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9-10절: 교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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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해설:

위에서 사도는, 믿는 이들이 살아 있는 모퉁이돌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연합한 교회는 새로운 성전이며 세상을 향해 제사장 공동체가 된다고 했다. 이어서 사도는 새 이스라엘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구약의 말씀들을 동원하여 설명한다. 여기서 “여러분”은 믿는 사람들 각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교회를 의미한다. 

“택하심을 받은 족속”(9절)은 옛 이스라엘에 사용된 표현이다. 헬라어 구약성경(LXX) 이사야서 43장 20절에 동일한 표현이 나온다.“족속”은 “혈통” 혹은 “민족”을 의미한다. 옛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랐지만, 새로운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형성되었다. 예수님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1:33-46)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원래의 포도원 소작인들(옛 이스라엘)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포도원 주인(하나님)은 “열매를 맺는 다른 민족”(교회)를 선택하셨다.

“왕과 같은 제사장”은 헬라어 구약성경 출애굽기 19장 6절을 인용한 표현이다. “제사장”은 헬라어 ‘히에라튜마’의 번역인데, 이것은 제사장 전체를 가리키는 집합 명사다. 앞에서 사도는, 교회가 모퉁이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고 했다(5절). “왕과 같은”은 “제사장”을 수식하는 형용사로서 “왕족의”라는 의미다. 교회는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다. 

“거룩한 민족”도 헬라어 구약성경 19장 6절에 나오는 표현이다. 히브리어에서 “거룩”은 “구별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는데, 그 일에 실패했다. 새로운 선민으로서 교회는 이 세상에서 동일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을 “나그네”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표현도 헬라어 구약성경에서 빌어온 것이다(말 3:17, 사 43:21).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다.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분의 다스림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부름받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소유물이다. “백성”은 ‘라오스’의 번역으로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도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들이 이토록 고귀한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을,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이라고 묘사한다.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던 그들의 과거 삶의 방식을 의미하고, “자기의 놀라운 빛”은 그분의 진리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신 이유는 그분의 “업적”을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다. “업적”은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가리킨다. 

10절은 호세아서 1장 6절, 9절, 2장 23절 등에 나오는 말씀을 신도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소아시아의 다섯 도시에 흩어져 살던 신도들은 혈통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백성이 되었다.

묵상: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는 자신만을 위하려는 성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존이 가능했기에 자기중심성의 욕망을 어느 정도 제어해야 했습니다. 물질 문명이 발전한 후로는 타인의 도움 없이도 혼자 잘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이 믿음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극한으로 표출하게 만들었습니다.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홀로 마시는 술), “혼생”(혼자 사는 인생) 이라는 말이 흔해졌습니다. “핵 개인 시대” 라는 표현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을 개인주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심화되었습니다. “구원”이란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 관계”(private relationship)이며, 죽고 나서 천국 가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며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인 문제로 작아져 버렸습니다. 소위 “가나안 성도”(교회 생활을 하다가 멈춘 사람들)의 현상은 “혼자서도 괜찮다”는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으로 인해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편지를 읽으면서 주목하는 점 중 하나는, 신도들을 하나님에게서 선택받은 ‘하나의 백성’으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신도들 하나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 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각 개인의 거듭남은 시작이며, 새로운 언약 백성의 출현은 결과입니다. 신도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지역 교회를 이루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하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후대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공교회” 혹은 “우주적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믿는 이들은 지역과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서로 연대하여 한 몸, 한 백성, 한 족속이 됩니다.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버리면, 한국 국민으로서의 자격과 특권을 상실하는 반면, 미국 시민으로서의 자격과 특권을 얻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에 그 자격과 특권을 얻고 누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 나라의 자격과 특권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의 참 의미입니다.

요절: 9절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기도:

저희에게 사랑할 만한 교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역 교회를 통해 우주적 교회에 속하게 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교회를 통해 이어가시는 주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덧없이 허비될 인생을 부르셔서 주님 나라 안에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 이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gachi049 Avatar
    gachi049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돌 삼으시고,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여 사랑의 줄로 묶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홀로 머무는 가나안 교인에 그치지 않게 하시고, 구원의 방주인 교회 안에서 주님의 백성으로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늘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Bill Kim Avatar
    Bill Kim

