은 성전 제사 제도에 대한 종언이었고, 그분의 부활은 새로운 성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있는 돌”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그 돌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고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돌을 모퉁이 돌로 삼으셨습니다. 권력자들이 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에 처형한 그분을 하나님께서 부활시켰다는 뜻입니다. 모퉁이 돌은 건물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놓아 다른 벽돌들의 기준점이 되는 돌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 세워진 새로운 성전이 교회입니다. 새로운 성전으로서의 교회는 모퉁이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살아있는 돌이 되고, 교회를 이루고 있는 각 신자들은 제사장이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성전이며, 이 세상에 대해서는 제사장 공동체입니다. 믿는 이들은 한몸으로서 혹은 따로 흩어져 제사장으로서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것은 나 혼자 복을 누리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 다른 믿는 이들과 연합하여 거룩한 성전을 이루고 이 세상에 대해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 그 영원한 유산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도 베드로가 권면한 것처럼, 모든 악독을 버리고, 간난 아기가 젖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요절: 5절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기도:

저희를 살아있는 돌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 교회를 이루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교회로 모여 거룩한 성전이 되어 제사장 공동체로서 세상을 섬기게 하시고, 흩어져 살아갈 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Bill Kim Avatar
    Bill Kim

    주님이 그리스도 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반석위에 모퉁이 돌로 세워진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걸림돌이 아니고 디딤돌 징검다리돌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산돌이되어 세상의 축복이되고 변홧를 이루는 사귄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베드로서는 신자들에게 보낸 서신으로 보입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공동체가 모여서 읽고 듣기를 원해서 보낸 편지입니다. 크리스찬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크리스찬이기에 갖는 삶의 무게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다 비슷비슷하면서 또 각자 다 다릅니다. 공감과 연민이 그래서 가능하며, 그래서 필요합니다. 어제는 아이들과 중국식당에서 Father’s Day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테이블마다 아버지가 주인공인 것 같이 보였지만 사람이 많다 보니 대화다운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럴 땐 ‘굳이 말 안해도 통’한다고 여기고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부모 자녀가 멀리 떨어져 살지 않아 감사할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 또한 살아 있는 돌로서 그분의 집을 지어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개인의 삶과 공적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신정사회가 아닙니다. 종교와 사회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부패와 독선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되어 국가의 사법 입법 행정 모든 부문이 크리스찬 윤리와 전통, 문화를 따르면 좋겠지만 이런 것은 ‘신기루’와 같은 희망의 투영일 뿐 명분과 실용을 채워주는 굿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국가들의 현재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라서 나라 형편이 어지러운게 아닙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책을 밀고 나가려는 미국의 현정부의 모습에서 신정일치의 위험하고 기만적인 그림자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는 이 한사람 한사람의 정직하고 겸손하며 책임적인 의식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살아 있는 집, 살아 있는 교회로 부르시는 예수님을 따르고 순종하기로 새롭게 결단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 앞에서 인도하시고 옆에서 걸으시며 뒤에서 지켜주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3. gachi049 Avatar
    gachi049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을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유산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교회의 머리이자 살아 있는 모퉁이 돌이 되신 주님, 저희들이 신실한 제사장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많이 깔린 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주부터 장마가 시작될 것 같더니 좀 미뤄지는 것 같네요.

    주어진 본문을 읽습니다. 산돌 (living stone)과 모퉁이 돌 (corner stone). 그 돌들이 서로 합쳐져 거룩한 집으로 만들어집니다.

    – 산 돌로 지은 집. 그러니 그 교회는 살아있는 성전이 되어야 하겠지요?

    – 첫번째 산돌이 되신 그리스도. 그 분께서 친히 모퉁이돌 되어주시는 집. 그러므로 그 집은 부활의 소망 위에 지어지고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하겠죠?

    – 산돌들을 쌓고 서로 이어 만든 집. 그러므로 교회의 각 지체는 머리이신 주님과 연합하며 또 서로 상합하여 이 땅위에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해요.

    이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제는 90회 생신을 맞으신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봉안당을 방문했어요. 죽음의 장막을 넘어 천국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으로 느꼈던 하루.

    이제 남은 한국에서의 시간들도 축사하셔서 사랑과 기쁨의 열매를 한껏 맺게 하시길. 슬픔과 고통이 많은 광야 같은 세상. Corner stone되신 주님과 연합하며 소망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그리고 나의 옛사람을 이기는 나날, 그런 인생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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