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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해설:
앞에서 사도는 거듭난 사람답게 살라고 명령했는데, 여기서는 그 명령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간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거듭난 사람으로 살도록 힘써야 한다. 부화가 다 된 알의 껍질을 깨뜨리는 것은 어미 닭의 책임이지만, 깨진 알껍질을 밀고 나와 기지개를 펴고 움직이는 것은 병아리의 책임이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사람들도 새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우선, 믿지 않을 때 몸에 배인 악한 습관을 벗어버리도록 힘써야 한다. 사도는 여기서 다섯 가지의 악덕(악의, 기만, 위선, 시기, 비망하는 말)을 예로 든다(1절). “버리십시오”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더러워진 옷을 벗는 행동을 묘사한다. 동시에, 거듭난 사람들은 “순수하고 신령한 젖”(2절)을 찾아 먹어야 한다. “갓난 아기들처럼” 이라는 표현은, 갓난 아기들이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믿는 이들도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비유다.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길에서 완주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은 믿음으로 현재 시작되었지만, 마지막 날에 완성되어야 한다.
3절은 개역개정의 번역(“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이 훨씬 좋다. 시편 34장 8절에서 빌려 온 표현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은 가정법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주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했다. 진실로 그것을 경험했다면, 모든 악덕을 벗어버리고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그런 근거에서 사도는 신도들에게, “주님께 나아오십시오”(4절) 라고 초청한다.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더욱 가까이, 더욱 간절히 찾으라는 뜻이다.
그분은 사람들에게는 “버려진 돌” 처럼 취급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선택하셔서 “살아있는 돌”(5절)이 되게 하셨다. 사람에게는 쓸모 없다고 판정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돌을 귀하게 여기셨다. 돌은 죽어 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있는 돌”이시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 즉 교회도 “살아있는 돌”이며 “신령한 집”이다. “신령한 집”은 성전을 말한다. “살아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5절)은 믿는 사람 개인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 즉 교회를 가리킨다. 믿는 이들 하나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 교회가 거룩한 성전이라면, 교회의 지체들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도는 이사야서 28장 16절을 인용한다. 모퉁이 돌은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쌓아올릴 때 기준점으로 삼기 위해 처음 놓는 돌을 의미한다.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6절)는 말은 메시아가 시온으로 오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모퉁이 돌로서 믿는 이들 개인과 믿음의 공동체 전체에게 기준점이 되신다(7절).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모퉁이 돌은 살아 있어서 믿는 이들의 삶 속에서 일하신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돌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8절) 것이 된다.
묵상: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믿는 이들과 교회의 정체성을 묘사하기 위해 성전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을 둔 집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성전에 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으신 것은 성전 제사가 끝났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열매는 없고 잎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성전 제사 제도는 형식만 화려할 뿐 그 존재 이유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무너지면 새로운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그분 자신의 부활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요 2:21). 그분의 죽음은 성전 제사 제도에 대한 종언이었고, 그분의 부활은 새로운 성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있는 돌”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그 돌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고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돌을 모퉁이 돌로 삼으셨습니다. 권력자들이 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에 처형한 그분을 하나님께서 부활시켰다는 뜻입니다. 모퉁이 돌은 건물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놓아 다른 벽돌들의 기준점이 되는 돌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 세워진 새로운 성전이 교회입니다. 새로운 성전으로서의 교회는 모퉁이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살아있는 돌이 되고, 교회를 이루고 있는 각 신자들은 제사장이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성전이며, 이 세상에 대해서는 제사장 공동체입니다. 믿는 이들은 한몸으로서 혹은 따로 흩어져 제사장으로서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것은 나 혼자 복을 누리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 다른 믿는 이들과 연합하여 거룩한 성전을 이루고 이 세상에 대해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 그 영원한 유산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도 베드로가 권면한 것처럼, 모든 악독을 버리고, 간난 아기가 젖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요절: 5절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기도:
저희를 살아있는 돌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 교회를 이루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교회로 모여 거룩한 성전이 되어 제사장 공동체로서 세상을 섬기게 하시고, 흩어져 살아갈 때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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