    “너의 몸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것을 알지못하느냐? 너의는 너의것이 아니리라“ 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의 육신, 저의 가정, 허락하신 교회 를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 고백합니다. 먼저 각 개인이 십자가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가정을 성결하게 지키는 은총을 그리고 교회가 세상에 나아가 분부하신 모든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소명을 책임있게 감당하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저희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저희들은 주님이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감사 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로 불러 주신 의미를 생각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난 세월을 기억해보니 사귐의 소리 묵상을 시작하던 당시는 교회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늘 무겁고, 마음은 답답함과 분노로 가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하나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크리스찬이고, 크리스찬은 예수를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공식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부조화의 감정은 갑자기 생긴게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 것이었습니다. 감정도 한 번 씩 씻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세월만 간거겠지요. 사귐의 소리 묵상을 하면서 흐트러져 있던 생각과 감정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답답함과 분노의 감정이 옅어지거나 없어졌다기 보다 구체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답답하다거나 화가 난다는 식으로 뭉뚱거리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두 가지가 가장 크게 보였습니다. 나의 문제를 교회의 문제로 확대해서 본 것이 많았습니다. 나의 상처나 오해에서 시작된 불편함을 교회 사람들에게 덧씌운게 많았습니다. 내 시각과 태도를 내쪽에서 먼저 바꾸면 될 일을 교인들의 ‘잘못’으로 여기며 불필요하게 방어적이 되었던 자신을 보았습니다. 두번째로 본 것은, 공부하지 않는 목회자, 고민하지 않는 목회자는 교인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 아닙니다. ‘담임 목사님만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있냐’면서 모든 것을 목사님이 결정해 주기를 바라는 교인들의 기대는 실로 무거울 겁니다. 주일 설교를 준비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는 목사님을 축복해 주소서’하는 회중기도자의 기도가 귀에 울릴겁니다. 로고스가 레마가 되는 순간인지, 무난한 고객만족 서비스 메시지인지 묻는 것조차 하지 않는 목사님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신학이 없는 설교, 있어도 세상의 변화와 무관한 신학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는다든가, 세상은 악하니 이겨야 할 대상이라든가 하는 원칙적인 말잔치-의 설교를 계속하는 목사님들은 신도의 성장과 성숙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매일 묵상을 하면서 나를 보고,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 없는 교회는 없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 교회도 지난 몇 달 동안 아픔의 시간을 또 겪었습니다. 주말에 다른 감리교회에 나가는 권사님의 차를 얻어 탔는데 그분은 감리교단의 파송 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몇 년 있으면 또 딴 교회로 갈 수 있으니까 사역이 꾸준하거나 일관성이 없다는게 그분 주장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전에 지금 계시는 목사님 바로 전 목사님이 ‘너무 오래 계셔서’ 문제라는 말을 늘 하셨던 분입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교회학교 아이들이 줄어들어 안타깝다며 목사님이 새 아이디어를 내지 않아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고 그래서 파송 제도가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우리 교회는 파송 제도 덕분에 새로 목사님이 오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서로 맞지 않는데 그냥 저냥 지내는 것보다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인과 목회자는 서로의 거울일 때가 많습니다. 느슨해지지 않게 서로를 지켜줍니다. 목회자만 교인을 돌보고 위로하는게 아닙니다. 패스토럴 케어 pastoral care 는 목회자의 의무지만, 교회 (회중, 성도)는 목회자를 책임져야 합니다. 레위 지파를 돌보는 것은 다른 지파들의 옵션이 아니라 의무이듯, 성도는 목회자를 아끼고 살펴야 합니다.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때는 신학이 서로 안 맞거나,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이 달랐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과의 관계든 교우들과의 관계든, 사람 사이의 정과 이해가 물처럼 흐르지 않고 어딘가에 걸려 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은혜를 몰랐지만 지금은 은혜를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쉬운성경)’는 10절 말씀이 교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비를 서로 나누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집이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가득한 자비와 은혜가 밖으로 흘러 나가 사회를 적시고 변화 시킵니다. 교회에 사람 보고 다니냐, 하나님 보고 다니지 하는 말은 마음과 머리가 일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말입니다. 사람을 안 보고도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은 ‘하산해도 되는 고수’ 일겁니다. 사람이 좋아야 그 교회에 가고 싶어집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목사님이 있어야 그 교회에 나가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자비와 은혜에서 나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좋아하십니다. 매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매일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침 공기가 청량하고 하늘이 활짝 개인 수요일 아침입니다. 이제 집을 떠난지 두 주가 흘렀네요.

    오늘의 본문을 읽습니다 (벧전 2:9-10).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그의 소유된 백성. 많이 사랑받고 암송 또는 인용되곤 하는 유명 요절이네요. 전에는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부랑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전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던 자. 이제는 유월절 어린양의 보혈로, 대속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집에 살면서 그 신분과 정체성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답게.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밤에 잠을 주시고 아침에는 일어나 오늘이라는 이름의 생명, 그 하루치의 선물을 주시는 이께 경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장 선한 일들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소망의 인내를 놓치않는 오늘이 되기를. 포도나무의 가지로 주님 안에 거하며 매일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 주님의 가족이 되어가는 하루 하루 그런 인생이 되기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열매 맺는 삶,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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